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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쏘니?"를 외친 토트넘 유니폼의 미소년

이탈리아-로마(7.19)

by 이수빈 Jan 16. 2025

#유럽여행 17일차 (3) <번외편>


로마 구찌 매장.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직원을 찾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오? 쏘니?"를 외쳤다.


돌아보니 짧은 금발에 푸른 눈, 적당히 마른 체격을 가진 미소년이 서있었다. 고등학생 정도 됐을까, 무언가에 놀라 동그래진 눈망울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진귀한 걸 발견한 사람의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오빠도 나도 버벅댔다. 뭐.. 지?? 그러자 푸른 눈의 미소년은 "Your T-shirt.." 하면서 급하게 오빠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그리곤 자기 옷을 가리켰다. "I'm Sonny's fan."


그제야 뭘 뜻하는지 알아챈 오빠가 아아, 하면서 "yes, yes, South Korea. Sonny's country."라고 웃으면서 화답했다. 알고 보니 이 남자아이가 입고 있는 옷은 토트넘 유니폼이었고, 이 구단 팬인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쏘니, 그러니까 손흥민 선수였던 것이다. 오빠가 입고 있는 옷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이었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쏘니의 국가라는 걸 알아보고 말을 걸어온 거였다.


미소년이 상기된 얼굴로 오빠에게 악수를 청했다. 영국식 악센트가 강하게 묻어 나오는 걸 보니 여름휴가를 맞아 영국에서 부모님을 따라 로마에 여행을 온 것 같았는데 이탈리아에서 영국과 한국의 만남이라니, 흥미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붉은악마와 푸른 유니폼을 입은 영국신사가 이 순간만큼은 각국 대표가 되어 경건하게 손을 맞잡았다.


여행 가기 전, 짐을 챙기면서 오빠가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가져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국적이 드러나는 게 별로지 않냐고, 만에 하나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기어코 유니폼을 챙겼는데 이런 순기능도 있었다. 이 옷이 아니었으면 이런 재미있는 만남도 없었을 테니.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내가 숨 쉬고 헤엄치는 세계의 지평이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유한다. 그래서 무엇이 됐든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일만큼 애정을 쏟고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참 멋진 일이다. 이 영국신사도 토트넘 팬이 아니었다면,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봤어도 지금과 같은 감흥을 느끼진 못했을 테니까. 아는 만큼 나를 둘러싼 세계는 넓어지고 연결된다. 덕분에 내 세상의 경계도 한 뼘 더 넓어진 듯했다.


이날 이후로 오빠가 축구 유니폼을 입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평소보다 목을 곧게 펴고 배에 힘을 주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느라 저녁이 되어 숙소에 돌아오면 몸이 두 배쯤 더 뻐근했다. 피곤한 일이긴 했지만 이날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그래, 이런 수고로움쯤이야! 하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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