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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책방 Sep 23. 2024

1+1=네모

창발성

숲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작품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그 자체로도 멋지지만, 숲 속에서는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모여 나무를 이루고, 그 나무들이 모여 숲을 만들어낸다.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을 가진 나무들이 어우러져 푸른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숲을 완성한다. 그 속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작은 동물들이 생명을 이어간다.


이 숲을 바라보는 이라면, 그 속에서 개별적인 요소들을 넘어서서 전체적인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숲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


우리는 무언가의 속성을 알기 위해 그것을 분해하는 방식을 종종 사용한다. 과학에서는 이런 사조를 환원주의라고 부른다. 환원주의자들은 관찰 대상을 이루는 최소 단위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생물을 세포 단위로 뜯어보고, 물질을 원자 단위로 분해한다. 환원주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밝혀주었다.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는 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생각만큼 단순히 하지 않다. 전체는 최소 단위의 합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1+1=2'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저 하나가 더 결합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물질이 된다. 하부 구조에서는 없던 새로운 성질이 상부 구조에서 돌발적으로 생기는 현상을 '창발성'이라고 부른다. 창발주의는 환원주의와 더불어 자연을 설명하는 중요한 사고방식이다.


창발성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물질은 바로 물이다. 가장 흔한 물질이지만 물은 알 수록 신비하다. 가느다란 관을 물에 꼽으면 관을 따라 물이 올라간다. 그리고 물 한 방울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퍼지지 않고 동그란 형태를 유지한다. 물은 최고의 용매로 영양소와 노폐물을 녹여 온몸으로 전달한다. 이 특징들은 모두 물의 창발성에 기인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물의 화학식은 H2O(여기서 2는 아래첨자)다.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하여 물 분자 1개를 이룬다. 환원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수소와 산소의 특징을 분석해봐야 한다. 수소는 불과 만나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산소는 잘 알다시피 불이 활활 탈 수 있도록 돕는다. 수소와 산소 모두 불과 만나면 그 화력을 더한다. 하지만 물은 불이랑 사이가 매우 멀다. 수소나 산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다. 더하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창발성으로 물의 신비한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물이 관을 따라 올라가는 '모세관 현상'은 물 분자의 수소 결합에 의해 발생한다. 물이 동그랗게 공구는 표면장력도 마찬가지로 수소 결합의 결과물이다. 수소 결합은 물 분자들 간에 발생하는 약한 전기적 인력이다.


자세히 들어가면,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물분자가 극성을 띠게 된다. 산소가 수소보다 전자를 강하게 끌어당기면서 산소는 음전하를 수소는 양전하를 띠게 된다. 하나의 물분자 사이에 양과 음이 나뉜 것이다. 극성은 물 분자들 사이에 느슨한 결합을 유발하는데 그것이 수소 결합이다. 환원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면을 창발성이 보충한다.


창발성은 생물을 이해할 때도 필수적이다. 동물의 구성단계를 살펴보면,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모여 기관을 이루고, 기관이 모여 기관계를 이루고, 기관계가 모여 개체를 이룬다. 세포, 조직, 기관, 기관계, 개체. 상위 구조로 넘어갈 때마다 창발성이 나타난다. 세포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여 우리를 이해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창발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창발성은 환원주의에 치우친 우리의 사고방식에 균형을 맞춘다. 창발주의세상을 바라볼 숲의 아름다움을 느낄 있다.


창발성은 발칙하면서도 흥미로운 주제로 우리를 인도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며 다른 동물들과 다른 취급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이나 이성처럼 정신적인 무언가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신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우리의 정신이 사물처럼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은 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정신 창발성의 일종이라고 생각다. 뇌세포 하나는 정신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뇌세포가 1억 개 100억 개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뇌는 뉴런과 뉴런을 보호하는 아교 세포로 되어 있는데, 뉴런이 약 860억 개 아교세포가 약 850억 개 정도 존재한다. 약 1700억 개의 세포가 모여 뇌를 이룬다. 이때 창발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창발성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뤄 정신의 정체를 규명하기를 기대해 본다.


