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 좋아하고 잘합니다"

by 이수빈

고등학교 꿈발표 시간. 한 학년이 다 모인 시청각실. 파일럿이 꿈이라는 A.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친하진 않았어서 꿈이 파일럿이란 걸 처음 알았다. 의외였다. 과학실험을 잘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연구 쪽이나 정적인 일을 선호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발표 마지막 즈음, 질의응답 시간.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파일럿이 되려면 상당히 강한 체력도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괜찮으신가요? 훈련이란 게 같은 거 반복적인 부분이 많잖아요?"


호리호리한 A가 걱정이 되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내포된 질문이었을까.

그러자 A는 담백하게 말했다.


"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 좋아하고 잘합니다"


당시엔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큰 가산점을 줬다. 교육현장에선 걸핏하면 '글로벌 리더반', '창의인재양성', '사고력 교육'이라는 구호가 제창됐고 창의, 글로벌 이런 말들 빼고는 방과 후 수업이 개설될 수가 없었다. 반면에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은 시시하고 가치가 없다는 시대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뭔가 복잡하고 거창해 보여야만 있어 보이던 때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잘하고 좋아한다는 이 친구의 단단한 고백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이 당당함이 더 멋있어보였던 걸지도.


어쩌면 이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모든 일의 바탕은 오랜 시간을 들여 쌓는 반복적인 일의 총합이라는 것을. 실력이 쌓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필수불가결한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삶은 반복적인 일 투성이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 하지만 때론 그 과정이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A의 말을 떠올린다. 지금은 반복되는 여기에 머물러도 좋다는 그 담백한 고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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