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소개팅 첫 만남에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가장 마지막으로 설레었던 순간'을 물어보라고 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고 며칠간 머릿속에 맴돌만한 질문이 아닐까. 만약 선뜻 답을 내놓는 사람이라면, 빠른 시간 내에 상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가만히 보면 설렘이라는 순간의 몰캉한 자극이 거대한 삶을 지탱한다. 일말의 기대와 원초적 끌림에 일치하는 선택들로 오늘의 하루가 직조된다. 아주 작게는 아침에 손을 뻗는 옷에서 '너무 덥지 않으면서 밤에는 적당히 따뜻할 수 있는 포근함'을 기대한다. 점심 메뉴를 고르며 '저녁까지 버틸 수 있을만한 든든함과 나른한 점심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줄 자극적인 맛'을 상상하며 설레기도 한다. 티끌 같아서 우리가 그 감정을 눈치채지 않을 뿐이다.
설렘은 새로운 것으로부터 탄생한다. 익숙한 것에서 설렘을 느꼈다면, 너무도 익숙한 순간에 매몰되어 약간의 변화마저 새롭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익숙함의 정의를 스스로 잘못 내렸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모르는 것들이 훨씬 많은데, 그 대상에 대해 마치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천직'이라 느끼는 사람들은 익숙하게 움직이는 몸동작 안에서 이따금 찾아내는 설렘에 모든 의미를 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100명이 있다고 하면, 100가지의 다른 설렘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똑같은 탕후루 가게를 운영한다고 해도 A사장님은 탕후루의 달콤함에 설레고, B사장님은 탕후루 속 과일이 빛에 비출 때마다 반짝이는 영롱함에 설레고, C사장님은 탕후루에 행복해하는 젊은이들의 표정에 설레는 것이다. 그러니 설렘은 곧 취향이 되고, 나아가 삶이 된다.
며칠 전,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이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렸다. 별밤지기 김이나 작사가님의 오랜 팬이자 부엉이로서(별밤 애청자의 별명이다) 오래간만에 설레는 마음을 물씬 느끼며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이동식 버스 라디오 부스가 중앙에 있었다. 그 앞으로는 넓은 야외 광장에서 돗자리를 편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양 길가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는'이라는 문구가 붙은 소고기 불초밥, 화덕 피자, 엄청난 화력으로 구워지는 닭꼬치, 엄마 손 떡볶이, 치즈 닭강정을 파는 푸드트럭에서 각자의 음식 연기가 풍겨왔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슨 단체인지 주황색 옷과 머리띠를 일제히 하고 있었다. 연령대도 50대 정도 되어 보였다. '주변에 다른 행사가 있었는데 단체로 들린 것일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라디오 공개방송에 출연하는 트로트가수 '손태진'의 팬클럽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누구보다 상기되고 설레보였다. 덕질은 더 이상 20대 '빠순이'의 것이 아니었다. 금전적 넉넉함과 시간적 평온함을 가진 중년의 힘이랄까. 왠지 그들은 과거 20대 시절 누구보다 야생의 덕질을 경험해 온 '경력직 덕후'인 듯했다. 그중에는 휠체어를 탄 어르신도 후드티를 입고 불빛이 나오는 주황빛 머리띠를 하고 계셨다. 역시 설렘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몸에 마음을 맡길 줄 안다. 그 열기에 김이나 작사가님의 소극적 덕후인 나는 측면에서 겨우 작은 돗자리를 폈다.
공개방송 출연자 중 한 명이었던 '황석희 번역가'님은 최근에 '웬 말이냐'는 문장에 꽂혔다고 말했다. 이 '웬 말이냐'는 문장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어렵고,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길 때에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에서 '하지 마'는 맛이 살지 않고, '그게 지금 웬 말이냐'는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는 것이 번역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영화 번역을 하다가 '웬 말이냐'는 표현 그 이상 그 이하도 찾을 수 없는 기막힌 순간을 만났을 때 엄청난 설렘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직업적 만족도와 내공은 이러한 설렘이 지탱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설렘은 곧 취향이고, 반드시 사라진다. 사라지면 어떤가. 모든 것은 죽어가는 중임과 동시에 탄생한다. 티끌 같은 몰캉한 감정을 자주, 많이 발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이 어떤 설렘에서 오는 힘인지 생각해 본다. 글을 쓰는 동안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흡입되는 기분이 설레는 것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각자 어떤 설렘으로 오늘을 살아가는지 상상하는 것이 설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