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피렌체 -> 이탈리아-로마(7.19)
#유럽여행 17일차 (1)
새벽 6시, 알람이 울렸다. 오늘은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는 날이었다. 낮 12시 20분 기차라 원래라면 느지막하게 일어나 우아하게 거리를 거닐며 피렌체와 작별인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날밤 오빠가 갑자기 피렌체 외곽의 '더몰'이라는 명품 아울렛에 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피렌체에 오면 필수코스 중 하나라는데 어떤지 궁금하다고. 그러기 위해선 다디단 아침잠을 반납해야 했지만, 다행히 이런 부분에선 우리 가족이 잘 맞았다. 그래, 거길 언제 또 가보겠어, 가보고 싶은 데 다 가보자! 라며 흔쾌히 응했다. 어젯밤의 기세가 무안하게 아침에 눈을 떠선 몇 번이나 '왜 간다고 했을까..' 후회막심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울렛에 가기 위해선 셔틀버스를 타야 했고, 아침 7시 반에 출발하는 첫 차를 타기 위해선 서둘러야 했다.
오빠와 내가 준비하는 동안 엄마는 남은 식재료를 탈탈 털어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한국에 볶음밥이 있다면 유럽은 샌드위치다. 어떤 재료를 넣어도 맛있고 만드는 방법도 간편하다. 항상 마지막 플레이팅까지 신경 쓰는 엄마 덕분에 눈도, 입도, 마음도 든든해지는 아침식사였다. 늘 신기한 거지만, 같은 시간 동안 엄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소 두 배 이상을 해낸다. 어릴 땐 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뚝딱뚝딱 잘하게 될까, 싶었지만 이젠 안다. 단순히 나이만 먹는다고 획득하게 되는 능력이 아니라는 걸. 대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노력은 하되 각자가 잘하는 걸 더 잘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자고. 그게 결국은 모두의 행복의 총량을 늘리는 방법이니까. 이런 생각들을 조약돌처럼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다 보니 어느새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침 7시. 어슴푸레한 아침 공기를 뚫고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뜨겁지 않은 공기를 흡입하는 기분이 상쾌했다.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르니 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피렌체는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거리에서 한국인을 많이 못 봤는데, 여기 다 모여 있었다. 한국의 흔한 좌석버스 분위기를 풍기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반가우면서도 괜스레 웃음이 났다. 이 시간에 오려면 다들 최소 새벽 6시에는 일어났다는 건데...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울렛에 거의 다 와있었다. 슬슬 내릴 준비를 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 얼굴에서 비장함이 읽혔다. 마치 전장을 나가는 장수의 기백과도 같았달까. 이윽고 버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딘가를 향해 경주마처럼 질주했다. 뭐.. 뭐야??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뛰었다. 안 뛰면 뭔가를 크게 놓칠 거라고 온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도착한 곳은, 구찌 매장 앞. 간발의 차이로 우리 뒤로 긴 줄이 늘어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구찌 매장이 아울렛 안에서도 물량이 많아 제일 인기가 많은 매장이었고, 더몰은 구찌 매장을 오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좋은 동료들(?) 덕분에 어쩌다 보니 꽤 상위권에 서게 됐고 오픈과 동시에 첫 번째 입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문이 열리자 또다시 레이스가 펼쳐졌다. 우리 뒤에 있던 사람들이 어깨를 치면서 뛰어나갔고, 우린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넋을 잃고 지켜봤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 커플은 일가친척들에게 선물하려는지 벨트를 6~7개씩 두 손 가득 들고 있었고, 또 다른 커플은 5개의 스카프를 펼쳐놓고 전화로 설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벨트는 매장 오픈 3분 만에 매진, 스카프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래서 뛰었구나,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직원들은 익숙한 광경인지 오히려 덤덤했다. 다 큰 어른들이 쇼핑몰 안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꼭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생경하고도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우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지 못해서 별 소득 없이 돌아왔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오니 11시가 조금 안 됐다. 기차역으로 바로 출발하긴 아직 이르고, 그렇다고 숙소에 있긴 아까운 시간이라 피렌체 구시가지를 거닐며 시간을 때워야 하나 생각하던 참에, 오빠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해서 두말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골목으로 가니 조각이 새겨진 고풍스러운 문이 나타났다. 우리가 찾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이었다. 이름부터 예쁜 이곳은, 1221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수도사들이 만든 약국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중 하나다. 