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는 독박 육아였다. 남편은 항상 바빴다. 주중에는 새벽같이 나가서 저녁 8시쯤 돌아왔다.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찾고 목욕시키고 잠자리 독서까지 모든 것은 내가 주도했다. 주말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주말 이틀 중 하루는 회사에 가고 나머지 하루는 조깅, 수영을 하러 나갔다. 두 아이를 케어하는 건 모두 내 몫이었다.
혼자 있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누구는 여유롭게 운동을 핑계로 자기 시간을 즐긴다. 나는 집에서 아이 둘과 씨름을 하고 있다.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주중엔 퇴근해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만 있고 주말에는 나가는 남편이 너무 미웠다. 나도 일주일에 딱 한 번만이라도 아무 방해 없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며칠 전 줄리아 카메론의 <아트스트웨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티스트 웨이는 창조성을 회복하고 발견하는 길을 말한다. 책에서는 아티스트 웨이를 위해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라고 한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일주일에 한 번 혼자만의 시간을 2시간 정도씩 가지며 내면의 아티스트를 만나는 활동이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공원에 가서 꽃을 관찰하거나 빵집에 가서 먹고 싶었던 빵을 먹는 등의 소소한 활동이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는데 '아티스트 데이트'는 나를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바라는 거야. 나도 해볼 거야'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당신이 주말마다 운동하는 시간이 소중하듯 나도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싶어. 주말에 2시간 정도는 나 혼자 있고 싶어.
남편에게 독립 선언을 했다. 남편도 양심은 있는지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렇게 쉽게 OK 하다니 진작 말해볼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나의 '아티스트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우선 집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다. 혼자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잡아 본다. 카페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수다 소리와 음악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혼자만의 커피타임을 갖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두 달 전 집 앞에 생겼는데 가보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과 합의가 되자마자 그곳을 갔다. 아이스크림을 동동 띄운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이 브랜드 카페와 연관된 여러 추억을 회상해 본다. 10년 전 노량진에서 임용시험 준비를 할 때 친구와 함께 스터디한 그곳이다. 첫째 아이를 모유 수유로 키우며 모유 수유가 드디어 끝났다며 처음 커피를 산 그곳이다. 초보운전자였을 때 2시간을 운전해 1정 연수를 받고 집에 오며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하던 그곳이다. 이 모두 같은 브랜드의 카페였다. 항상 시키는 메뉴는 호주에서 맛본 아이스커피와 비슷한 커피. 다른 카페에는 없는 아이스크림 얹은 아이스커피이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추억이 담긴 곳이랄까. 추억을 떠올려보니 달달한 커피 맛이 열 배로 달콤하게 느껴진다. 온전하게 나의 기억을 더듬고 흘러가는 2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신이 났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아쉬워서 무거워질 줄 알았는데 한결 가볍다. 내 안의 감정이 풍부해진다.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정화된다. 아이들을 더욱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꼭 창조성의 발견을 위해서가 아니어도 괜찮다. 나의 첫 아티스트 데이트는 나의 내면을 어루만져 준 시간이었다. 고작 일주일의 168시간 중 딱 2시간이지만 뜻깊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