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풀어주는 소고기뭇국
엄마가 생각나는 음식
지금이야 없어서 못 먹지만 어릴 때는 못 먹는 음식도 많고 편식이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약골이었는데 스스로는 꽤나 힘이 세고 건강하다고 착각하면서 자라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힘이 정말 세다면서 친구들 가방을 다 들어주겠다고 호기를 부리다가 가방 7개를 짊어진 채 개울가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반 대항 팔씨름대회가 열렸을 때는, 이제야말로 내 힘을 뽐낼 기회라고 내심 기뻐했다. 반 대표는 당연히 내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남자애들까지 다 이겨버릴까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그런데 웬걸, 누가 봐도 작고 약한 아이들 한둘을 겨우 이기고는 곧 패배의 쓴맛을 봐야만 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생각했다.
‘어, 어? 이럴 리가 없는데? 나, 진짜 힘 센데?’
부모님은 골고루 많이 먹어야 키도 크고 힘이 세진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채소류를 확실하게 멀리했고, 맵거나 된장이 들어간 음식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자주 먹을 수 없어서 그랬는지 고기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사실 우리 가족은 적게 먹었고 고기를 잘 먹는 편도 아니었다. 치킨을 한 마리 시키면 여섯 식구가 나눠 먹고도 꼭 두어 조각은 남아서 버리곤 했다. 그게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는 건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오로지 소고기만 먹을 수 있었는데 엄마가 소고기로 만들어내는 것은 주로 소고기뭇국이었다. 엄마는 동네 정육점 사장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좋은 고기를 끊어다 냉동실에 쟁여두었다가 마땅한 반찬이 없거나 손님이 오시면 소고기뭇국을 끓였다.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는 방법도 있지만, 엄마는 항상 물을 팔팔 끓이다가 소고기를 넣었다. 그렇게 해야 맑은 국물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소고기를 넣은 후에 거품이 올라오면 국자로 참을성 있게 걷어냈다. 국물이 맑게 우러나면 나박나박 썰은 무와 다진 마늘을 넣고 푹 끓인 다음 소금으로 간을 하고 쫑쫑 썬 파를 올려서 그릇에 담아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아빠의 엄마, 즉 친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엄마는 어김없이 소고기뭇국을 밥상에 올렸다. 한번은 할머니가 너네는 맨날 비싼 고기만 먹어서 좋겠다며 공연한 트집을 잡았다. 엄마가 옆집 아줌마에게 몇 번이고 하소연하는 걸 들은 나는 다음에 할머니가 오셔서 소고기뭇국이 상에 오르자 일부러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 오셨다고 고기 사온 거야? 와, 할머니 덕분에 고기 구경하네.”
할머니는 눈을 흘기시고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지랄.”
엄마가 비싼 소고기로 불고기를 하지 않고 국을 끓이는 것이 불만이었다. 맛없는 무를 잔뜩 넣는 것도 싫었다. 무, 파, 마늘 등 맘에 안 드는 재료를 건져내거나 남기면 부모님은 어디 밥상머리에서 낚시질을 하느냐며 야단을 쳤기 때문에 소고기뭇국이 끓고 있으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국 주지마.”
대학에 입학해서 연극동아리에 들어갔다. 한 달간 맹렬히 연습한 끝에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날, 나는 만취했다.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도, 술을 잘 마신다는 말도 기뻐서 막걸리며 소주를 사양하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 마신 탓이었다. 자정이 넘어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집에 들어간 내 등짝을 엄마는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다음날 아침에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아빠는 출근하고 동생들도 모두 학교에 가서 집에는 엄마와 나 둘만 남았다. 그 와중에 평화롭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밥상을 들여놓았다. 엄마는 하얗게 눈을 흘기고는 ‘쩟쩟’ 혀를 찼다.
“못 먹을 것 같은데?”
내가 말하자 엄마는
“국에 밥 말아서 조금이라도 먹어. 속 풀어야지.”하고는 방문을 닫았다. 엄마 말대로 소고기뭇국에 밥을 반 공기 말아서 천천히 먹었다. 국물을 싹싹 비우고 나니 정말로 속이 편안해졌다.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주식 투자를 한답시고 큰 빚을 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로 제대로 잘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었다. 임신 전보다도 훨씬 야윈 내 모습을 본 동생이 엄마에게 언니 꼴이 말이 아니더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엄마는 몸조리를 잘 못 한 탓인 줄 알고 얼마간 내려와서 지내라고 했다. 막 2개월쯤 지난 아기를 안고 짐보따리를 들고 기차를 탔다. 아무 내색 하지 않고 그저 쉬었다 오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엄마가 반갑게 문을 열자마자 왈칵 울음이 터졌다.
“엄마, 나 어떡해.”
엄마는 아기를 안아 재우고는 주방으로 갔다. 쑥덕쑥덕 칼질하는 소리, 압력솥에서 치이익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눈이 붉어진 채 밥상을 차려와서는 일단 밥부터 좀 먹으라고 했다. 먹어야 기운 차린다고 했던가, 애를 키우려면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했던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안방으로 건너간 후 나는 눈물을 찍어내며 밥을 먹었다. 뜨끈한 소고기뭇국을 숟갈로 떠서 후룩 삼키니 오랜만에 입맛이 돌았다.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 고들빼기 김치, 잘 익은 김장김치, 무말랭이무침을 골고루 집어 먹으며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어쩐지 안심이 되고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싫던 소고기뭇국이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7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이기 시작했다. 만들기는 쉽지만, 조리법이 간단한 요리일수록 한 번에 제대로 맛을 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처음에는 무가 물컹한 게 싫어서 덜 익혔더니 국물도 시원하지가 않고 무에서 떫은맛이 났다. 아들은 실패한 그 소고기뭇국을 맛본 후로 다시는 먹지 않는다. 나도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속 부대낄 때, 마음 뒤집어질 때,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산다며 소고기뭇국을 끓여주던 엄마는 이제 없다. 나는 이제 채소도 고기도 골고루 잘 먹지만 속상한 일이 있거나 속이 허할 때는 소고기뭇국을 끓인다. 보글보글 국물이 끓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면 울음을 삼키며 소고기뭇국을 끓이던 엄마가 떠오른다. 먹고 나면 다시 기운이 날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