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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책방 Sep 27. 2024

호모 엠파티쿠스

인류의 등장

깊은 밤, 고요한 대지 위에서 별빛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저 별들은 수백만 년 전에도 이곳에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꼈던 경이로움과 두려움, 그 감정은 우리의 DNA 깊숙이 새겨져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기원, 인류가 어떻게 별 아래에서 첫 발을 내딛고 오늘날의 문명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는 이야기다. 아프리카의 땅에서 시작된 그 여정, 그리고 여러 대륙에서 펼쳐진 진화의 흐름은 우리가 무엇을 찾아 나섰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확실한 이론은 없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현대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했으며, 이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다른 대륙으로 이동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이론은 고고학적 발견과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인류의 기원과 확산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건조하고 삭막한 사막이 먼저 떠오르지만, 약 700만 년 전 그곳은 전혀 다른 풍경을 품고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 동부는 다양한 생태계가 공존하는 지역이었고, 숲, 습지, 사바나가 혼재된 환경이었다. 이곳에서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이 서식했다. 그러나 지구의 기후가 서서히 변하면서, 아프리카의 숲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사바나 초원이 차지하게 되었다. 숲이 줄어들자,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조상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이제 더 이상 나무를 타고 다닐 수 없었기에, 강렬한 햇빛을 피하면서도 장시간 이동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다. 네 발로 걷는 것보다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이 더 유리했을 것이다.


이족보행이 인류의 진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먹이를 더 쉽게 옮기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고,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두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바나 초원에서의 긴 이동이 이족보행의 주요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초원에서의 긴 이동이 두 발로 걷는 방식을 촉진했고, 이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도구 사용과 같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최초의 인류로 알려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는 약 700만 년 전, 현재의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 살았다. 그들은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었던 최초의 고인류였으며, 나무와 지상 생활 모두에 적응할 수 있는 독특한 신체 구조를 가졌다. 시간이 흘러, 약 300만 년 전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등장했다. 이 종은 이족보행을 익힌 것으로 추정되며, '루시'라는 유명한 화석이 속한 종이기도 하다.


약 25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는 새로운 인류가 출현했다. 이 이름은 '손재주가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이들은 도구를 가공하여 사용하는 최초의 인류로 알려져 있다. 도구 사용은 단순한 생존 기술을 넘어, 인류의 지능과 사회적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 후 약 19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등장했다. 이 종의 이름은 '곧게 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여 유럽과 아시아로 이주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장거리 이동 능력과 적응력을 갖춘 종으로, 이후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 중 일부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로 진화했고, 이들이 다시 유럽에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40만 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약 30만 년 전 등장한 현대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와 동시대에 공존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오늘날의 인류를 형성했다.


인류의 진화는 이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초기 인류는 중동을 거쳐 유럽과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일부는 극지방인 시베리아까지 도달하여 맹추위를 견디며 생활했고, 그중 일부는 베링해협 지역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 당시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아, 육지로 연결된 베링 육교를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아메리카로 건너간 이주민들은 남쪽으로 이동하며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까지 확장해 나갔다. 인류의 역사는 이주라는 끊임없는 이동의 연속이었다.


책 <이주하는 인류>는 인류사를 살펴볼 때 이주 생활이 정착 생활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성경도 히브리 민족의 이주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이나,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인도한 출애굽기, 그리고 바빌론 유수 이후의 역사까지도 모두 이주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정착 생활이 정상으로 여겨지며, 이주민이 종종 천대받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주장하며, 사실 이주가 더 근본적인 인간의 생활 방식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저자는 오늘날의 난민 문제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시사한다. 이주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인간 본성의 일부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인류 역사를 바탕으로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본성은 이동에 있으며, 이는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서 인간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이주는 인류의 진화와 문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정착 생활과 함께 인류의 역사를 형성한 핵심 요소다. 이 두 요소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종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특징은 두뇌 크기, 도구 사용, 이족보행, 치아와 턱 구조, 그리고 사회적 행동과 문화다. 호모 종은 더 큰 두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구조 또한 발전해 더 복잡한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두뇌 발달은 손재주의 발달을 촉진했고, 이는 도구의 정교함과 복잡성을 증가시켰다. 또한, 언어의 발전과 함께 사회적 행동이 더욱 체계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긴 팔과 휘어진 손가락을 가지고 있어 나무 타기에 더 적합했다. 그러나 호모 종은 골반이 더 짧고, 이족보행에 효율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다리와 발의 구조 또한 지상 생활에 최적화되었으며, 이는 긴 거리 이동과 사냥에 유리한 신체적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사냥은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고단백질과 에너지가 풍부한 고기는 두뇌 크기의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뇌는 인체 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처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기와 같은 고열량 식품이 필수적이었다. 사냥은 단순히 식량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인류의 뇌를 발전시키고 정교하게 만드는 촉매제였다.


