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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May 21. 2024

피사 맥도날드 직원의 소프트콘 쌓기 클라쓰

이탈리아-피사(7.18)

#유럽여행 16일차 (1)


유난히 날씨가 화창한 날이었다. 오늘은 피렌체 근교 소도시인 피사에 가는 날이라 그런지, 소풍 가는 유치원생처럼 산뜻하게 눈이 떠졌다. 오전 9시. 베란다 창가에 기대어 물 한 잔을 마시면서 밖을 내다보니 덜덜거리며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피렌체에 이제 막 도착했는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여긴 어디? 나는 누구?'와 같은,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숙소를 찾는지 고개를 휘휘 돌리는데, 피렌체에 도착한 첫날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피식 웃음이 났다. 고작 3일 선배지만(!!)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이들의 무수한 날들에 좋은 일들만 깃들기를, 마음속으로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하얀 커튼, 그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구름빛을 닮은 햇살,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작은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소소한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세월을 품은 돌바닥과 끝도 없이 펼쳐진 주황빛의 지붕,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종소리가 이곳이 이탈리아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카페에 차 한 잔 시켜놓고 하루종일 앉아서 돌바닥 구경하고, 지붕 관찰하고, 종소리만 하염없이 듣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창문 밖 세상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편도 1시간 거리의 옆동네에 잠깐 다녀오는 거라, 가벼운 옷차림에 출출할 때 먹을 간식 몇 개만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이틀 전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첫 발을 내디뎠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은 오늘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부지런히 삼키고 내뱉고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우리가 탈 피사행 기차는 아직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20분 전에 타야 할 승강장이 표시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탈리아는 보통 5분 전에 나온다더니 정말 그럴 생각인 것 같았다.


여유롭게 십여분 정도 사람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새 출발 5분 전. 그런데 전광판엔 여전히 승강장 번호가 뜨지 않았다.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연착이 된 건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지나가는 아무 직원이나 붙잡고 물어봤다. 직원은 전광판을 보고 갸웃하더니 무전기에 대고 리드미컬한 이탈리아어로 무어라 말했다. 이윽고 회신을 듣더니 4번 플랫폼으로 가라고 했다. 3분 남았으니 서두르라는 말과 함께.


평화로웠던 초원에 돌풍이 몰아쳤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딨어?!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린 당장 뛰어야 했다. 그런데 4번 플랫폼이 어디 있나?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5번 플랫폼은 있는데 4번 플랫폼이 없었다. 해리포터도 아니고, 머글인 우리 눈에만 안 보이는 건가?! 알고 보니 눈에 보이는 메인 승강장이 다가 아니라 측면 통로를 통해 돌아가면 뒤쪽에 승강장이 또 있었다. 꽤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해서 바쁠 땐 사람 피 말리게 하기 딱 좋은 위치선정이었다. 그 피 말리는 사람이 지금 우리라는 게 문제였지만...


직원이 보일 때마다 묻고 또 물으면서 4번 플랫폼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다행히 기차문은 열려있었고 출발 1분 전에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신기한 건,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이미 기차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타 있었다는 것. 전광판에 승강장 번호를 표시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사람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의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나..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자리는 자유석이라 아무 데나 앉으면 됐는데 안타깝게도 남은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하긴, 출발직전에 아슬아슬하게 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버스처럼 통로에 서서 가야 했는데 다들 목적지가 피사인지 중간에 기차가 몇 번 정차했지만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겨우 한 자리가 나서 엄마를 앉히고 오빠와 나는 1시간 정도 꼬박 서서 갔다.


그렇게 우당탕탕 소동을 벌이고 도착한 피사역은 소도시라 그런지 아담하고 조용했다. 그래도 역 앞의 중앙광장에 꽃도 예쁘게 심어져 있고 길거리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걸 보니 이곳 사람들의 인심이 어떤지 짐작이 갔다. 사탑이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피사는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한적한 동네였다. 4-5층의 낮은 빌라가 강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늘어서있었고, 사람들은 노천카페에 음료를 시켜놓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릴 때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전 세계 마을의 사람들과 일주일씩 돌아가며 사는 곳을 바꿔서 살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만약 정말 그랬다면 케냐에도 살아보고, 리투아니아에도 살아보고, 푸에르토리코에도 살아보면서 나는 지금보다 포용력이 더 넓은 사람이 됐을까? 아니면 반대로 삶의 속도가 뒤죽박죽한 사람이 됐을까? 뭐, 아무래도 좋지 않았을까. 애초에 사람은 다양한 모양새를 가졌으니. 한 가지 분명한 건, 피사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 정도의 속도를 가진 마을이라는 것이었고, 이 풍경 안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성곽문을 지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서부터 하얀색 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 뽀얀 우윳빛 대리석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현실적인 감각이 강렬해졌고, 그로 인해 망막에 맺힌 상을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막상 사진으로만 보던 게 눈앞에 떡하니 서있으니 "우와!"보다는 "어라.. 잠깐만.. 왜 네가 여기에..? 이렇게 '실재'해도 되나?"라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 마치 길 가다가 tv 속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우연히 만난 느낌이랄까. 높고 웨딩케이크(?) 같고 아름다웠다.


