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멍요정 Oct 24. 2021

나홀로 입원하기

119는 사랑이야

작년 말에 신랑이 포항으로 출장을 간 사이에 열이 너무 높아졌다. 밤에는 37.7도에서 38도에 가까워 지길래 일단 해열제를 먹고 잤다. 문제는 아침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열은 38.7도가 나왔고, 움직일 수 없어서 거실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열이 계속 나니 열기때문에 눈물이 고여 앞도 흐려졌다. 코로나 사태로 진료가 가능한지 알 수 없었기에 차분하게 119에 전화했다.


나 : "지금 열이 38.7도까지 나왔는데 어디에서 진료를 볼 수 있나요?"

119상담 직원분 : "일단 선별진료소 가서 코로나 검사하셔야 해요."

나 : "제가 차가 없는데 택시 타도 되나요?"

119상담 직원분 "아니요. 그러면 저희가 구급차 보내드릴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내가 복용 중인 약과 옷 한 벌, 속옷 한 벌, 보온병, 마스크 등을 담았다. 입원해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연스럽게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기기 시작했다. 평소 들고 다니는 에코백에 들어갈 정도의 적은 짐을 챙기고 빠진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몇 분이 지나자 전화가 왔다.


119 출동대원 "119 출동대원인데요. 지금 열이 몇 도 나오나요?"

나 : "38.7도까지 나와요. 지금 다시 쟀는데 또 38.7도네요."

119 출동대원 "저희 다 왔는데 1층까지 내려오실 수 있나요?"

나 : "네, 내려갈게요."


굉장히 차분하게 119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혼자 짐을 싸서 119 출동대원분들의 도움으로 차에 실려갔다. 그때는 고열로 눈물이 흘러넘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119에 탑승하자마자 바이탈과 열을 체크했다. 39도가 넘었다.


119 출동대원 : "환자분, 지금 선택지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OO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하고 격리실 들어가는 거고요. 또 하나는 XX병원 가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하고 진료하고 약 받아서 다시 집에 가는거에요."

나 : "2번으로 할게요."

119 출동대원 : "네 그럼 XX병원 선별진료소로 가겠습니다."


삐용삐용 소리가 굉장히 먼 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선별진료소에 도착하니 119 출동대원분들이 이야기를 다 해주셨다. 나는 평소 가지고 다니던 에코백에 꾹꾹 눌러담은 짐을 꼬옥 안고 기다렸다. 열을 계속 재봐도 39도에서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코로나 검사, X-ray 촬영, 진료를 끝냈더니 내과 과장님이 내려오셨다.


내과 과장님 : "열이 너무 높아서 집에 가셔도 어차피 다시 와야 될 거에요. 입원하시죠."

나 : "네."


입원서류를 보호자가 적어줘야 한다는데 나는 와줄 사람이 없었다. 신랑은 포항 출장 중이었고, 친정 부모님도 동생의 일로 타지에 가셨기에 혼자였다.


병원직원분 : "보호자 언제 오실 수 있나요?"

나 : "못 올 것 같은데요?"


결국 혼자 입원서류를 쓰고, 특실에 입원했다. 코로나 검사를 했기 때문에 1인실에 입원을 해야 하는데, 남은 병실이 없었다. 2만 원 더 비싼 특실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비타민과 항생제, 해열제, 밥 대신인 것까지 총 4개의 링겔을 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밥을 좀 먹어보라는 권유에 처음 죽이 나온 날이었다. 밥을 안먹어봐서 몇 시인지 몰랐는데, 4시 50분에 배식하는 분이 죽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 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먹을 준비를 하는데, 나가다가 다시 들어오셔서는 나에게 물으셨다.


"임산부에요?"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나니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듣는 이 질문이 예전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해서 웃었다. 신랑에게 전화해서 얘기해주었더니 또 웃었다.


식판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 올 때 마다 나를 유심히 보셨지만.. 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신랑은 입원한지 2일째 저녁에 만났다. 대체 며칠만에 만나는 건지.. 내가 가장 아픈 순간에 항상 신랑이 없는 건 머피의 법칙 같은 느낌이다. 이때 혼자 119에 전화를 하고 입원까지 스스로 했던 경험은 아무도 없을 때 심하게 아프다면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가면 되고, 셀프입원을 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준 것 같다. 뭐라도 배우게 되고 안심이 되는 방법을 찾았으니 다행이겠지.


해열제 링겔을 달고 있으면서도 열은 39도를 맴돌아서 링겔의 갯수를 줄어들지 않았고, 주사를 넣을 때 마다 붓는 혈관 때문에 매일 새로운 혈관자리를 찾기 위해 간호사님들과 긴 시간을 보냈다. 약은 조금씩 바꾸고 추가 되었다.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약을 먹기 위해서 최소한 밥 한그릇은 비우자라는 생각으로 반찬 하나에 밥은 한숟가락 가득 떠서 꾸역꾸역 먹으며 버텨냈다. 간호사 분들이 최대한 잘 먹어야 혈관이 나온다고 하셔서 더 열심히 먹은 것 같다.


대신 의사선생님이 고열이 있으니 아이스크림이나 차가운 음료는 오히려 먹어도 좋다고 하셔서 바로 1층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차가운 것들을 사들고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건 결국 차가운 물이었다. 물 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어디 가지 않나보다.


검사를 하면서 다른 수치들이 정상이 되었음에도 잡히지 않는 고열로 나는 결국 10일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그것도 의사선생님이 더 어떻게 해줄 수 없어서 퇴원하라고 하셨다.


이때는 에피소드 보다 혼자 겪었던 과정이 너무 뇌리에 박혀서 한 번은 꼭 적고 싶었다. 나에게는 처음 겪었던 일이라 뭔가 특별한 일이 된 것 같다. 아직도 신랑이랑 가끔 이야기를 하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 TMI **


1. 119 출동대원 두 분을 만났을 때 시야가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방호복을 입은 모습이 우주인을 연상하게 했다. 실제로 방호복을 본 적이 없어 이렇게까지 중무장 한다는 것을 몰랐고,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119 차를 타본 것도 처음이었다. 입원이 결정 될 때까지 기다려주셨던 두 분께 너무 감사하다. 119는 사랑이다.


2. 몸무게나 살이 많은지 적은지와 별개로 혈관은 잘 먹어야 잘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혈관이 아예 잡히지 않는 상태로 입원을 했기에 무조건 잘 먹어야 했고, 움직이는 게 더 위험하다고 해서 VIP입원실에서 수시로 잠들었다. 진료, 검사, 간호사실, 편의점 외에는 나가지 않았다.


3. 나는 39도 넘는 열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도 침착하고 이성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급하게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혼자 아프더라도 차분히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내가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느낌.


4. 꾸준히 검사를 하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면서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다행히 새로 만난 담당 내과 선생님은 친절하고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주고 싶어하셔서 좋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이 사라지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