사냥은 신체적 변화도 촉진했다. 인류는 긴 거리 이동에 유리한 이점을 활용해 사냥을 하며, 이러한 환경에서 이족보행은 더욱 효율적으로 발달했다. 또한, 던지기와 같은 동작에 적합하도록 팔과 어깨 구조도 진화했다. 사냥은 단순한 생존 활동을 넘어, 협력과 팀워크를 필요로 했다. 이는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복잡한 의사소통 체계의 발전을 촉진했다. 사냥한 먹이를 나누는 과정에서 유대감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집단생활과 복잡한 사회구조의 기초가 되었다.


사냥은 또한 문화적 진화를 이끌었다. 사냥과 관련된 경험과 기술이 세대 간에 전수되면서, 도구 제작, 의례적 행동, 상징적 표현 등이 발달했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은 인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냥은 고인류가 현대 인류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류의 일대기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진화가 직선적으로 일어났다는 단순한 개념은 잘못된 상식임을 알 수 있다. 흔히 고인류가 원숭이 같은 모습에서 점차 허리가 펴지고 털이 빠지며, 머리가 커져 옷을 입는 그림을 상상한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는 그렇게 일직선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현재 지구에 호모 사피엔스만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에도 항상 하나의 인류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여러 인류 종이 동시대를 살아가며 생존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생존력이 부족했던 종은 멸종하고, 결국 호모 사피엔스만이 남게 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간의 교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의 유전자 중 약 2%가 네안데르탈인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인류의 진화 과정이 직선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인류 종이 강줄기처럼 흩어졌다가 만나며 현대 인류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류의 진화는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복잡한 가지로 이루어진 나무와 같다. 서로 얽히고설킨 가지들이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분리되며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 왔다. 이 복잡한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인류가 얼마나 다채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도전과 생존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제시된 교미 방법을 기준으로 유인원과 인류를 구분하는 시각은 매우 신선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이 시각을 통해 인류와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와 보노보의 교미 과정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난교가 일반적이다. 한 마리의 암컷이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하며, 이로 인해 수컷들은 가능한 많은 암컷과 교미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적인 행동을 보인다. 수컷들은 자식이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침팬지 사회에서 수컷들 사이의 끊임없는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경쟁은 침팬지 사회에서 하나의 번식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보노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들은 마주 보는 자세로 교미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치 사람처럼 눈을 마주 보며 교감하는 모습이다. 보노보의 성행위는 매우 짧게 끝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보노보에게 성행위는 단순한 생식을 넘어, 사회를 안정시키고 긴장감을 완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보노보의 세계에서는 사랑과 섹스가 곧 평화를 의미한다.


인류는 또 다른 흥미로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암컷이 발정기를 숨긴다는 것이다. 침팬지나 보노보와는 다르게, 인간 여성은 언제 임신 가능한 시기인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수컷이 암컷 곁에 늘 머물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낳았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특성이 일부일처제의 형성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교미 방식이 결국 종의 문화 형성에 얼마나 깊이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라고 할 수 있다.


출산 과정도 인류 진화의 중요한 사건이다. 침팬지는 출산할 때 홀로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새끼를 낳는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웅크린 자세로 아기를 낳을 때 아기가 바닥을 향해 나오기 때문에 어미가 새끼를 쉽게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정이 다르다. 인간 아기의 머리는 매우 크기 때문에, 출산할 때 아기가 몸을 두 번 비틀며 나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기의 머리는 엄마의 시선과 반대로 향하게 되며, 그 결과 산모가 아기를 직접 받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산파가 필요하다.


