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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주일의 순이 Jan 28. 2024

일순이 :  뚜벅뚜벅 서울 산책 (4)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 서울벚꽃산책

 추운 겨울 걷기가 쉽지 않으니 따뜻한 봄이 기다려진다. 휴대폰 갤러리에서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다 3년 전 서울 사대문 안 벚꽃을 보며 돌아다녔던 어떤 봄밤이 떠올랐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던 시기 복직하면서 온라인 수업 만드는데 적응하느라 집과 직장만 오갔다. 복직 전 다친 무릎도 조심해야했으니 주말에는 집에만 있었다. 괜히 울적해져 마음이 바닥으로 내달렸다. 아파트단지의 나무를 보니 아기연두의 새순이 올라오고 봄꽃이 활짝 피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간 걸까? 4월이 되었다.

이러다 꽃 한번 제대로 못 보고 봄을 보낼 것 같아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을 다 찾아가 보기로 했다.


 저녁 퇴근 무렵 학교 앞에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 벚꽃을 보려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먼저 서대문 안산을 가기로 했다. 중국드라마 삼생삼세십리도화에 나오는 복사꽃 동산 장면과 비슷한 곳이라 늘 가고 싶은 곳이었다. 산속에 여러 빛깔로 핀 꽃을 보니 신선이 사는 곳인가 싶었다. 산벚꽃길 사이를 걸었다. 다양한 빛깔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빛깔을 담은 채 종로 정독도서관으로 출발했다. 이때부터 어둠이 내리고 마음이 조금 바빠졌다. 오래된 나무들이 조명을 받으니 낮에 보던 꽃과는 달랐다. 안산은 가족들이 많이 보였는데 여긴 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 아가씨들은 짧은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남자 친구들은 어떻게든 잘 찍어보려고 거의 바닥에 눕다시피 사진을 찍었다. 얇은 패딩으로 무장한 나는 핑크빛 연인 사이를 사뿐사뿐 걸었다.


 해가 완전히 지니 벚꽃이 별처럼 보였다. 서촌을 지나 부암동  윤동주 시인 언덕으로 갔다. 이곳은 야경이 멋진 곳이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혼자서 걷는 길은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귀여운 밤송이 같은 꽃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에서는 시인의 감성으로 서울을 보게 된다. 정의, 순수, 열정이란 단어가 새겨진 시비. 나라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시로 담아냈던 청년시인을 떠올렸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분을 생각하며 서울의 야경을 보았다


 북악스카웨이를 돌고 나서 집으로 가려다 삼청공원에  들렀다. 이곳에는 숲 속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날씨 좋을 때 가면 사방이 나무라 초록 속에 숨을 수 있다. 이곳 벚꽃나무는 하늘을 다 가려서 낮에 보면 더 예쁠 것 같았다. 불 꺼진 도서관이지만 사랑스럽다. 숲과 책 그리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 소중하다.


 젊을 땐 내가 꽃이라 꽃이 안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 빛을 잃어 꽃을 찾는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꽃을 보겠다고 노력했던가?  꽃놀이, 단풍놀이 가던 사람들을 이해 못 하던 이가 꽃이 좋아 휴대폰에 꽃사진으로 가득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빛을 잃었다기 보단 시선이 나에게서 세상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가 유한한 것을 알기에 더 애틋한 것이다.


 꽃구경이 끝나고 근처에 주차해 있던 남편이 나를 태우러 왔다. 결혼할 때 남편의 프러포즈는 '어디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데려다주겠다'였다. 일상에 지친 아내를 위해 남편은 완벽하게 약속을 지켰다.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소소한 일에 부딪히며 서로에게 상처를 낼 때도 있지만 나를 위해 묵묵히 벚꽃산책에 동행해 준 이의 마음이 담긴 그 시간들이 스며든다. 달빛이 짙어지며 봄밤 벚꽃을 찾아 떠난 짧은 여행은 끝이 났다.  그날을 떠올리면 차가운 바람에 손끝이 시려지는겨울날에도 살랑살랑 흩날리는 연분홍 꽃잎이 어딘가에서 날아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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