비슷한 일이 인공지능에서 벌어지고 있다. Chat GPT를 기점으로 AI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구글, 애플, 네이버 할 것 없이 모든 기업에서 자체 AI를 선보이며 AI 전쟁이 진행 중이다. AI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더 정확하고,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AI를 구동하는 GPU를 최대한 이어 붙이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GPU의 규모와 AI의 성능이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러 개의 GPU를 붙이다 보면 이 전에는 없던 새로운 성능이 나타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소프트 웨어의 발전보다도 GPU의 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GPU를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역대급 주가를 달리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로 인한 것이다.


참고로 GPU가 CPU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게 된 것도 창발성 덕분이다. 어떤 AI 전문가가 강연에서 CPU와 GPU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CPU는 뛰어난 석학 한 명의 두뇌라면 GPU는 평범한 100명의 두뇌를 합한 것이라고 말한다. 집단지성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개개인이 각자 과제를 수행할 때보다 집단을 이뤘을 때 더 뛰어난 성과가 나오는데, 이것은 집단지성이 창발성을 갖기 때문이다. 고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기 전까지는 CPU가 더 경제적이었지만 AI처럼 빅데이터를 다룰 때는 GPU가 CPU를 훨씬 앞지른다. 이쯤 되면 창발성이 없는 분야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콜린 스튜어트는 <시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공간과 시간은 우리가 큰 규모에서만 경험할 수 있고,
더 깊은 수준에서는 실제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창발적 효과가 될 수 있다."


시간은 과학자와 철학자 모두에게 오랫동안 탐구의 대상이 되어온 개념이다. 그 복잡성과 신비로움은 우리가 살아가는 거시 세계에서는 분명하고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미시 세계, 즉 원자나 소립자의 수준으로 들어가면 그 개념이 모호해진다. 이때 창발주의의 시각에서 시간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접근이다.


미시적 수준, 예를 들어 원자나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이 수준에서는 시간은 단지 또 하나의 변수일 뿐이며, 고전 물리학에서의 시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런 맥락에서 시간이라는 개념도 이 창발성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원자와 입자들이 모여 거시적 세계를 이루면, 이 세계에서는 명확한 시간의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낮과 밤이 교차하고, 계절이 바뀌고, 사건들이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이 존재한다. 이처럼 거시적 수준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현실의 구체적 경험으로 나타나며, 우리는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삶을 계획한다.


시간이 거시 세계에서 나타나는 창발적 현상이라는 관점은 우리가 시간을 단지 물리적 변수로서가 아니라, 복잡한 시스템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이는 시간이 미시적 수준에서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다가, 거시적 세계에서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창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 하나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은, 바로 이 창발성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시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개념이다. 이 창발성은 우리가 왜 시간을 그렇게 분명하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거시적 세계의 산물이며, 그 근본에는 무수한 원자와 입자들의 상호작용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은 미시적 세계에서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들이 모여 이루는 거시적 구조 속에서 비로소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나는 자연에서 교훈을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도 창발성이 녹아있는 하나의 법칙이 존재한다. 철학자 헤겔이 제안한 '양질전환의 법칙'은 창발성에 기인하여 사회와 개인에게 나타나는 변화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양질전환의 법칙 그래프


양질전환의 법칙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살펴보자. 위 그래프의 특징은 빨간 점선이 그어진 곳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지점을 임계점이라고 부른다. 임계전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상태에 놓인다. 임계전 이전은 '양적 축적'단계로 양이 늘더라도 질적인 변화는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는다. 양이 축적됨에 따라 점진적인 변화를 보인다. 그러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새로운 성질이 생기거나, 근본적으로 다른 상태로 전환이 일어난다. 양질전환의 법칙의 핵심은 양적 축적에 따른 질적 도약이다.


