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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닻을 올려라

찬연한 도시를 뒤로하고 바다로 향하는

15세기의 모험가



섬에서 대륙으로 이동할 때는 당연히 비행기를 탄다. 하지만 시칠리아 섬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은 페리를 이용해야겠다. 속도는 열 배 가까이 느리고 가격도 더 비싸다. 자동차를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페리에서 파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로지 낭만을 위해 선택한 이동수단이다. 온화한 태양과 함께 선상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도착한 항구에는 축구장만 한 페리 두 척이 늠름하게 서 있고 자동차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배에 승선하여 엘리베이터를 타니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문이 열리고 노란빛 조명이 비추는 선내를 보니 괜히 턱시도를 입어야 할 것 같다. 구명보트는 적절하게 실었을까? 바닷물은 차갑겠지? 짧고 쓸모없는 걱정을 하며 객실에 들어왔다. 4인실이었지만 혼자 뿐이라 사실상 1인실이었다. 편하게 짐을 풀고 샤워부터 했다. 따뜻한 물이 샤워기에서 콸콸 나왔다. 물이 이렇게 잘 나오다니 바닷물을 끌어올려 쓰나? 물맛을 보았지만 짠맛은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선내를 둘러보았다. 레스토랑, 수영장, 도박장, 바 등 다양한 시설이 있었으나 비수기라 그런지 대부분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선상으로 나가 밤바람을 맞는다. 배는 어느새 항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직 남은 도시의 불빛들이 밤바다를 비추었다. 배의 안전 울타리 위에 올라가 양팔을 벌리고 타이타닉 자세를 펼쳐본다. 어두운 바닷바람을 실컷 맞고 선내로 들어오니 페리 탐험도 대략 끝난 듯하다.


바에서 진토닉 한 잔을 주문한다. 선상의 알코올이란 본디 거칠고 낭만 있는 것이지만 막상 마셔보니 배가 흔들려 술맛이 좋지 않다. 인터넷도 되지 않아 무료함을 느끼기 전에 진토닉을 서둘러 비웠다. 객실로 돌아와 누우니 조금은 아쉬우면서도 마음이 편하다. 잠든 사이 가져다 줄 아침의 항구를 기다리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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