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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해 Oct 05. 2020

향기 나는 여자

 나에게는 꽃향기가 난다. 데이트할 때, 친구들을 만날 때에는 향수를 뿌리고 가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싱그러운 꽃 내음으로 나를 기억한다. 외출할 때 향수는 필수이다. 향수를 뿌리면 내가 꽃이 되는 느낌이다. 뭔가 예뻐지고 밝아지는 기분이다. 향수는 나에게 뿌리는 작은 사치이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위한 의식이다.


 워킹맘의 아침은 늘 바쁘다.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이 자는 사이에 화장을 한다. 아이들이 먹을 밥과 반찬도 분주히 준비한다. 덜 깬 두 아이에게 아침밥을 꾸역꾸역 먹인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보내고 바쁘게 운전을 해 학교로 향한다.

 내가 학교에 도착해 출근 전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차에 있는 향수를 뿌리는 일이다. 차에서 내리니 나에게 향긋한 후리지아 향이 난다. 상쾌한 아침에 꽃향기를 풍기며 교무실로 들어선다. 자신감이 생기고 아름다워진다. 바로 한 시간 전에 요리를 바삐 해서 음식 냄새가 배에 있는 모습으로 비치기는 싫다. 집에서 후줄근한 엄마의 모습을 학교까지 끌고 오기를 거부한다. 예쁜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꽃향기를 풍기는 여자이고 싶다.



 육아휴직을 하고 요즘처럼 집에 있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향수들은 썩어가고 있다. 반강제로 집에만 있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향수의 존재는 잊힌 지 오래다. 향수를 뿌리고 나갈 곳도 없거니와 만날 사람도 없는 게 사실이다. 향수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아니, 꽃향기를 바르지 않고 있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식용유 냄새, 김치 냄새만 나는 나의 모습이 싫어진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골동품이 되어가는 나의 불쌍한 향수를 위한 외출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꽃무늬 원피스도 입었다. 출근할 때처럼 풀메이크업도 했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기 전 상큼한 후리지아와 달콤한 배가 어우러진 향수를 뿌렸다. 향수를 위한 산책을 나선 것이다. 별다른 목적지도 없다. 하지만 한껏 꾸미고 나오니 펄럭이는 치맛자락에서 좋은 향이 퍼져 나가는 것 같다.


 얼마 만일까? 혼자 걸어가는 산책길이 꽃길이다. 바람에 꽃잎이 날리듯 발걸음이 가볍다. 다시 내 마음에 꽃이 핀다.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나비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듯하다. 이제야 길가에 앙증맞게 피어있는 봉숭아 꽃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내 마 음속에 자라는 귀여운 꽃송이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다시 향기 나는 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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