이 과정은 마치 물이 기체로 변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99도까지는 점진적으로 물의 온도가 오르고, 100도라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액체에서 기체로 상태변화가 일어난다. 질적 도약이 일어난 것이다. 질적 도약을 지난 물은 수증기로 변한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늘지 않는다며 자책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양질전환의 법칙을 그려 보인다. 그리고 지금 네가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양적 축적 단계에서는 노력대비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머리가 나빠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성적이 오를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루한 양적 축적 단계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이 순간을 인내하고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누구나 임계점에 도달한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급격한 성적 향상이라는 질적 도약을 맛보게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든 사람이 겪는 과정이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 법이다. 99도에서 멈추는 안타까운 일이 없길 바란다.


양질전환의 법칙과 하인리히 법칙은 점진적 변화와 임계점이라는 측면에서 관련이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여러 번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나 산업재해, 인생을 살며 겪게 되는 곤경이 갑작스러운 것 같지만 통계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전조 증상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의 '1:29:300 비율'은 1건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고, 300건의 잠재적인 사고 징후가 경고가 있다고 말한다. 큰 사고는 갑작스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가 임계점에 도달할 때 발생한다.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빠르게 알아차리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개인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일어나는 건강상의 문제나 정신적인 문제도 비슷한 경과를 보일 것이다. 작은 문제를 사소하게 치부하지 말고 그것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역사 또한 점진적인 사건들의 축적 속에서 진행되다가, 특정한 결정적 사건에 의해 새로운 시대로 전환되곤 한다. 고대에서 중세, 중세에서 근대, 그리고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이러한 전환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변화들의 집합체이며, 각 시대의 전환점은 그 시대의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은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제국의 몰락을 넘어, 유럽 사회 전반에 걸친 커다란 변화를 의미했다. 로마 제국은 수세기에 걸쳐 서서히 쇠퇴해 갔다.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었고, 외부적으로는 게르만족과 같은 침략자들의 압박이 증가했다. 이 모든 점진적 변화들이 축적되면서 결국 서로마 제국은 붕괴했고, 그로 인해 유럽은 중세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시기는 봉건제와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상징하며, 고대 로마의 유산은 그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중세가 근대로 전환되는 과정은 수세기에 걸친 문화적, 경제적 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이성과 예술적 창의성을 강조하며 중세의 종교적 중심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의 흐름을 열었다. 이와 동시에, 유럽에서의 상업과 무역의 발달은 경제적 기반을 바꾸어 놓았으며, 도시의 성장은 새로운 사회적 계층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변화들은 서서히 중세의 질서를 흔들었고, 15세기에 이르러 대항해 시대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세계가 열리면서 근대가 도래했다. 신대륙의 발견과 교역로의 확장은 유럽의 지리적, 경제적 지평을 넓혔고, 이는 근대 사회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근대에서 현대로의 전환은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 대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 중심의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고, 제국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전쟁은 민족주의, 제국주의 경쟁, 동맹 체제의 복잡성 등 점진적으로 축적된 긴장 속에서 폭발했다. 이어서 제2차 세계 대전은 전 세계에 걸친 파괴와 재편성을 초래하며,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이 전쟁 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등장하며 냉전이 시작되었고, 이는 현대 국제 질서의 근간이 되었다. 이렇듯 세계 대전은 근대의 구조를 파괴하고, 현대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세 가지 전환점들은 단번에 일어난 변화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다양한 요인들이 결정적 사건으로 결집된 결과다. 각 시대의 전환은 새로운 사회 구조와 가치관을 탄생시켰으며, 인류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들이다. 양질전화의 법칙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유용한 관점을 제시한다.


결국, 자연의 법칙은 우리 인간의 삶에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와 과정들은 단순히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더 지혜롭게 살아가고, 사회적 변화를 미리 예측하며 대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자연이 보여주는 법칙을 통해,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고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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