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와 중국집 회식
믹스커피 두 봉을 따서 투명한 아이스전용 잔에 붓는다. 뜨거운 물을 살짝 부어 티스푼으로 젓는다. 진한 브라운빛을 띠는 커피에 얼음을 가득 넣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물로 간을 맞추는 게 아니라 얼음을 녹이면서 간을 맞추는 것. 몇 초 정도 기다렸다가 한입 맛보니 달달하고 쌉싸름한 커피 향이 입안 가득 부드럽게 퍼진다.
'그래, 이 맛이지. 그때 그 커피는...'
교생실습 때가 생각이 나 피식 웃음이 난다.
대학교 4학년 교생실습생이었던 6월의 어느 날, 교생 친구 세 명과 점심을 먹고 교생실로 돌아와 일지를 작성하는데 오후의 식곤증을 참을 수 없었던 서른한 살 체육교육과 교생 오빠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난다며 잠깐 밖에 나가서 사 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교생 담당 선생님께 물어보니 학생들과의 형평성을 위해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교사도 점심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아쉬워하자, 믹스커피라도 주겠다며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했다.
선생님은 교생 네 명에게 종이컵 4개와 믹스커피 4봉을 건넸다. 초여름 날씨라 더웠던 우리는 아이스로 먹으려고 한다며 1봉씩 더 달라고 하니까 선생님은 헛웃음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 우리 선생님들끼리 회비 내서 사는 거예요. 학교에서 사주는 거 아니고.
아, 얼음은 한 개씩 넣고.
또래 교생 친구가 얼음을 두 개 넣으려고 하자 한 개만 넣으라는 얘기였다. 다른 교사들 먹을 얼음이 부족하다고. 매일 본인들이 돌아가면서 얼린다며 하소연에 가까운 생색을 내는데, 허허 이거 참, 얼음컵이라도 사드려야 하나.. 우리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결국 믹스 1봉은 더 받을 수 없었고 그날 물조절에 실패한 믹스 1봉과 각얼음 1개를 넣은 커피는 호로록, 두 모금만에 감질맛만 남기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다음날, 체교 교생 오빠는 편의점 커피 4개를 사 와서 말없이 돌렸다. 우리 교생 넷은 교생실습이 끝날 때까지 돌아가면서 편의점 커피를 사 와 점심식사 후에 함께 마셨고, 믹스커피를 받으러 교무실에 가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실습 마지막 날에 떡을 80세트 돌릴 게 아니라 믹스커피를 몇십 박스 선물로 주고 갈 걸 그랬다. 허허.)
시간이 흘러, 교생실습 마지막 날이 되었다. 2주 동안 고생한 교생들을 위해 회식을 한다길래 학교 일과를 마치고 자차가 있던 체교 교생 오빠의 차를 타고 회식 장소로 향했다. 학교 근처 중국집이었는데, 우리가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제일 안쪽에 있는 룸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침침한 전등 아래 회전식 식탁이 두 개 있고 한쪽에 교감선생님을 위시한 열댓 명의 선생님들이 빈자리 없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다른 회전식 식탁에는 30대 수학과 여자선생님과 40대 영어과 여자선생님 두 분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낭패의 표정이 어려있었는데 간발의 차로 주류테이블에 끼지 못한 듯했다. 누가 봐도 어린애들 상대하기 싫어하는 어른의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시작된 식사 타임. 형식적인 진행 멘트조차 일절 없이 두 테이블은 완전히 단절된 섬이었다. 주류테이블에서 "부동산 쪽에 좋은 정보 있으면 공유 좀 해봐요."라는 교감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무부장 선생님을 필두로 죽 돌아가면서 요즘 어디 동네가 좋다던데, 누가 뭘 사서 많이 벌었다던데 따위의 정보가 샘물처럼 솟아 나왔다.
부동산 얘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다음 타자는, 주식 정보 공유. 사돈 팔촌의 누가 이 회사에 다니는데 앞으로 좋아질 것 같다더라, 아는 친구의 형부의 매형의 조카가 요즘 회사가 바빠서 야근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온다더라, 등의 실체 없는 소문이 생성되는 경위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비주류테이블에선 약간의 대화와 간헐적인 적막이 순환되듯 이어졌는데 교장선생님이 우리가 학생일 때 평교사였다고 지나가는 얘기로 하자, 갑자기 두 여자선생님이 눈을 번쩍이더니 촉새로 변신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평교사였을 때 어땠냐, 학생들한텐 어떤 교사였냐, 어떤 대화 스타일을 좋아하냐,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냐, 뭘 좋아하냐 등등…… 3월에 새로 부임한 교장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지 두 선생님은 제자였던 우리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전에 없던 적극성을 띠고 달려들었다.
교생 생활은 어땠는지, 실제 교사로서의 생활은 어떤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조언해 주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그런 자리를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정말이지 크나큰 사치였다. 그들에게 교생은 한없이 귀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 잠깐 머물다 가는 교생을 학교에서든 인생에서든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 거라고. 그들은 현생을 살기에 바쁜 직장인이었고 직업인이었다. 교생 신분의 대학생들은 그들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다.
그때 알았다. 아, 교생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시간을 내준 게 아니라 '그들의 회식'에 우리가 '낀' 거구나. 교생 마지막 배웅 회식, 을 가장한 본인들의 회식 겸 정보공유의 장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체교 교생 오빠와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이런 자리는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체교 오빠는 "사회에 나가면 다 이런 자린데 어떡하게." 라며 씁쓸한 미소로 나를 위로했다.
믹스커피를 홀짝이는 사이, 학생과 어른 사이의 과도기였던 그때의 아릿한 기억이 나를 강렬하게 훑고 지나갔다.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정말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걸까, 라며 서러운 마음에 가족 앞에서 씩씩대기도 했던 나의 옛 모습이 떠올라 쿡쿡,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회가 원래 이렇다, 라는 체교 교생 오빠의 말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물음표를 띠지만, 이젠 중국집에서 칠리새우의 달콤함과 함께 이때의 이야기를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나는 많이 단단해진 걸까, 아니면 적당히 물러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