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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해 Sep 30. 2020

나를 그리고 꿈을 그리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미술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림은 시험을 위해서만 그렸다. 그랬던 내가 다시 붓을 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입시를 위해 그림을 열심히 외워서 그렸다. 대학에서는 시각디자인이 전공이어서 컴퓨터 작업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7년 뒤 미술 교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위해서였다. 한국화, 수채화, 소묘, 디자인 등 다양한 표현기술들을 암기한 대로 그렸다. 창의성 따위는 필요 없고 공식대로 그리는 거다. 미술 교사가 되고도 그림을 그릴 엄두는 내지 못했다 나의 전공은 주입식 미술에 길들여진 입시 미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동안 내 작품 하나 내지 못한 허울뿐인 미술가였다.



 육아휴직을 하고 지친 나는 지루한 시간이나 잘 보내 볼까 하고 10년 전 쓰던 물감과 붓을 꺼내 들었다. 작고 예쁜 스케치북을 사서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심심해서 그렸다. 눈에 보이는 걸 그렸다. 제일 눈에 띈 주제는 아이의 웃는 모습, 아이에게 해 준 요리, 아이와 함께 간 곳처럼 아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겁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내 그림에 아이들만 있는 게 내 인생에 아이들만 있는 느낌이 들었다. 60여 일간 그렇게 방황을 했나 보다. 그렇게 아이들을 그리다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나를 그려보기로 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기로 했다.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대리님이 불러주던 별명, 대학 졸업반 유럽 배낭여행에서 보았던 모네의 그림, 운동을 마지못해서 하는 나의 모습 등이 내 그림의 소재이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온전히 나를 발견하고 나를 위한 시간이다. 엄마의 껍질이 벗겨지고 숨겨져 있던 내가 드러난다.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희미했던 나를 뚜렷하게 그리는 듯하다. 무엇을 그릴지 구상하는 순간부터 채색을 마칠 때까지 오로지 나에 집중하니 신이 난다. 나를 그리면서 내 안의 나를 쓰다듬어 주는 감정이 든다. 한마디로 힐링이다. 그림은 엄마로 살며 상처받은 나에게 주는 치료이다.

 


 이제 나는 예술가이다. 엄마도 아니고 입시 미술 전공자도 아니다. 나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된다. 스케치북에 완성된 그림이 한 장씩 늘어날 때마다 나의 존재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완성된 작품이 나의 글과 함께 책으로 나오고 미술관에 전시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꿈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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