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난이도가 높은 요가수련을 시작하면서, 수련 도중에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다음 동작을 급히 따라가려고 하다 보니, 몸에 자꾸만 힘을 주게 되었다. 결국 몸 구석구석 쥐가 나서 수련 중에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요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 보세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다음 동작을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순간순간에 마음을 기울이고, 흐름에 몸을 맡겨 보세요.”
처음 요가 했을 때가 생각났다. 빈야사 요가 중에, ‘머리로 서기’라는 동작이 있다. 머리와 두 팔을 이용하여 물구나무서기 하는 동작인데, 초보자들은 쉽사리 하지 못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뒤로 넘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발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발을 떼기가 두려웠다. 어떻게든 힘을 이용해서 잠깐 발을 떼고 올려도, 뒤로 넘어질 것 같아서 금세 다리를 다시 내리곤 했다. 그때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흐름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머리로 서기를 처음 성공했던 순간이 있었다. 머리와 두 팔로 삼각형의 중심을 잡고 앞으로 조금씩 발을 옮겼다. 순간 뭔가 붕 뜬 느낌이 들었는데, 발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흐름에 그대로 다리를 위로 들어 올렸는데, 내가 중력을 거슬러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1분을 있었을까. 무게중심이 흔들리더니, 뒤로 넘어질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머리 뒤쪽이 두려웠지만, 이왕 성공한 거 흐름에 계속 몸을 맡겨보자 마음먹었다. 결국 뒤로 넘어졌는데, 자연스럽게 앞구르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내 던졌는데도, 어디도 다친 곳이 없었다. 그 이후로 머리로 서기 동작은 아주 쉽게 하고 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도, 흐름에 맡겨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등바등 몸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거꾸로 서 보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계속 넘어졌다.
내 20대를 돌이켜보면, 흘러가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전적인 성향을 지닌 탓에, 뭐든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원하는 대로 삶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 애써왔다. 이런 나의 모습에 자기만족 하며 살아왔다. 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연인관계도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어왔었다. 연애를 시작하면, 늘 상대방에게 맞춰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게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연인이 “트렌디한 노래가 좋아”라고 이야기하면, “나도 요즘 노래들 괜찮더라”를 반복했다. 사실 나는 레트로 포크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가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 좋아”라고 하면, “내가 그런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사실 이상주의적인 사람인데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그런 마음이 이기적인 사랑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또 사랑은 상대방에게 나를 맞춰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명 인연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는데, 그 물이 웅덩이가 되어 계속 썩어가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바꾸려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삶의 상처가 많은 연인. 나는 그의 상처를 내가 치유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서로의 상처를 함께 보듬어가는 게 사랑이라 생각했고, 그걸 만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몰랐다. 그게 바로 이기적인 면이라는 걸. 상처는 상대가 만져주는 게 아니었다. 세월과 함께 오롯이 혼자서 치유해가는 것이었다. 다만 옆에 있는 사람은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 뿐이었다.
이별의 지점에 다다랐을 때도, 나는 우리의 사랑 또한 내가 다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기적이지만, 내 마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기에. 하지만 이미 상대는 마음의 정리를 마쳐버린 그 잔인한 지점에서, 갈 길을 잃어버렸었다. 상대는 이미 흘러갔는데, 나는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두려웠다. 이대로 흘러가 버리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아서.
흐르는 대로 산다는 건, 상실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도 아직 이것이 참 버겁다. 그래도 다시 한번 다잡아 본다. ‘머리로 서기’ 동작을 처음 해냈던 그때를 생각하며.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날 맡겼을 뿐인데, 중력을 이기고 거꾸로 우뚝 서 냈던 그때. 보이지 않는 등 뒤로 넘어져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던 그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