이 출산 과정에서 형성된 암컷들 간의 유대감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산을 돕는 과정에서 암컷들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이는 집단의 사회적 구조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유대감은 단순히 출산에 그치지 않고, 강한 수컷이 집단에서 마음대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약자들이 서로를 도와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한다.


인간은 출산을 돕는 것처럼, 협력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는 행동을 발전시켜 왔다. 이는 인간이 다른 종들과 다르게, 단순한 개인적 진화를 넘어 협력적 방향으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한 개체에 모든 기능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화의 큰 전환점이다. 인간은 서로를 돕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진화해 왔으며, 이는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진화는 단순히 신체적인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진화는 우리의 문화, 사회 구조,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방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진화는 더욱 복잡하고, 아름답게 그려질 수밖에 없다.


인류는 상호의존적인 진화를 통해 공감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으로, 침팬지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공감 능력을 측정한 사례가 있다. 실험의 요지는 침팬지와 어린아이에게 두 개의 버튼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A버튼을 누르면 자신과 마주 보는 친구가 각각 간식을 하나씩 받게 되고, B버튼을 누르면 자신만 간식을 하나 받는다. A버튼을 누르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이타적인 선택을 의미한다. 침팬지는 실험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A버튼과 B버튼을 비슷한 비율로 눌렀다. 심지어는 마주한 침팬지가 간식을 나누자고 손짓을 해도 B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반면, 어린아이는 일관되게 A버튼을 눌렀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이 본능적으로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인류의 상호의존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공감 능력의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우리는 점차 이기적으로 변하고, 나누는 것에 인색해진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고 이해타산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현대에 들어 도시화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삭막해졌으며, 진화적으로 축적된 공감 능력이 점차 결여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눔이 손해로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이에 적응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데 어색해지고 주변의 아픔에 무관심한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다. 인간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단단한 가죽을 지니고 있지 않다. 만약 정글에 홀로 남겨진다면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체적으로 나약한 인간이 지구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유대감을 통해 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깨닫고, 공감을 바탕으로 한 문화를 다시금 형성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공감의 시작은 표현에서 비롯된다. 미안하거나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이를 상대방에게 표현함으로써 당신이 그의 입장을 공감하고 있음을 알릴 수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를 등가교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하면 그만이라고, 물건을 사고 값을 지불하면 고마울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이는 유대감을 훼손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다. 비록 사과를 했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돈이 있더라도 마트 사장님이 없었다면 그 물건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미안함과 감사함을 늘 간직하고 주변 사람들을 대한다면, 사회는 더욱 따뜻해질 것이다.


협력이 필수적이었던 과거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유대와 소통이 생존의 기본 조건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오면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압력과 가치관이 변했다. 우리는 효율성과 개인적 성취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사회적 존재로서 집단 속에서 안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의 관계와 상호 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점점 공감적 자세가 희미해지는 현상은 매우 안타깝다. 맹자는 이미 오래 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지니고 있다고 설파했다. 아이가 물가에 빠지려는 위험을 보면 안절부절 못하며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공감의 능력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이며 우리는 이를 잃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넘어 공감과 이해의 능력을 가진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로 나아가야 한다. 공감은 개인의 내면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건강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큰 나무가 그늘을 제공하듯 우리도 공감의 그늘 아래서 서로를 보호하고 지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한 진화적으로 인간이 자식이 자신의 친자라는 확신을 강하게 가지는 것은, 다른 유인원들과는 달리 인간 사회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생각해 보자. 만약 아빠가 자식이 진짜 내 자식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면, 자식에게 사냥 방법을 가르치며 "이건 내 자식이니까 잘해야지!"라는 마음이 생길까? 아마도 자식을 '내가 왜 너한테 이걸 가르치지?'라는 의문 속에 방치해 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아빠는 "이 녀석, 나를 꼭 닮았네!"라며 자신의 모든 경험을 전수하려고 한다. 그렇게 인간 사회에서는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문화의 전승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자의 등장은 인류가 문화를 전승하는 데 있어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구전(口傳)도 문화의 축적에 기여하지만, 구전은 왜곡되기 쉽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휘발성이 강하다. 반면 문자로 기록된 지식은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다수에게 전달될 수 있다. 책은 작가가 일생 동안 쌓아온 지식을 담고 있으며, 독자는 그 책을 통해 작가가 경험한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는 독서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책은 단순히 활자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경험과 지혜를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다.


