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오랜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리는 직접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초월적인 존재를 찾도록 자극했다. 그 결과 여러 신앙이 생기고, 사후세계에 대한 가설이 제기되었다. 천국과 지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죽음이 두려운 우리를 그리고 먼저 죽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앙은 우리가 사는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주는 데 크게 일조했지만 죽음의 정체를 밝히지는 못한다.
우리는 편의상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을 죽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가 더 이상 몸에서 대사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 빠지면 사망선고를 내린다. 사망 선고를 받고 며칠 후에 깨어난 기적적인 사례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사망 선고가 확실하게 죽음을 판가름하는 행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으면 죽었다고 판단한다.
물론, 육체는 죽더라도 영혼은 점멸하지 않고 내세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영혼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라를 만들었다. 힌두교에는 영혼과 비슷한 개념으로 아트만이 있는데 아트만은 영원불멸하며 육체를 돌아다니면서 윤회한다고 믿는다.
생명의 본질이 육체를 떠나 존재한다는 믿음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1907년 미국의 한 의사는 영혼의 무게를 측정하는 다소 황당한 실험을 진행했다. 사람이 죽은 후 질량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측정하는 방식으로 영혼의 질량을 측정했는데, 실험에 따르면 영혼은 21g이라고 한다. 물론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실험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표본도 너무 적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험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너무 컸다.
고대나 중세나 근대나 지금이나 죽음에 대해 인간이 갖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죽음이 주는 무언의 압박과 죽음에 대한 무지는 우리로 하여금 영혼, 아트만 같은 개념을 만들도록 했다.
쾌락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죽음을 마주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기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쾌락주의자답게 그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생을 즐기지 못하는 미련한 삶을 사람들이 살지 않길 바랐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우리는 결코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죽음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의 죽음이나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 죽음이 전부다. 그것들을 토대로 죽음이 무엇일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과학은 본능적 공포심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죽음을 살펴보기를 제안한다.
생물사를 살펴보면 죽음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은 비교적 명확하다. 생명체의 탄생과 동시에 죽음이 생겼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죽음이 생긴 것은 최초의 생물이 등장하고도 26억 년이 흐른 후다. 지구에 최초의 생물이 등장한 것은 약 38억 년 전이다. 그리고 26억 년이 흐른 후 최초로 성별이 등장했다. 성별은 자연에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최초의 생물을 비롯하여 성별이 나뉘지 않은 생물은 '무성생식'한다. 무성생식으로는 이분법, 영양생식, 출아법이 대표적이다. 이분법은 아메바의 분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몸을 2개로 가르면 갈린 몸뚱이 2개가 각각의 개체가 된다. 일정 크기가 되면 세포분열을 하는 데 그것이 곧 생식이다. 영양생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감자인데, 감자는 일부를 잘라 땅에 심으면 그것이 씨앗처럼 싹을 피우고 감자를 맺는다. 출아법은 효모나 히드라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몸의 일부가 돌출되어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이지만 무성생식은 어버이와 자식이 유전적으로 동일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자식을 낳는다고 표현하기보다는 클론을 만든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유전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잠재적 불멸을 누린다. 자신이라고 여겨지던 세포가 죽더라도 정확히 동일한 세포가 존재한다. 그것도 수도 없이 말이다. 그들은 죽음의 개념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들은 또한 혼자서 자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짝을 찾을 필요가 없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부모가 하나다. 짝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무성생식이 어떤 면에서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모든 개체가 유전적으로 동일하다 보니 환경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온도가 20~25도에서 생존이 가능한 개체가 있다고 해보자. 기상이변으로 주변 환경이 20도보다 낮아지거나 25도보다 높아지면 그들은 전멸한다. 한 개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것과 같다. 완벽한 조화가 때로는 그들을 전멸로 이끈다.
전멸은 유전자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피해야 할 재앙이다. 누군가라도 살아남아 유전자를 후세에 기리기리 전달해야 하는데 전달 매체가 한순간에 모조리 사라져 버리면 그 유전자는 대가 끊겨버린다. 유전자들은 변덕스러운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기작을 선보였는데 그중 선택을 받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방식은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방식이다. 클론을 마구 복사했던 단세포 생물과 달리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자손을 낳는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기작이 바로 '유성생식'이다. 유성생식의 등장으로 성별이 나뉘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생겼다. 한 개체가 혼자 자식을 낳던 무성생식과 달리 유성생식은 아빠의 절반과 엄마의 절반이 모여 자식을 만든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식은 나의 클론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개체로 구분된다. 자연이 생물에게 죽음을 고하는 순간이다.
