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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Apr 19. 2021

모로코 여행 코란이 들리는 탕헤르의 야경

스페인 여행 일기: 모로코 탕헤르 메디나


핫산



메디나 입구에서 호스텔 앞 골목까지 오는 짧은 시간 동안 차를 두드리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겁은 잔뜩 먹은 나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배려로 호스텔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핫산이 나를 호스텔까지 안내해 주기 위해 나왔다. 캐리어를 끌고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을 걸어들어갔는데 길에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택시에서의 상황이 또 반복될까 봐 고개를 최대한 푹 숙이고 핫산의 발끝만 보고 따라갔다.


호스텔 안에 들어오고 나서도 누가 따라 들어오지 않을까 겁이 났다. 커다란 호스텔 대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핫산이 호스텔 안은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호스텔의 매니저인 핫산은 다른 매니저인 토마스와 저녁식사 중인 손님들을 소개해 주었다. 다들 따뜻하게 맞이해준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라나다를 떠나기 전날 급하게 예약한 호스텔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모로코 스타일로 세심하게 꾸며진 깔끔한 호스텔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핫산이 소개해 주는 호스텔의 구석구석을 보면서 조금씩 긴장했던 마음을 덜었다.


놀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저녁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겁이 나 혼자 밖에 나갈 수 없는 나를 걱정한 핫산이 친구와의 저녁식사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핫산이 모로코 사람들이 집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걱정했던 것처럼 낯설지 않은 음식이었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사실 음식을 정말 가리지 않는다.


핫산이 탕헤르의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데려간 친구네 집 옥상에서 탕헤르 메디나의 야경을 보았다. 주황색으로 번져있는 가로등 불빛 사이 낮은 건물들이 솟아 있는 고요한 모습이었다. 까만 밤하늘에 코란이 확성기를 통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 동안 해가 지고 나면 다음  해가 떠오를 때까지 코란을 방송한다고 한다. 알아들을  없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는데 아랍어 억양으로 리듬감 있게 읊는 소리가 나에게는 음악처럼 느껴졌다. 내가 익숙한 도시의 불빛과 소음의 자리를 탕헤르에서는 코란이 채우고 있었다.


이 순간이 나에게는 그동한 여행했던 시간들 중에서 가장 이국적인 순간이었다.






몰래 마시는 맥주



핫산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야경까지 구경하고 나서 호스텔에 돌아왔을 때 호스텔의 또 다른 매니저 토마스가 나에게 맥주를 마시고 싶은지 물었다. 토마스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질문을 듣고 나서 시원한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한 번 크게 놀라 더 고단해진 하루를 차가운 맥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나는 ‘Yes!’로 대답했고 토마스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슬람 국가로 술이 금지되어 있는 모로코에서 맥주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해외 관광객들이 머무는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마실 수 있지만 탕헤르 주민들이 살고 있는 메디나 안에서는 맥주를 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토마스가 아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호스텔의 손님들을 위한 맥주를 어느 호텔에서 사 올 예정이었다.


작은 캔 하나에 3유로 정도되는 가격이었다. 스페인에서 보다 두는 되는 비싼 가격에 살짝 당황했지만 쉽게 마실 수 없는 귀한 맥주라는 생각에 더욱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사람은 다섯 명인데 6캔씩 2 팩을 받았다. 맥주를 옮기는 도중에 걸릴 수도 있어 12캔이 최선이라고 했다.


평소 마시던 것보다 비싼 돈을 주고 한참을 기다려 겨우 받은 맥주는 절대 벌컥벌컥 마실 수 없었다. 우리는 호스텔 부엌에서 어렵게 모셔온 맥주를 와인 마시듯이 홀짝홀짝 아껴마셨다. 언제든지 원하면 얻을 수 있던 것이 모로코 탕헤르에 오면서 아주 귀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것을 대하는 내 마음도 같이 달라졌다. 이런 귀한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도 더욱 소중해졌다. 덕분에 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어딘가 고귀해진 기분이었다. 그만큼 당시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귀하게 마신 술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결정의 순간



모두의 우려에도 ‘가서 부딪히면 별거 아닐 거야.’라는 생각으로 떠난 모로코 여행이었지만 나는 시작부터 잔뜩 겁을 먹게 되었다. 이날 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밤새 다음 목적지를 고민했다. 호스텔 밤샘근무를 해야 했던 토마스가 도시들을 추천해 주고 교통 편과 숙소까지 함께 알아봐 주었지만 혼자 여행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었다. 토마스가 며칠 더 탕헤르에서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는 건 어떨지 추천해 줬지만 첫인상이 좋지 못한 탕헤르에서 더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이도 저도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토마스가 고민은 잠깐 미뤄두자며 호스텔 옥상에 올라가서 바람을 쐬자고 했다. 늦은 밤, 오렌지 불빛이 번져있는 탕헤르에 코란을 읊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또 한참을 멍하니 서서 탕헤르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옥상의  벤치에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커플이 있었는데 이미 모로코 여행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가는 그들이 여러 추천과 조언들을 해주었다. 항상 다가오는 사람들이 성가셨지만 위험했던 적은 없었다며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내가 가고 싶었던 도시들을 직접 경험한 그들의 얘기에 마음이 놓이면서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남자들이 기타를 치고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잠시 결정을 미뤄두고 노래를 부르고 들으며 현재를 즐겼다. 짧은 노래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의 여행이 무사히 끝나는  기원하며 마무리되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두려움에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탕헤르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또 보고 싶지 않아 떠나온 이곳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망설이는 내가 조금 한심해졌다. 앉아서 고민해 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짐했던 ‘우선하고 보자!’라는 마음이 다시 떠올랐고 몇 시간 뒤 해가 뜨는 대로 마라케시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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