전 세계인의 연예인에 필적할만한 피사의 사탑은 피사 대성당 옆에 있는 종탑으로, 이런 사탑을 따라다니는 가장 유명한 수식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부실공사"다. 1173년에 짓기 시작한 사탑은, 피사가 아르노강의 범람원 위에 세워진 도시였기 때문에 원래 지반이 약한 데다 탑의 높이에 비해 땅을 조금밖에 파내지 않아서 공사 도중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전쟁 등의 이유로 공사가 여러 번 지연되는 과정에서 지반이 다져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후 수차례 설계 수정을 거듭했고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시작된 지 거의 200년이 지난 1377년, 비로소 완공되었다.



하중을 견디지 못해 기울어지는 탑이 랜드마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 걸 보면 인위적으로 만들래야 만들 수 없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더 와닿는 것 같다. 1372년, 200년 만에 완공되어 그때부터 점점 기울어져간 이 사탑을 바라보았을 수많은 눈들을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주는 묘한 위로, 그 때문에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피사의 사탑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인간과 인간이 만드는 터전, 그 터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불완전하기에 아름답고, 미완성이기에 특별하다는 역설이 인간에겐 살아 숨 쉬는 정설인 것 같다.


아, 참고로 기울어진 탑이 한계치 이상으로 더 기울어지는 걸 막기 위해 2001년 보수공사를 했는데 그 결과 탑이 더 이상 기울어지진 않지만, 그 부작용으로 탑이 바로 서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1년에 2mm 정도의 속도이기 때문에 앞으로 2~300년간은 기울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적어도 다음 세대까지는 기울어진 탑이라는 뜻의 '사탑(塔)' 명칭을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 평생을 '사탑'이라 불러온 게 '탑'이 되면 조금 섭섭할 것도 같은데, 이제 마음 놓고 피사의 '탑'이 아니라 피사의 '사탑'이라고 불러도 된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하! 이미 주변엔 사탑을 껴안고, 밀고, 차고, 기대고, 손 위에 놓고 입맞춤하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뜻 보면 행위예술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두가 그러고 있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도 질세라 행렬에 합류해서 기념사진을 원 없이 남겼다.



사탑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피렌체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역으로 갔다. 역사 내부는 냉방시설이 운영되고 있지 않아 후덥지근했고 기차 시간은 1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마침 역 바로 옆에 에어컨이 나오는 맥도날드가 있어 잠깐 쉬어가려 했는데,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매장 내부는 이미 사람들로 터져나가고 있었다. 10분 정도 눈치싸움 끝에 자리 하나를 쟁취해냈고, 반나절동안 강렬한 태양 아래 무자비하게 노출되느라 한껏 달아오른 피부를 식힐 수 있었다.


주문을 하고는 화장실을 가려하는데 화장실 입구에 검은색 옷을 입은 직원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처음엔 그냥 들어가려다 멈칫 서서 유심히 보니 들어가는 사람들마다 영수증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유료 화장실이구나!'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선 식음료나 물품을 구매하지 않고 화장실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화장실을 유료로 운영하기도 한다. 보통 해당 매장 이용객은 영수증을 확인하고, 비이용객은 1-2유로 정도의 돈을 받는다. 피사 맥날은 카드 단말기가 있는 것을 보니 카드 결제도 가능해 보였다. 영국과 프랑스에선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유료 화장실이 실제 운영되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래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내가 시킨 소프트콘도 건네줬는데, 처음 받으면서 든 생각은, '이거, 쓰러지는 건 아니겠지?'였다. '피사의 사탑'의 도시답게 소프트아이스크림도 피사의 사탑 모양이었다. 이렇게 높이, 정교하게 쌓아주는 아이스크림은 처음 봤다. 타 매장에 비해 두 배는 더 높은 것 같았는데 이래서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나 보다. 매일 보다 보니 사탑의 DNA가 직원들의 손목스냅에 스며든 게 아닐까.. 합리적인 의식이 드는 지점이었다. 피사의 사탑의 살짝 기울어진 기울기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냈는데, 아마도 전 세계 맥도날드 중에 피사점보다 소프트콘을 더 잘 쌓는 지점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소프트콘을 보면 피사가 연관검색어로 떠오를 것 같았다.




피사에 실제 머물렀던 시간은 3시간 남짓. 그마저도 맥도날드에서 1시간 기다린 시간과 사탑까지 버스를 타고 오간 시간을 빼면, 순수하게 사탑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살짝 허무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피사에 오려면 반나절은 할애해야 하는데 달랑 이거 하나 보러 왕복 2시간 걸려서 오는 게 맞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오직 사탑 하나를 보기 위해 전 세계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 도시를 방문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대견한가. 심지어 실수가 촉발한 이 사연 많은 탑을. 하나를 잘 쌓아놓으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걸 사탑 그 자체가 몸소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 그 직감이 단단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 그리고 어느 지점을 가도 피사에서 먹은 것만큼 인상적인 소프트콘은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사에 간다면 소프트콘은 꼭 먹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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