유성생식의 과정은 이렇다. 어버이는 감수분열을 통해 생식세포를 만든다. 감수분열은 '감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전자 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분열이다. 감수분열의 결과 만들어지는 생식세포는 개체 유전자의 절반만 갖게 된다. 이때 생식세포는 무작위적으로 유전자의 절반을 취한다. 이 과정은 유전적 다양성을 대폭 증가시킨다. 한 개체에서 생성된 생식세포라도 유전적으로 차이를 갖게 된다. 난자에 어떤 정자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자식의 형질이 바뀌는 이유가 그것이다. 암수는 감수분열을 통해 각각 생식세포를 만들고, 그 생식세포가 만나 완전한 한 쌍을 이루게 된다.
생식세포 생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전물질의 '무작위적 분리'와 수많은 생식세포 중 무작위로 하나가 선택되어 수정하는 '무작위 수정'은 생물 다양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였다. 더 이상 같은 종이라도 완벽히 동일한 개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불멸의 삶을 사는 무성생식 생물과 달리 유성생식하는 생물은 필멸의 존재가 됐다.
유성생식하는 동물이라면 모두 겪는 죽음이 인간에게 더 특별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리는 고도의 지능을 바탕으로 죽음을 인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물들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대로 행동한다. 하루 더 사는 것이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메타 인지를 지니고 있다. 메타인지는 주변 사람에게 찾아오는 죽음이 나에게도 언젠가 닥칠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를 불어넣는다.
진화에 목적성은 없지만 방향성은 있다. 생물의 진화는 점점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유성생식이라는 혁신적인 알고리즘은 자연을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이끌고 있다. 유전적 다양성이 높다는 것은 환경적응력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환경이 변하더라도 유전적 구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전멸하지 않고 일부는 살아남는다.
유전적 다양성이 오랜 시간을 거쳐 변화를 겪다 보면 마침내 종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조금 다른 차이가 영겁의 시간을 관통하며 축적되면서 이전의 개체와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종의 분화를 야기한다. 공통조상에서 다른 두 종으로 종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생물은 이런 방식으로 다양하게 분화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인류사는 자연의 방향을 역행하는 듯하다. 인간 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자연과 달리 점점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인류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최초로 등장하여 대이주를 통해 지구 전역으로 퍼졌다. 씨족이나 부족단위로 생활을 했는데 이때 부족들은 모두 고유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지구를 관망하는 시점에서 볼 때 인류의 문화는 매우 다양했다.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고 정착생활을 하며 점점 부족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임계점이 지나자 메소포타미아 인근에서 최초의 국가가 등장했다. 무리의 덩치가 커질수록 문화의 다양성은 감소하게 된다. 그렇게 문화는 부족 단위에서 국가 단위로 바뀌게 되었다.
인류의 획일성을 향한 응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등장한 종교는 국경을 넘어 전염병처럼 확산되어 인류의 사상을 지배했다. 국가보다 더 거대한 사상이 탄생한 것이다. 국민으로 나뉘던 인류는 종교로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그 나눠진 조각은 전보다 컸다.
