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더러워서 절밥 안 먹는다!"
부처님 오신 날, H사에 갔다. 연휴 기간 동안 가족 여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새벽 일찍 꽃축제에 갔다가 바로 가다 보니 아침 9시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왔나, 싶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내 안에서 사진을 찍거나 여러 가지 체험을 하고 있었고 대웅전 앞엔 기도를 드리기 위한 줄이 늘어서 있었다.
유명한 절은 8시부터도 공양을 한다던데, 여긴 11시 10분부터라고 했다. 아하... 자그마치 2시간이나 남았다. 그냥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평소에 쉽게 오기 힘든 절이기도 하고 이 아침에 달리 갈 곳이 있지도 않아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절 곳곳을 둘러보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엄마와 잠깐 다른 곳에 있는데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양간 앞에 줄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빨리 와야 할 것 같다고. 엄마랑 급히 뛰어가니 벌써 8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오빠와 아빠 옆에 같이 설까도 싶었지만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닌 듯싶어 줄 제일 끝에 가서 섰다. 10시 10분부터 늘어선 줄은 점점 길어져서 순식간에 전각 코너를 돌아 끝도 보이지 않는 장사진을 이뤘다.
공양 담당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공양간 앞으로 몰아닥치는 사람들을 통제하느라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두 줄로 서세요, 저쪽으로 물러나세요, 일로 오지 말라고 등등. 물론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건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이분은 원래도 쉽게 흥분하는 성격인 듯 싶었다. "스님이 화가 많으시네.. 허허."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지 뒤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10시 40분쯤 됐을까, 갑자기 줄 앞쪽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웅성웅성하는 듯하더니 스님이 마이크로 "뒤로 가세요. 가세요, 뒤로." 라고 냉담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자 60대 아저씨 한 분이 튕겨져 나오듯 줄에서 이탈해 씩씩거리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일행인지 모를 몇몇 사람들은 손짓을 하며 안타까운 듯 아저씨의 뒷모습을 좇았다. 영문을 모르고 이 장면만 본다면 늦게 온 아저씨가 일행 옆에 같이 서려고 하는 걸 스님이 못하게 제지하려는 것처럼 보일 법한 광경이었다.
아저씨는 돌아오라는 주변 사람들의 회유에도 휘적휘적 걸어가며 외쳤다.
“내 더러워서 절밥 안 먹는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그런 아저씨를 보며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좋은 날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새치기하면 안 되지." 라며 혀를 끌끌 찼다.
밥을 다 먹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자연스레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이 화젯거리로 소환됐다. 내가 목격했었던 바를 말하자 엄마와 나보다 앞쪽에 서있었던 아빠와 오빠는 그게 아니라, 하면서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60대 아저씨는 공양줄의 첫 번째 순서로 서 있었는데 어머니가 다른 곳에 있다가 합류하려 하자 그걸 본 스님이 새치기하려는 줄 알고 막아섰다. 아저씨는 어머니라며 같이 좀 서면 안 되겠냐고 말했고 스님은 한 사람만 먹을 수 있다며 한 명은 뒤로 가서 줄을 다시 서라고 강경하게 나왔다. 하지만 줄은 이미 300명은 족히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사정을 해도 안 되자 아저씨가 그럼 난 안 먹어도 되니까 어머니 먹으시라 하고 나오는데 억누르던 감정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결국 어머니도 아들 없이 나 혼자만 어떻게 먹냐면서 자리를 떠나셨다.
아들이 60대였으니 그 어머니는 최소 80대 이상이었을 것이다. 내가 뭐 밥 못 먹어서 이럽니까, 라고 말하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미세하게 떨리던 아저씨의 음성이 맥락 속에서 형체를 갖기 시작하자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건 단순한 분노가 아닌 서러움이었다는 걸.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땡볕 아래 앉을 곳도 없는 맨땅에 노모를 세워놓을 수 없어 잠깐 그늘에 앉아있다가 오시라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내가 봤던, 돌아오라고 손짓하던 사람들도 일행이 아니라 그냥 뒤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 처음 본 모르는 사람들도 앞에 서도 괜찮다고 할머니의 존재를 긍정하는데 스님은 왜 그렇게까지 부정하셔야 했을까. 무조건 다 똑같이 해야 평등한 걸까. 피부가 약한 아이들과 허리나 다리가 아파서 오래 서 있기 힘든 어르신들도 어떻게든 줄에 서 있어야 밥을 먹을 자격이 생기는 걸까.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게 그런 걸까.
붓다의 생일잔치에 왔다가 서러움을 느끼며 돌아갔을 모자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규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엄격한 잣대보다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씨가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찾은 절에선 색색깔의 나물이 담긴 비빔밥을 나눠줬다. 둥글둥글하게 어울려 살라는 비빔밥의 의미가 무색한,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한낮 절의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