원래 수도사들의 치료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향수와 비누, 로션과 같은 화장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처음엔 약국이라고 해서 의약품을 파는 정말 말 그대로 '약국'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천연 화장품을 파는 코스메틱 매장이었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향긋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게 해질 무렵 풀잎과 낮은 꽃이 소담하게 심어져 있는 작은 정원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대성당처럼 높은 천장과 그곳에 그려진 천장화, 샹들리에와 근엄한 표정의 초상화, 벽지, 도자기, 부조, 생화 등이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된 매장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었고, 이런 모든 장치와 주변 환경이 진열대 위에 놓인 향수, 바디용품, 핸드크림, 장미수 등의 제품을 단순히 상품이 아닌 작품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우리 제품을 사는 건 단순히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곳의 모든 경험의 총체를 구매하는 것과 같다.' 라는 메시지가 매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브랜드 정체성은 멈춰있는 것에서뿐만 아니라 움직임에서도 느껴졌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직원들은 고객이 요청한 제품을 들고 바쁘게 오갔는데,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마치 발레를 하듯 사뿐사뿐 움직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동작을 취하는 댄서처럼 느껴졌는데, 마치 발레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무대 안에서 춤추는 댄서들을 바로 앞에서 직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우아한 몸짓이었다. 언젠가 한 셰프가,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직원들에게 발레를 배우게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레스토랑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황홀한 장면을 어느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공기 중에 떠다니는 향기의 파동과 직원들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이 브랜드의 숨겨진 또 하나의 컨셉이 아닐까, 라는 혼자만의 재미난 상상을 하면서 한동안 그들의 섬세한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제품들 중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구매하려 했는데, 가격비교를 해보니 오히려 한국에서 구매하는 게 더 저렴했다. 순간 고민을 했지만, 캐리어에 넣어갈 선물과 기념품이 이미 그득한 여행객은 감성보단 이성에 손을 들어줬고,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약국 구경을 마치고 짐을 가지러 11시 20분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동안 '캐리어를 어떻게 들고 내려가지?' 라는 걱정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처음 왔을 때는 멋모르고 어찌저찌 올라왔는데, 4층이지만 5층 같은 높이에서 경사가 심한 계단을 내려가는 건 힘듦을 넘어 위험했다. 잘못 삐끗하면 돌덩이 같은 캐리어와 계단을 구를 수도 있었다. 숙소는 참 예쁘고 좋았는데... 다시 한번, 피렌체의 좁고도 가파른 계단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드르륵- 열쇠를 돌려 문을 잠그고 호스트가 부탁한 대로 화분 밑에 열쇠를 두려는데, 청소를 하러 온 호스트와 딱 마주쳤다! 피렌체 도착한 첫날 만났던 잘생긴 이탈리아 남자와 그의 어머니였다. '퇴실 시간은 12시인데, 왜 이렇게 일찍 왔지?' 라는 우리의 의아한 표정과 '어라, 아직 안 갔네?' 라는 호스트의 당황한 표정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서로 놀랐지만 이내 잘 지냈냐, 너무 좋았다, 최고의 숙소였다, 와 같은 정다운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우린 이제 갈게! 하며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남자 호스트가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캐리어를 보더니 본인이 들어주겠다며 30kg에 육박하는 30인치와 24인치 캐리어를 양손에 드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찰나의 순간, 난 보았다. 캐리어를 든 우람한 덩치의 호스트의 얼굴에 어.. 뭐가 이렇게 무거워..? 라는 낭패감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이거 정말 무겁다고, 정 그러면 작은 캐리어는 놔두고 큰 캐리어 하나만 옮겨달라고 했다. 하지만 호스트는 그런 우리의 반응에 더 자극을 받았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캐리어를 번쩍 들고는 말릴 새도 없이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 호스트의 뒷모습을 보며 얼떨결에 오빠도 남은 28인치 캐리어를 들고 부랴부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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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캐리어를 들지 않은 엄마와 내가 쫓아가기 힘들 정도였다. 서둘러 1층에 도착하니, 오빠와 호스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걱정이 돼서 호스트에게 괜찮냐고 물으니 그는 장난스레 땀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a little bit heavy, but it's okay.(좀 무겁긴 했는데 괜찮아요)"
휘파람 불듯 휘유, 하며 괜찮은 척했지만 난 또 보고 말았다. 유선형의 땀방울이 호스트의 얼굴 옆선을 타고 연신 흘러내리는 걸.
