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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어느날 Oct 15. 2024

서른다섯의 나 (3) _ 다시 지옥이 된 출근길

서른다섯, 다시 무기력에 맞서다.

인사발령이 났다. 하지만 이미 소문은 돌고 돌아 며칠 전부터 메신저 폭탄을 받고 있던 참이다. 사실 물리적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다. 같은 층, 하지만 다른 팀, 그리고 자리는 조금 옆. 이게 달라진 전부다. 아주 작은 변화일 뿐이지만, 나의 하루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동력을 잃은 나는 또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1년 반 정도 되었다. 내가 출근길을 지옥이라고 느끼지 않은 기간이. 그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출근길은 다시 지옥길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마음 한 켠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인생의 목표와 회사를 대하는 마인드세팅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또 다시 이렇게 마음이 힘들까? 한낱 다 큰 어른의 징징 거림인가?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봤다. 


사람이 문제인가? 조직 개편으로 합류한 새로운 팀은 거의 신생팀이나 다름없다. 조직만 그대로일 뿐 리더부터 전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본부로 흩어졌다가 만난 사람, 같은 본부인데 한 팀이 된 사람 등 대부분 아는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이 있었나? 서로 어색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경쟁 상대인가? 나는 더 이상 회사에서 경쟁하지 않는다. 그래, 사람은 문제가 아니었다. 


업무 난이도가 높은가? 본부 기획팀은 더 큰 조직이기 때문에 커버하는 범위가 많아져서 업무량도 많아지고 난이도 또한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난이도 자체가 나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나? 더 힘든 일도 거침없이 해왔던 나다. 상승한 업무 난이도 역시 문제가 아니다. 그럼 회사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내가 문제인 것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은, 회사에 대한 나의 생각이 3년 전과 똑같을 뿐만 아니라 더욱 확고해졌다는 것이다. 회사 생활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질 것이다. 머지않아 직업이 하나일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 확신하고, 따라서 부업 혹은 본업에 준하는 개인사업을 일찍 경험하여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다. 아니면, 내 개인의 노력으로 공부하고 경력을 쌓아 전문가가 되어, 회사라는 울타리가 없이도 오랫동안 일 할 수 있는 '전문직' 혹은 '기술직'으로 최대한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년 동안 변하지 않은 생각이라면 나의 확실한 가치관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전보다 더 무기력해지고 매일 느끼는 불안이 더 커졌을까? 왜 출근길은 더욱 지옥이 되었으며 매분 매초마다 회사에서 도망치고 싶을까? 나는 알 것 같았다. 3년이 지났지만,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나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확고해지는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그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는 느낌에 잠식당했다. 그 간 느꼈던 행복감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방황이 시작되고 판단력은 흐려졌다. 


회사에서는 죽어가는 느낌뿐이었다. 회사에 그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내가 본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뛰쳐나가 '내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문직'을 검색하고, 타일, 미장과 같은 '기술직'도 알아봤으며, 학점은행제를 통한 '대학원' 입학 상담도 받아보았다. 온라인 사업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조급함은 충분한 계획을 불가능하게 했다. 블로그, 유튜브, 주식, 위탁판매 등 닥치는 대로 강의를 신청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안도감을 느끼고 싶었나보다.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로 인해 휴직을 하고 돌아왔을 때, 나에게 알게 모르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때 나는 여러 가지 진심 어린 조언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꼭 이 말은 강조했다. '아마 힘들어서 제정신이 아닐 거야. 그래도 딱 한 번, 딱 한 순간 만이라도 올바른 판단을 위해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히고 자신과 대화해야 해.' 퇴사가 아닌 휴직을 선택했던 한 번의 판단. 그것이 많은 것을 바꿨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도 그게 필요한 지 모르겠다. 


그래서 혼돈에 빠진 생각과 복잡한 마음은 잠시 그대로 놓아두고, 내가 지금 바꾸면 좋은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걸 다 해보고 나서도 안되면 그때 퇴사해도 되니까. 무작정 퇴사가 능사가 아니라는 건, 나의 경험이 크게 선물해 준 교훈이었다. 삶에 변화를 주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회사를 내려놓는 연습이 반드시 필요했다. 지난 2년 간 또 한 번 불태우며 회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은 다시 훌륭한 직장인으로 리셋이 되었다. 앞으로 내 사업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으려면, 회사는 내려놔야 했다. 어떤 것부터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지옥 같은 출근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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