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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Sep 23. 2022

주말에 캠핑 갈까?

익숙함과 생경함 사이

어느새 트렁크에는 묵직한 짐이 가득 들어찼다. 텐트와 의자, 코펠과 버너, 불멍을 위해 필요한 화로, 커트러리에 폭닥한 이불까지. 편안한 집을 놔두고 왜 또 하나의 살림살이를 마련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헛웃음이 날 때도 있지만, 트렁크 속에 들어찬 짐이 하나씩 펼쳐져 우리의 보금자리가 원하는 공간에 뚝딱 마련되는 순간은 늘 기다려진다.


“주말에 캠핑 갈까? 다음 주부턴 언제 주말 출근을 하게 될지 몰라서 이번 주가 기회 같은데.”


특별한 약속 없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 남편에게 캠핑을 제안했고 그는 긴 고민 없이 동의했다. 캠핑장 예약 어플을 켜고 이번 주말 자리가 있는 곳이 어디 있나 찾다 보니, 꼭 가보고 싶었으나 매번 예약이 일찍 마감되어 가보지 못했던 포천 멍우리 협곡 캠핑장에 빈자리가 있었다.


계획은 이랬다. 9시에 집에서 출발. 캠핑장까지는 차로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니, 가는 길에 장을 보고, 캠핑용품점에 들러 미비한 장비를 보충하고, 점심을 먹은 후 캠핑장으로 향하자. 그러면 입실 시간인 12시를 조금 넘겨 우리의 숲 속 보금자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텐트를 치고서 초록이 짙어진 나무들에 둘러싸여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생각을 하니 설렘에 마음이 바빠졌다.


더위에 밤잠을 설치던 계절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찹찹한 공기가 상쾌하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가을이 왔다. 그 공기를 창문이라는 가림막 없이 마음껏 들이켤 수 있으니, 지금이 바로 캠핑을 떠나기 가장 좋은 날씨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하다 서둘러 잠을 청했다.


-

“어떡하지? 회사에 일이 생겨서 몇 시간 걸릴 수 있을 것 같아.”

다음날, 출발 준비를 하는데 남편에게 심심찮은 연락이 하나둘씩 걸려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씻지도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순간 마음에 날이 서고 속상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방법이 없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고, 해결해야 맘 편히 쉴 수 있을 테니까. 상황을 파악하던 남편은 아무래도 출근을 해야겠다고 했다.


고민 끝에 회사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채비를 하고 나서기로 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만 도착할 수 있다면, 늦더라도 캠핑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짐을 한가득 싣고 단출한 차림으로 나무가 우거진 숲 대신 도시 한복판의 빌딩 숲으로 향했다.


회사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주말, 한가한 삼성동의 스타벅스에 앉았다. 잠깐이니 이것도 나쁘지 않네 싶었다. 고새 올라온 SNS 피드를 훑어보다가 책을 좀 읽어볼까 하고 펼치는데, 남편에게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전화가 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출근을 하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에 출근해서 마무리할 일이 있었는데, 미리 해버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각자의 일은 오후 3시 무렵 마무리됐다. ‘아직은 해가 기니까, 괜찮을 거야’ 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서둘러 캠핑장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로는 시간이 걸리는 요리 대신 조리된 닭강정과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맘이 한결 편해졌다.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치고, 짐을 착착 세팅했다.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처음엔 두 시간이 걸리던 세팅이 이십 분만에 얼추 마무리됐다. 의자를 펼쳐 앉아 맥주 한 캔을 곁들이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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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많이 늦었지만, 오길 잘했다.”

“응, 너무 잘 왔어.”


예상 밖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자연 속에 퐁당 내던져지니,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유튜브를 보다가 고개를 들면 별이 반짝거리기 시작했고, 멍하게 불을 바라보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라면을 끓여 먹고서 커피를 마시니 펼쳐 놓은 짐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금세 찾아왔다.


짧건 길건, 일상을 벗어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순서대로 착착착 펼쳐 놓은 우리의 살림살이를 다시 반대로 척척척 접어 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즐거운 시간이 끝나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알차게 보낸 시간이 즐거운 감상이 되어 마음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규정한 적 없이 각자 할 일을 했고, 텐트를 접거나 이불을 터는 것처럼 함께해야 하는 일은 또 손발을 척척 맞추어서 해나갔다. 사실 단둘이서 캠핑은 처음이었는데, 우리 꽤 팀워크가 잘 맞는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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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이나 시도를 하다 보면 뚝딱거리는 시행착오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요령이 붙는다. 이번 캠핑은 요령을 깨우치고 내 것을 만들어가는 시기가 얼마나 작지만 커다란 재미를 주는지 상기시켜 주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익숙함과 당연함이 되고 말 테니, 요령이 생기는 이 기분을 최대한 만끽해야겠다.


생경함과 익숙함 사이,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그 묘한 이치를 찾기 위해서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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