나중에 오빠가 이날의 진실을 말해줬다. 중간에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호스트가 거침없이 내려가서 멈추지도 못하고 그분 뒷모습만 보고 따라갔다고. 넘어지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하.. 한줄기 빛처럼 나타난 피렌체 스트롱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수차례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피렌체 스트롱맨의 따뜻한 배웅을 받고 기차역을 향해 출발했다. 물론 피렌체 돌바닥은 여전히 견고했고 우리의 캐리어는 덜그럭 소리를 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이젠 이 소리마저 그리워질 거란 생각을 하니 벌써 아쉬워질 정도였다.
그렇게 5분쯤 갔을까? 앞서 가던 오빠가 멈춰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더니, 좀 더 격렬하게 옷에 있는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확인하더니 사색이 되어 엄마와 나를 돌아봤다.
"큰일 났다."
오빠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고. 오빠는 폰이 주머니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번 잘 찾아봐, 라며 엄마와 내가 오빠 옷을, 혹시나 싶어 우리 가방도 샅샅이 살펴봤지만 폰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최후의 보루인 캐리어까지 돌바닥에 눕히고 열여서 찾아봐야 하나 싶었는데, 오빠는 아무래도 숙소 tv 선반에 폰을 놔두고 온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나올 때 안 챙긴 것 같다고.
곧장 캐리어를 끌고 왔던 길을 되돌아 숙소 앞으로 뛰어갔다. 폰에 모든 게 있는데!! 숙소 예약한 것도, 호스트와의 연락도, 각종 입장권 코드도, 길 찾는 것도 폰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유심칩 장착을 오빠폰 하나만 해서 다른 대안이 없었다. 다시 말해, 오빠폰이 없으면 우리 여행도 끝장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청소 중인지 창문이 활짝 열린 채로 청소기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호스트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 처음엔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긋흘긋 쳐다보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남 눈치를 보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 사이, 5분이 지나갔다. 그래도 청소기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혹시라도 이 건물에 사는 주민이 오진 않을까 살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히 문 옆에 초인종을 누르는 버튼이 있었다. 우리 숙소는 꼭대기층이었으니까 제일 위에 있는 종을 눌렀는데 표시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르고 기다리고 다시 누르고 기다리고.. 한 10번쯤 했을까? 그새 또 5분이 지났다. 기차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이러다 폰 못 찾는 거 아니야..? 하는 절망 섞인 마음의 소리까지 스멀스멀 들려왔다. 그러는 동안 청소기 소리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다.
마침내, 초조함이 마지막 남은 인내심마저 잡아먹었다. 우린 아무나 제발 나와라, 라는 심정으로 초인종을 있는 대로 다 눌렀다. 초인종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이 건물 모든 집들에 동시다발적으로 종이 울리고 있을 것이었다.
숨죽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 벌컥, 육중한 현관문이 열렸다. 불과 30분 전, 웃으며 헤어졌던 우리의 스트롱맨이 뛰어내려왔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우리에게 뭔가를 건넸다.
"You... left your phone.. behind. Here!" (폰을.. 놔두고.. (헉헉) 갔더라구요. 여기 있어요!)
그토록 찾아 헤맨 폰이었다! 직사각형의 납작한 기계와의 상봉에 너무 감격한(?) 나머지, 엄마는 호스트에게 기차를 타고 가며 먹으려 했던 납작복숭아 (무려) 9개를 지퍼백째(!!) 줬다. 그 여파로, 로마까지 가는 동안 입이 심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중에 엄마도 "어떻게 그걸 다 줬지? 몇 개는 빼고 줄 걸..." 하면서 후회하긴 했지만.. 하하!
현관문을 닫는데 피렌체에 도착한 첫날, 우리에게 열쇠로 문 여는 법을 가르쳐주셨던 옆집 할아버지께서 계단을 내려오시는 게 문틈으로 언뜻 보였다.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에게 피렌체 열쇠 다루는 법을 친절히 알려주셨던 따뜻한 분이셨는데, 우리가 누른 초인종 소리를 듣고 급하게 내려오시는 게 아닐까 싶어 너무 죄송했다. 하지만 닫힌 현관문을 두고 우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고, 피렌체 스트롱맨이 잘 설명해 줄 것이라 믿고 미친 듯이 역으로 달려갔다.
폰 분실사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다행히 출발 2분 전에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마가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역에서 기다리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찍 출발하자고 해서 애초에 1시간 전에 출발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찍 출발하지 않았다면 기차도 놓치고, 돈도 날리고, 새로 기차표를 예매한다고 한바탕 난리를 칠 뻔했다. 역시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격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해외여행할 땐 비싸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유심칩은 2개 이상 장착해야 한다는 걸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됐다. 최악의 경우 누군가 폰을 잃어버리더라도 여행이 끝나지 않도록. 리스크 분산은 여행에 꼭 필요한 요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