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양이가 가져다준 큰 변화들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설기. 아이를 보자마자 설기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새하얀 나의 고양이 설기.
설기는 낯가림이 전혀 없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땐 마치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듯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집을 누볐다. 정말 이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하얀 설기는 날아다녔다.
설기와 첫날밤 거실에 아이가 잘 수 있도록 잠자리를 정리해 주었는데 세상에나!! 설기가 작은 몸으로 낑낑거리며 높은 내 침대 위로 올라와 발 밑에 누웠다. 나를 집사로 인정해준 것 같아서 너무 신기하고 설렜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고 나는 다음날 매우 피곤한 상태로 눈을 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설렘 때문이 아니었다. 자다가 설기를 깔아뭉갤까 봐 새벽에 계속 깨서 위치를 확인하느라 선잠을 잤다. 잠을 잘 때 좌우로 계속 뒤척이는 습관이 있는데 그날도 움직이면서 설기를 발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 너무 걱정이 돼서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서 설기가 잘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1/2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꼼짝 않고 누워서 자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침이면 잠들었던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서 눈을 뜨거나 침구가 떨어져 있었던 일이 다반사였는데 설기가 온 이후로는 자기 전 모습 그대로 깨는 나를 발견했다. 설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설기가 오고 난 후 나의 일상은 작고 큰 변화들로 가득해졌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었다. 알아보면서 제일 크게 결심한 것 중 하나는 앞으로 정말 부지런하고 깔끔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고양이의 습성 상 약간의 틈만 있어도 어디든 들어갈 수 있고, 못 올라가는 곳이 없기에 높은 곳은 물론 구석구석 청소를 하여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화장실의 감자와 맛동산을 계속 치워줘야 하고 간식과 밥을 시간 맞춰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하고 규칙적이어야 한다. 아마 고양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책임져야 하고 함께하려면 부지런함과 청결함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설기가 오기 전 구석구석 정말 열심히 청소를 하였다. 하지만 설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들어갔고 올라갔다. 설기가 오고 나서도 정말 많은 곳들을 청소해야만 했다. 나는 원래 부지런하지도 않았고 깔끔한 성격도 아니었지만, 설기를 만난 뒤로는 하루에 청소기만 최소 3번은 돌리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원래는 출근시간 10분 전에 일어나 준비를 했는데 현재는 30-40분 전에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을 확인하고 영양제를 주며 하루가 시작된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재택근무로 전환이 되어서 원래도 집순이의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설기가 온 이후로 더 완벽한 집순이가 되었다. 외출할 일을 거의 만들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유튜브로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악'과 불을 켜놓고 나가고, 최대한 빨리 집에 오려고 한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아 분명 자고 있을걸 알고 있지만 괜히 걱정이 되고 마음이 쓰인다. 또 현재 자동 급식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외출 중에 '이설기 : 방금 밥 먹었어요.'라는 알림이 뜰 때면 마음이 더욱 급해진다. 그렇게 허겁지겁 집에 오면 캣타워에서 잠을 자던 설기는 내려와 나를 맞아준다. (막상 보면 그렇게 반기는 것 같지는 않지만..ㅎ) 그 모습을 보면서 더욱 외출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약속이 생긴다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시간을 보낸다.
누구나 그렇듯이 집에서는 편한 복장으로 지내왔다. 나는 주로 반바지에 맨발로 다녔는데 설기가 온 이후로는 긴팔/긴바지/양말이 필수가 되었다. 아직 아기와 캣초딩 사이에 있는 설기는 입질이 엄청나다. 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거나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책상에 앉아있으면 위로 올라오려고 다리나 허벅지를 잡는데 잘못하면 크게 할퀴게 된다. 그때부터 난 긴바지와 두꺼운 양말을 신게 되었다. 고양이 유튜브나 수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면서 교육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효과는 없었다.
이 글쓰기도 나에게 가장 큰 변화 중 한 가지이다. 설기가 오기 전에는 보통 핸드폰을 하거나 tv를 보며 누워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설기와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루틴과 취미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글쓰기를 계기로 더 좋은 글들을 쓰고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외에도 설기가 오고 난 후 많은 사소한 습관과 변화들이 생겼다. 설기를 위해서였지만 그 습관과 변화들을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의 작은 고양이가 가져다준 사소하지만 큰 변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