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일하면 일기예보를 참 자주 보게 된다. 아이들의 바깥놀이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날씨는 사계절이 하루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변덕이 꽤 심하다.
2007년 12월, 멜번공항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입고 온 겨울옷을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으며 쨍쨍한 햇볕과 싸우며 새로 시작할 낯선 삶에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렌터카를 어렵사리 끌고 새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이삿짐은 낼 도착한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해질녁이 되자 갑자기 선선해지는 묘한 날씨의 변화를 몸소 느꼈다. 하지만 ‘한여름에 홑이불 한 장이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으로 우리 가족은 이미 깊은 꿈나라로 빠지고 말았다. 이른 새벽, 싸늘한 한기가 몸을 감싼 채 , 이를 덜덜 떨며 어이없는 추위와 싸웠던 기억은 아직도 멜번의 여름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 이유다.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마음을 내어 주기가 참 쉽지 않았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30년 이상을 적응해 살다가 터를 옮겨 온 데다 더욱이 날씨를 이해하기에는 이민생활은 터무니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변하는 날씨에 애꿎은 불평을 하면 옆에 있는 동료들은 “ That’s Melbourne!” 이렇게 말하고 쓰윽 화제를 바꾼다. 여기에서 태어난 그들도 포기한 마음인 듯 보였다.
변화무쌍이란 기대감의 존재를 무색하게 하는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번번이 실망하던 날씨의 얄미움을 언제부터인가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0년을 훌쩍 넘어 사니 무뎌져서일까? 일기예보를 들여다본다는 것을 유치원의 커다란 이벤트가 있거나 가족소풍이 있지 않으면 굳이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변덕스러운 날씨가 아주 싫지는 않게 되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나무가 뽑혀 날아가도 ‘아, 기온이 바뀌려나~’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려 한다. 게다가 햇볕 따사로운 날, 가벼운 차림으로 친구라도 만나러 가면 굵직한 비가 주룩주룩 와 준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자연의 힘인가?라고 생각하려 해도 여간 쉽지는 않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날씨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서서히 버리니 한 줄 햇살도 감사하게 되는 날이 찾아오고 있었다.
지난 주말 오후 늦게 유치원에서 바깥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겨울 막바지이지만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여전히 찬 밤공기가 쓰윽 스며드는 듯했다. 후드득 비가 떨어지다 멈추다 몇 번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 교사들은 한두 번 속은 터가 아니어서 웬만큼 비가 와도 개의치 않는다. 여느 때처럼 곧 그치리라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 선생님, 저기 무지개가 있어요!!” 아이들이 웅성웅성 하늘을 가리켰다. 모두가 올려다본 하늘엔 커다란 무지개가 보란 듯이 떠 있었다. 내가 본 무지개 중에 제일 컸다. ‘비가 오려나, 말려나…’ 생각하던 차에 본 무지개였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마음을 뺏기지 않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인생의 일기예보에 얼마나 기대하고 살고 있을까? 실망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 우기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은 기대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살아보자. 창가에 비치는 사소한 햇빛 한 줄기도 감사한 그런 마음, 또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서 무지개를 만나는 그런 행운이 덤으로 주어지는 삶도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