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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Mar 05. 2022

커피중심주의

2030 성장 에세이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 18세기 프랑스 외교관 샤를 모르스 드 탈레랑이 커피를 묘사한 말이다. 커피는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커피콩에는 쓴맛, 단맛, 신맛, 짠맛이 두루 담겨 있는데, 원산지와 가공 방법, 원두 볶는 방식 등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또한 물, 우유 등 다양한 것들과 섞일 줄 안다. 어떤 것과도 본연의 맛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변신한다.


  9년전 커피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이때 커피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대기업 사옥에 있는 구내카페였는데, 기업이 돈이 많았는지 알바생에게 무제한의 커피를 제공했다. 덕분에 커피를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커피머신에서 갓 내린 팔팔한 커피를 에스프레소라고 한다. 여기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 우유를 넣으면 카페라떼나 카푸치노가 된다.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쫀득한 아포가토가 탄생한다. 녹차라떼나 홍차라떼에 에스프레소를 넣어 먹기도 했는데, 짭짤한 맛이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오묘한 맛이다. 딱 한 가지는 실수였다. 퓨전이랍시고 수박주스에 넣어 먹은 적이 있는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맛이었다. 아무튼 커피는 이렇게 다른 물질들과 잘 어울린다. 자기만의 맛과 향을 잃지 않으면서, 색다른 것으로 재창조된다.




  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주위 어느 사람과도 어울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나를 이해해 주는 여자가 좋았다. 나라는 커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 어떨 땐 나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어떨 땐 따뜻한 카페라떼로 만들어주는 물과 우유 같은 사람. 몇 번 그런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커피를 만들어 갔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늘 마지막은 수박주스에 커피 넣은 꼴로 망가졌다.


  커피수박주스처럼 연애에 실패할 때마다, 친한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얼마 전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연스럽게 연애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 친구가 말했다. “솔직히 너도 별론데, 너 전여친은 진짜 더 별로였어. 뭐 아무튼 요즘은 만나는 사람 없냐?”. 내가 답했다. “인연을 또 만나는 게 쉽지가 않지. 정말 나란 사람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내 영혼을 알아주는 사람 말이야.” 그 친구가 물끄러미 날 바라보다가 말했다. “왜 너는 네가 그녀의 영혼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



  

  대꾸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를 거의 다 마셨는데도, 머그잔이 무겁게 느껴졌다. 잔 바닥에 깔려 있는 시커먼 액체를 보다가 어휘 하나가 떠올랐다. ‘커피중심주의’. 나는 철저히 내 중심적인 연애를 해오고 있었다. 기념일날 상대방이 갖고 싶은 물건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물로 주며 자기만족에 빠졌었다. 그리곤 상대방이 기쁜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 혼자서 실망했다. 내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여자친구에게 연락 안 하는 것은 괜찮았으나, 상대방이 그러면 화를 냈다. 그래 놓고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나는 쟤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같이 가고, 쟤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든지 같이 먹잖아. 그러니 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야.’라고 나 자신을 변호하곤 했지만, 늘 내 상황이 우선이었고, 내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사랑했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말 그대로 상대방은 소외시킨 채 ‘내 마음대로’만 사랑해왔던 것이다. 그 마음은 일방적이었고 내 조그마한 에스프레소 잔에만 머물러 있었다. 상대방의 물과 우유에 어떻게 잘 섞여 들어갈 수 있을지만 궁리했다. 나 자신이 물과 우유가 되어보려는 노력은 많이 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커피를 다양하게 만들어 줄 시원한 얼음, 뜨거운 스팀밀크, 쫀득한 젤라또 아이스크림이 되지 못했다.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설사 그 노력이 수박주스라 할지라도.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 이 문장에는 빠져있는 것들이 있다. 악마같이 검으려면, 에스프레소를 내릴 소량의 물이 있어야 한다. 지옥처럼 뜨거우려면, 섭씨 100도의 팔팔 끓는 물이 있어야 한다. 천사같이 순수하려면, 커피를 베이지색으로 만들어 줄 새하얀 우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탕처럼 달콤하려면, 향긋한 각설탕이 몇 알 있어야 한다. 근사한 커피를 만들어내려면, 커피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티스트: Francine Van H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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