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식어가는 동안, D+70
1.
'막수 첫수 고정', '2개월 가래소리', '토 게워냄 구분', '아기체육관 사용시기', '2개월 낮잠 안 자요' …….
포털사이트 검색 기록이 아기를 낳기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아기의 작은 변화도 정상의 범주인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찾아보게 된다. 물론 대부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일상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일명 '먹놀잠(먹고 놀고 자고)'의 사이클이 딱딱 지켜지는 아기의 모습을 접하면 초보엄마의 생각이 많아진다. 처음에는 우리 아기도 저맘때 되면 저렇게 되겠지 했던 것들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다. 먹고 더 먹을 때도 있고, 먹고 바로 자고 싶어 칭얼거릴 때도 있고, 잠은 안 자고 놀다가 배고파할 때도 있다. 아니 거의 매일이 그렇다.
아기의 일과를 엄마의 생각대로 잘 굴려가는 사람들의 영상을 접하고 나니, 그러지 못한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처음이라, 내가 서툴러서 아기에게 편안한 하루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엉엉 우는 아기를 보며 덩달아 찔끔 울다가, 아기 키우는 일은 원래 쉽지 않은 것이며 아기도 크느라 힘들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아기 앞에서 빵긋 웃어 보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파이팅 엄마 힘든 건 아무도 몰라주지만 아기가 알 거예요.]
아무나 붙잡고 매일매일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으니, 인스타그램에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올리며 고민 한 스푼을 얹기도 한다. ('왜 안 자니..?' 같은) 어제는 아기가 도통 등을 대고 누우려 하질 않아 힘들었는데, 이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나는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육아를 하는 시간 대부분은 혼자가 아닌데 혼자인 것 같아서 힘든데, 반대로 생각하면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닌 거다. 아기가 내 눈을 바라봐주고 있으니까. (엉엉 울면서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볼 때도 있지만)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으면서, 아기와 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같은 경험을 했건 하지 않았건 공감을 건네는 목소리가 있고, 대화를 나누며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속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기들이 가득한 찬란한 세상은 대부분의 경험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체감하고 위로받았다.
2.
2개월 아기는 낯선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루에도 수십 번 아기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다 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70일 망고는 눈 맞춤을 잘하고 이야기를 하면 가만 듣고 있다가 말이 끝나면 방긋 웃어 보이기도 하고, 방긋 웃다가도 금방 뿌엥 하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런 아기에게 엄마의 표정과 문장이 어디까지 가 닿는지 알고 싶다. 물론 우리의 교감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기 시야 발달'과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개월마다 아기가 어떤 세상을 보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이미지가 나온다. 처음에는 블러 처리된 흑백 세상에서 엄마와 아빠를 중심으로 가까운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세상에 색깔도 점점 입혀진다. 갑작스레 입력되는 수많은 정보를 차근차근 단계별로 인식해 가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고 대견하다.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고부터는 조금씩 산책을 해주고 있다. 아니, 아기가 나를 위해 산책에 동행해주고 있다. 불면 날아갈 것 같던 시기를 지나니 그래도 품에 안고 나서는 일이 꽤 괜찮아졌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기분도 전환되고 시간도 잘 간다. 엊그제는 아기와 둘이 하는 산책 중 처음으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조금씩 마시며 걸었더니 더욱 좋았다. 그동안 아기는 잠시나마 품 안에서 눈을 붙이고, 바깥의 공기와 소리를 조금씩 알아갈 테다.
어제까지는 아이스 음료를 마셨는데,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따뜻하고 묵직한 아기를 안고서 천천히 맑은 가을날을 걷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저 마시고 들어가기로 맘먹었다.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떨어지는 낙엽을(사실은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기띠를 한 두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산책 중이신가 보다 하고 다시 가을 풍경을(아니 핸드폰을..) 보는데 한 분이 '아기다-'하고 말하며 다가왔다. 알고 보니, 5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두 분이 출산 후 친구가 되어 매일 같이 산책을 나오시는데 아기띠를 하고 있어 반가워서 인사를 건네신 거란다. 혼자 육아를 하는 일이 외로웠는데 반갑고 감사했다. 주변에 60일 된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있다며 소개해주신다고 해서 전화번호도 드렸다. 엄마들의 세상은 이렇게 연결되나 보다.
그러니 조금 덜 외로워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하루, 조금 덜 괴로워해도 괜찮겠다고 다짐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