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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Nov 18. 2020

당신의 마음에 꽃을 놓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올 해 가을에는 수북하게 핀 노란색과 보라색의 국화 화분이 유치원 문 앞과 올라오는 계단마다 놓였다.

유치원 입구를 드나들 때마다 첫째는 활짝 핀 국화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어수룩한 아이의 손에 꽃 몇 송이가 줄기째 뽑히고 만다. 꽃을 예뻐할 줄은 모르지만 첫째는 꽃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길을 걷다가 아련하게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면 분홍 꽃잎을 거친 손길로 훑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고개를 들어 날리는 꽃눈송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걸음을 뗀다.


첫째는 다섯 살에 병설유치원 만 3세 반에 입학했다. 그리고 통합학급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같은 연령의 비장애 아이들과 장애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받는 통합학급.

첫째의 선생님은 통합학급 담임선생님과 특수학급 특수 선생님 두 분이고 소속 학급도 통합학급과 특수학급 두 개가 되었다.


유치원에 적응을 하는데 첫째보다 엄마가 시간이 더 걸렸다. 유치원의 일과표는 시간 표기 없이 기재되어 있다. 시간마다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어느 선생님과 어느 반에서 수업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담임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야 할지 특수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매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뭐 하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내 아이가 유치원에서 과연 잘 지내고 있는지 불안했다. 담임선생님과 특수 선생님께서 첫째가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번갈아 이야기를 해주셔도 믿기 어려웠다. 특히 아이의 얼굴이 많이 어두워졌던 다섯 살, 첫 학기엔 더욱 그랬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엄마의 마음이 첫째에게도 첫째의 선생님들께도 훤히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결석 없이 유치원에 보냈다. 걱정이 된다고 아이를 끌어안고 집 안에서만 키울 수는 없었다.

유치원에 다니며 아이는 친구들을 따라 어설프게 뛰기 시작했고 말은 못 하지만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을 배웠다. 아침 등원 시간에 원감님께서 이름을 부르며 두 팔을 벌리면 피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 안길 줄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엄마도 선생님들이 아이를 품고 함께 키워가는, 신뢰할만한 협력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원 시간 특수 선생님과 첫째가 손을 잡고 나와 유치원 앞 화단을 구경하고 있다. 첫째는 스치듯 보라색 국화꽃을 뚝 뽑는다.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오늘 첫째가 유치원 생활을 잘하였다고 칭찬을 전하시고 아이와 인사를 하기 위해 무릎을 굽혀 첫째의 눈을 맞춘다.


"첫째야. 잘 가."

그러자 첫째가 손에 쥐고 있던 보라색 국화꽃을 선생님께 내밀었다. 선생님이 손을 내밀자 아이가 선생님의 손바닥 위에 고운 보라색 꽃을 얹어주었다. 촘촘한 꽃잎 하나 상한데 없이 활짝 핀 채로, 선생님의 손 위에 국화꽃 한 송이가 사뿐히 놓였다.

"첫째야. 이 꽃 선생님 주는 거야? 감동이다!" 기뻐하는 선생님을 무감한 얼굴로 첫째가 지긋이 바라본다.


매일 아침 만나 인사하고 손을 잡고 첫째의 반에 데려가고 숟가락질을 잘하지 못하는 첫째가 밥을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돕고. 첫째가 좋아할 만한 교구를 준비하고 같은 반 아이들이 첫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기회를 만들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돌보는 선생님의 따듯한 마음 위에 아이가 꽃을 놓아드렸다.  

다른 이와 주고받는 기쁨을 아직 알지 못하는 첫째인데 선생님께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선물하며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는 것만 같다. 아이의 말 없는 감사가 선생님께 작은 힘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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