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여섯 손주 가운데 네 번째인 내가, 위로는 언니 하나, 오빠 둘, 밑으로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가 있는 내가 제일 복 받았다고. 얼마나 좋냐고.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게 나의 저주라는 것을.
두 살 차이씩 나는 여섯 손주 중 첫째인 언니는 첫 손주라서. 둘째, 셋째, 다섯째는 손자라서. 마지막 여섯째는 여자지만 막내라서 고유의 특별함을 부여받았다. 그에 비해 첫 손주도, 손자도, 장손도, 막내도 아닌 여섯째 중 네 번째 손주이자 첫째도 막내도 아닌 둘째 손녀인 나는, 어떠한 속성도 부여받지 못한 유일한 손주였다.
맏이는 맏이라서, 손자는 손자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예쁨 받지만 그 사이에 애매하게 끼인 둘째 손녀는 따스한 관심과 칭찬 한 줌 없이도 알아서 잘 커야 한다는 의미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지금도 그날을 기억한다. 대학생 시절 4.5점 만점으로 과수석을 했을 때. 마침 그 시기에 다른 일 때문에 할머니를 뵈러 갔었고 엄마는 겸사겸사 딸의 기쁜 소식을 할머니께 전했다. 그러자 할머니의 동그랗게 커진 두 눈은 바닥 구석 어딘가로 빠르게 떨어졌고, 개미 같은 목소리로 "응.. 잘했네.."라고 혼잣말을 하듯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잠시 후, 엄마와 아빠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할머니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조용히 손짓했다. 그리곤 내 손에 5만 원을 쥐어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른 친척들 있을 땐 절대 말하지 마라."
할머니는 다시 한번 다짐을 받듯 엄한 눈빛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그리곤 이내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텅 빈 눈동자. 처진 눈꼬리. 그토록 적막하고 비감한 표정이라니. 마치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칭찬과 격려의 말을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할머니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할머니는 예로부터 아들, 손자, 맏이를 최고로 아시는 분이다. 덕분에 여자는 남자 잘 만나서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나의 해냄이 다른 손주들의 기를 죽일까 봐 염려한 것일까? 여자는 배움이 허락되지 않았던 타고난 시대에 대한 설움이었을까? 아니면 당신 인생철학대로 조기교육이 안 된 둘째 손녀에 대한 엄중한 경고? 그도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혹은 나의 착각?
다른 손주들의 손을 잡고도 말했을까? 다른 친척들 앞에선 너의 잘남을 뻥끗도 하지 말려무나. 하지만 그렇다기엔 나를 제외한 사촌들의 크고 작은 업적들은 상당히 공개적이었고, 다른 손주들이 뭔가를 잘했을 땐 "어이구, 잘했네, 우리 00!" 하며 할머니의 덩실덩실 춤추던 목소리의 리듬이 유독 내 앞에서만 자취를 감췄다.
둘만의 비밀. 그러나 결코 원해본 적 없던 비밀. 그 후로도 엄마를 통해 나의 크고 작은 업적들은 할머니의 귀에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무수한 세종대왕과 신사임당을 만지작거리며 할머니의 바람대로 언제까지나 고요히 입을 다물 뿐이었다.
할머니를 주제로 한 글은 대개 따뜻하다. 사랑을 담은 쑥국 한 그릇, 웬만한 드라마 저리 가라 할 만큼 재밌는 인생 이야기, 하물며 다른 자식들 몰래 찔러주는 쌈짓돈까지!(아, 돈을 받긴 했구나.) 가끔 손녀지만 첫 손주, 첫 정이라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어떤 느낌일까 늘 궁금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우물. 아쉽지만 이번 생애엔 할머니와의 그런 나풀나풀한 이야기를 쓸 기회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주어진 것보단 내 능력과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의 추를 좀 더 두게 됐다. 태어나면서 손에 쥐어진 것보다 앞으로 무엇을 쥘 것인지에 온 마음을 집중했고, 남의 시선과 평가보다는 나의 의지대로 색색깔의 문을 두드리며 비스킷을 탐색하는 강아지처럼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탐험했다. 다행히 삶을 향한 나의 버둥거림은 때에 맞춰 적절히 응답해 줬고, 대체로 합당한 시간이 지나면 적합한 성과가 선물처럼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하긴, 그저 주어졌다는 이유로 원하는 왕관도 아닌데 한평생 머리에 얹고 사는 것도 좀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어른들의 기대치와 댓글처럼 따라붙는 타인의 소망이란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사촌들에 비해 나에겐 한 줌의 자유가 더 주어진 것이었을지도. 생각해 보면 가려진 손주라는 위치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칭찬과 관심을 받기 위해 내 본성에 반해 무리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타인의 개입 없이 조용히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결국 결핍과 자양분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결핍을 자양분 삼아 나를 성장시킬 것인지, 아니면 결핍이 그 상태로 나를 갉아먹도록 그대로 둘 것인지. 누구에게나 이 동전의 존재는 피할 수 없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의 선택일 것이다.
요즘은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가족행사에 가면 할머니가 먼저 내 손을 잡으며 반가운 기색을 내보이신다. 막상 사랑을 줬던 손자들은 이제 나이 먹었다고 데면데면해지고 첫 손주인 사촌언니는 결혼을 해서, 귀여워하던 막내여동생은 다른 지역에 취업을 해서 자주 못 보게 되니, 비로소 내 저주가 시들해진 걸까.
누군가 그랬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다른 상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건 꽤나 멋진 일이라고. 맞다. 정말 그렇다. 이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왜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내 사고의 틀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더듬어 나가 보는 건, 그렇게 해서 타인에 대해 섬세하고 세심한 촉각을 갖게 되는 건 세상을 향한 다정함을 키우는 일이고 사건의 지평선 너머를 엿볼 수 있게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다고 반드시 상대방을 이해 또는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경위를 알게 되는 것에 그칠 수도 있다. 아마도 난 그 사실이 서글픈 것일 테고,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그날 할머니가 나에게 보여줬던 그 적막하고 비감한 표정이 그림자처럼 어김없이 따라오는 게 서러운 것일 테다.
저주는 시들해졌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예상치 못한 할머니의 환대가 어색한 나는 손을 빼지도 못한 채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맞잡고, 할머니의 오래된 그림자를 물리치려 애쓰며, 타인의 크고 작은 업적을 축하하며, 어정쩡한 미소와 함께 그저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