인간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경험이 다르지만, 시대마다 겪는 일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따라서 이전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방법이다. 남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조언이 때로는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모든 조언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주의 깊게 듣다 보면 나에게 도움이 될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문자의 등장은 인류가 문명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자가 등장하기 전에는 유전 정보와 구전되는 정보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이 두 정보 체계는 축적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개인의 짧은 인생 동안 큰 진보를 이루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자의 등장으로 인해 인류는 멀리 떨어진 장소에 살거나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까지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의 축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인류의 진보를 촉진하며 문명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정보 전달 방식의 변화는 문명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정보는 주로 문서와 책을 통해 전달되었지만, 컴퓨터의 등장으로 정보는 데이터라는 새로운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제는 책을 읽을 필요 없이 파일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으며, 이는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과 사회의 발전이 가속화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정보 체계의 발전은 문명의 진화를 촉진하며, 인류가 더 복잡하고 발전된 사회를 이루어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우리는 인류에 대해 여러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인류는 특별하고 우월하다는 인식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다. 고릴라와 침팬지는 비슷할지라고, 침팬지와 인간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비교했을 때 고릴라와 침팬지보다 침팬지와 인간이 더 유사하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의식을 지닌 것은 신에게 선택받아서가 아니다. 의식을 발전시키고 사회적 문화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의 발전은 지식의 축적을 가능케 했고, 유전적 정보보다 더 빠르게 지식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다. 이런 점진적 변화가 지금의 인류를 만들었다. 태생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학과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서양 열강들이 식민지를 개척하고 원주민을 노예로 삼는 제국주의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이들 제국주의자들은 인종을 피부색으로 구분하여 백인, 흑인, 황인, 홍인으로 분류했으며, 이러한 단순한 분류는 그들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마치 자연이 인간을 위해 준비한 정교한 탑이었으며,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은 백인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퍼뜨렸다.


이들은 우생학을 사상적 무기로 삼아, 유전적으로 '똑똑하고 우월한' 백인이 '열등하고 우둔한' 유색인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종주의적 사고를 확립했다. 우생학은 과학의 암울한 과거 중 하나로, 일부 과학자들은 그 당시에 자신들의 연구를 이러한 이념에 맞추어 왜곡하기도 했다. 흑인이나 장애인을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규정하고, 이들이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회의 '진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에서는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행하도록 했다.


이런 비극적인 역사에서 우리는 과학을 다룰 때의 책임과 주의의 필요성을 배워야 한다. 과학이란 검증 가능한 증거에 기초해야 하며, 특정 사상이나 이념에 맞추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우생학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을 가장한 편견이었다. 과학적 진실은 때때로 우리의 신념과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는 이들은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은 감성적으로 매력적 일지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우리는 단지 지구라는 무대에서 적응에 성공한 종일뿐이다. 문명을 이룬 것은 우리의 방식이었지만, 자연에서의 성공은 단지 생존과 번식이라는 잣대에 달려 있다. 동물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적응에 성공하여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었다. 우리가 문명을 쌓았다고 해서 다른 생명체들이 열등한 것이 아니다. 자연은 편견이 없으며, 모든 생명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 왔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시각에서 쓸 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고, 우리는 진화의 결과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학을 오용하여 다른 생명체, 더 나아가 다른 인간을 억압했던 암울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진실을 추구해야 하며, 그 진실은 때로 우리의 편견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과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단지 적응의 한 형태로서 존재할 뿐,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다. 동물들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적응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과학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자연의 다양한 형태를 존중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인류의 위치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류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나의 뿌리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만이 아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고, 자연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이룩한 눈부신 발전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진화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문명을 이룩한 것은 우연도 아니고, 인간이 특별히 뛰어나서도 아니다. 이는 생명체가 지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사건일 뿐이다. 우리 문명의 발전은 지구상의 생명체가 적응하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의 문명은 그저 진화의 한 과정으로 자연의 일부로서 일어난 사건이다. 결국, 인류의 여정은 자연의 일부로서 일어난 사건들로 이루어진,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진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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