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 24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로 기억된다.
이날은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고 가족과 오붓하게 식사도 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뜻깊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나에게 12월 24일은 더욱 특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하지만 바로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12월이 아닌 해를 넘겨 1월에 태어날 예정이었으나 뭐가 그리도 궁금했는지 해를 넘기지 않고 예정일보다 보름 먼저 눈을 떴다.
특별하다고 느낀 나의 생일이 어린 시절에는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큰 산에 가려져 많은 축하를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서운한 마음에 '평범한 날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워낙 SNS가 발달해 내가 생일이라고 밝히지 않아도 SNS의 각 계정이 알아서 생일을 알려준다. 이를 보고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먼 곳에 있는 지인들도 많은 축하를 보내주어 감사한 마음이다. 심지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특별한 내 생일을 축하해줘 고맙게 생각한다. 나의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후광효과를 이제야 보는 것 같다.
이번 생일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던 차에 며칠 전 본 TV 프로그램은 나로 하여금 내 생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자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 생일날, 12월 24일 바로 그 날에 부친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후 그에게 12월 24일은 기쁨과 행복의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 슬프고 그리운 날로 기억된다고 했다. 나의 행복한 날이 어떤 이에게는 가슴 치는 고통의 날로 새겨져 있었다. 출연자는 우울했던 그의 크리스마스이브가 앞으로는 즐거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재미있는 이벤트를 꾸몄는데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태어난 날이나 세상을 떠난 날과 같이 의미 있고 특정한 날짜는 영원히 기억된다. 그 기억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욱 각인되고 환희보다는 서럽고 아쉬운 마음이 더 오래가기 마련이다.
이런 비슷한 감정을 20살 때도 느낀 적 있다. 갓 대학교에 들어가 '이젠 어른이다'를 외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친구 A군에게 연락이 왔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B군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가끔 B군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몇 번 뵈었던 분이라 굉장히 놀랐다. 그때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충격을 받았다. B군의 충격과 아픔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B군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장례식장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교복을 입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서너 명이 케이크를 들고 연신 “생일 축하해~”를 외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나는 비보를 접하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어떤 이들은 세상 속에 새롭게 이름 새긴 날을 기념하며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이상하고 허망한 감정이 교차됐다. 나의 기쁜 날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고, 어떤 이의 기쁜 날이 나에게 또 다른 슬픈 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솔직히 아직도 그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다. 365일 중 364일 열심히 살다가 생일 하루는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고, 또 1년 내내 열심히 살다가 어떤 날은 누군가를 추모하고...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잊고 있다가 다시 떠올리고 추억하는 것. 추억하고 그리워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생자필멸(生者必滅)'
생명이 있는 것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나타낸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떠남이 있으면 다시 돌아오듯 이 땅 위의 모든 생물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고 죽는 것. 생겼다 없어지는 일.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만나면 기쁘고 헤어지면 슬픈 것도 당연한 일인데 헤어짐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예수님 탄생 하루 전날 나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문구를 곱씹으며 인생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다양한 생각이 오가는 나의 생일이다. 미세먼지 속에서도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