냉전시대에 이르러서는 인류를 단 2개의 이념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여러 국가들은 심각한 내전을 겪어야 했다. 두 답안지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내편 아니면 적만이 존재했다. 세상이 단순해졌고, 어떤 면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규칙 없이 중구난방으로 어질러져 있던 인류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다채로움을 잃은 조화는 무성생식하는 생물처럼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흑백 논리를 기조로 삼는 사상의 양극화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흑백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회색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반대라고 몰아세운다. 전 세계적으로 점점 심각해지는 정치적 양극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성의 추구에서 비롯된다. 마치 그들은 1차원 선에 존재하는 듯하다. 좌우만 존재하고 나보다 오른쪽에 있으면 모두 극단적 오른쪽으로, 나보다 왼쪽에 있으면 모두 극단적 왼쪽으로 치부한다. 다차원적인 시각에서 볼 때, 자의 눈금처럼 어느 누구도 겹치지 않고 좌와 우 사이에 차례대로 배열되는데도 말이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우리의 시야를 차단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다시 죽음으로 돌아와 보자. 죽음은 유성생식의 등장과 함께 세상에 등장했다. 그리고 유성생식을 하는 인간으로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다. 단순히 유전자 입장에서만 바라본다면 유전자를 후세로 전달하는 껍데기가 그 기능을 잃은 순간을 죽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생물들처럼 유전자 기계가 아니다.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주는 것 외에도 저마다 사명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들은인간의 죽음을 '육체적 죽음'과 '상징적 죽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육체적 죽음은 심장 박동의 중지나 호흡의 중지로 일컬어지는 생물학적 죽음을 뜻한다. 상징적 죽음은 사회적, 문화적 의미에서의 죽음을 말한다. 정치적 이유로 사회에서 축출되거나 개인의 정체성이 부정당할 때 상징적 죽음을 맞이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도편추방제로 쫓겨난 이들은 상징적 죽음을 당한 셈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상징적 죽음이 갖는 의미다. 정치적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만 상징적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명을 고민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삶은 어떤 면에서 상징적 죽음을 당한것과 같다. 사명이라고 해서 자국의 독립이나 사상의 진보, 인류의 화합처럼 거창한 것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모른다. 모든 것은 이유가 생기고 탄생이 뒤따르지만 인간은 예외다. 태어나고 이유를 구한다. 태어난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규명하는 일이다. 상징적 죽음에 반대되는 상징적 탄생을 위한 일이다. 상징적 탄생을 경험하면 더 이상 육체적 죽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유전자 전달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후대에 전달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철학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가 선보인 사상은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지금까지 이어진다. 자식은 없었지만 그의 명성은 역사에 남아 그 맥을 유지한다. 조지 워싱턴도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미국의 정체성에 구심점 역할을 한다. 칸트와 조지워싱턴은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상징적 죽음은 당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문화적 유전자에 각인되어 후대에 전달되는 중이다.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탄생의 이유가 정해진다. 끝을 알 때 비로소 시작도 알 수 있는 법이다. 죽음을 고민하는 것은 태어난 이유는 찾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죽음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명을 발견한다. 사명을 발견한 순간 우리는 상징적 탄생을 맞이한다.
최근에 어릴 적 단짝이던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 상대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는 죽었지만 나에게는 죽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옆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갔고, 연락은 그 뒤로 끊겼다.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기 전이라 전학 가면 소식을 전한 길이 없었다. 워낙 친했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엄마와 옛날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친구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지금은 뭐 하고 지낼지 궁금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아마도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잘 지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로부터 단짝이 전학 가고 몇 년 후에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알고 보니 이사 가고 얼마 안돼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잘살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친구가 죽은 건 10년도 훌쩍 지난 일이지만 나는 갑작스러웠다. 내게 있어서 친구는 엄마에게 소식을 들은 날 죽었다. 친구가 죽은 후에도 내 머릿속에서 친구는 10년 넘게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친구는 언제 죽은 걸까? 10년 전일까 아니면 내가 알게 된 그 순간일까?
비슷한 상황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행방불명된 아기를 찾는 부모.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소식을 듣기 전까지 그들은 죽음을 속단하지 않는다. 전지적 시점에서 볼 때 기다리는 상대가 죽었더라도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상대적 죽음이라는 아이러니는 양자역학으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확률로 존재하고 관측될 때 결정된다. 따라서 관측자에 따라 사건은 상대적인 속성을 가지게 된다. 죽음을 목격한 사람에게는 사망이 결정된 사건이지만 아직 관측하지(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확률적 사건으로 존재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말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 대개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사건을 결정한다.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런 사고를 확장시키면, 죽은 자를 상기하는 것은 잠시나마 고인이 내 세상에 현존하는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워하던 죽은 가족을 꿈에서 만나면 마치 봤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죽은 자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제사를 올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언제 죽을까? 나의 영혼이 육체를 떠났더라도 나의 죽음을 모른 채 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나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모두에게서 잊혔을 때 그제야 완전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라틴어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는 경구로 사용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장군이 개선 행진을 할 때 뒤에서 메멘토 모리라고 외쳤다고 한다. 장군이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언젠가 죽음에 맞게 될 것이란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불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회피하거나 무시해선 안된다. 죽음은 우리가 필멸의 존재임을 잊지 않게 주입하고, 유한한 삶 속에서 제각각 의미를 찾도록 재촉한다. 명예로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소위 개죽음이라고 불리는 허망한 죽음도 있다. 죽음은 마침표처럼 마지막을 결정하지만 살아온 나날을 온전하게 완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얇고 길게 사느냐, 굵고 짧게 사느냐. 삶의 방식을 정할 때도 죽음은 선택에 관여한다. 죽음은 우리가 죽은 후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삶을 영위할 때도 계속 우리 곁을 맴돈다. 우리가 죽음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