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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18. 2022

특수학교에 간 첫째님

손톱만큼 성장한 이이와 부모의 믿음

첫째님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 자폐 스펙트럼에 걸쳐있는, 몸무게는 20kg이며 9살의 나이지만 이제 갓 돌 지난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었다. 이런 첫째님 키우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건 그간 글을 쓰면서도 계속 반복했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어렵고 힘들고 문제가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마추다 보니 당연히 내가 쓰는 글들 속에는 그 어렵고 힘든 삶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레 녹아져 있었다.



교회에서 달란트 시장을 한다고 아이들이 뭔가를 잔뜩 받아왔다. 첫째님은 표현을 못하니 안쓰러운 마음에 선생님들이 달란트를 챙겨줬고 그런 선생님들이 많았다. 뭔가를 하지 않았지만 교회 출석만 한걸로도 많은 달란트를 모았고, 둘째 놈은 표현도 잘하고 교회 생활을 상당히 열심히 해서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달란트를 많이 모았다.

그렇게 모은 달란트를 갖고 신나는 소비를 위해 달란트 시장에서 정말 이것저것 마구마구 사셨다. 둘째 놈은 우리가 보기엔 전혀 쓸모없지만 본인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귀한 공주님 목걸이 등을 샀고, 첫째님은 아내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들을 선물이랍시고 샀다. 나를 위해선 설거지 열심히 하라는 의미의 고무장갑을, 둘째 놈을 위해 줄넘기를, 그리고 나머진 첫째님을 위한 것들 이였다.

과자도 한 뭉텅이 받아와서 집에 와 그것들을 하나씩 풀었다. 둘째 놈은 색다른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받아 온 과자들을 잊고는 방에 들어가 모든 것들을 확인하고 즐거워하면서 나오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첫째님에게 맛있는 간식을 단독으로 먹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달란트 시장에서 받은 홈런볼을 들고 첫째님 이름만 불렀다. 평소에는 "과자 먹자" 하면 어딘가에 있던 둘째 놈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오기 때문에 첫째님 이름만 조용히 불렀다. 과자를 보여주며 먹으라는 말 없이 계속 홈런볼을 흔들었지만 마루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첫째님은 쳐다만 볼 뿐 오질 않았다.


둘째 놈은 간식을 너무 좋아하며 밥 이외에 모든 걸 다 잘 먹는다. 첫째님은 이제야 간식을 챙겨 먹긴 하지만 둘째 놈처럼 전투적으로 먹지 않다 보니 첫째님에게만 이 간식을 다 주고 싶었다. 퇴근하면 격하게 반기면서 놀아달라는 둘째 놈 때문에 첫째님은 인사만 하고 잘 놀아주지 못한 게 항상 미안했었다. 그래서 이 맛있는 초콜릿 과자를 온전히 첫째님에게 싹 다 바치려고 애타게 불렀지만 그 마음 몰라주는 첫째님은 계속 쳐다만 보고 움직이질 않았다.

아빠의 이 마음을 알아달라며 결국은 내가 움직여야 했고 첫째님의 입에 과자 하나를 넣어줬다. 부드러운 겉과 다르게 매우 달콤한 초콜릿을 맛 본 첫째님의 눈은 달라졌다. 과자를 들기만 했을 뿐인데 첫째님이 쏜살같이 달려와 하나 받아먹고는 마루로 뛰어갔다. 그래서 과자 하나를 또 들고 있으니까 이젠 갖고 놀던 펜을 던지고 식탁 의자에 앉아 홈런볼을 받아먹었다.


"찰리 한! 그냥 혼자 먹게 식탁 위에 과자를 올려놔!"


자기 혼자 집어먹을 수 있는 걸 알면서도 평소 습관처럼 난 첫째님 입에 과자를 넣어주고 있었고 아내의 말에 얼른 과자가 담긴 플라스틱을 식탁 위에 올려놨더니 아주 잘 집어먹었다.


어느 순간 첫째님은 과자를 잘 집어 먹었고 식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게 둘째 놈처럼 아주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맛있는 게 있으면 한입 베어 물고 본인 취향에 맞으면 식탁 의자에 앉아 입을 벌리며 넣어달라고 했다. 아내는 그걸 놓치지 않고 스스로 집어먹게끔 식탁에 놔줬다. 맛있는 것에 대한 식탐이 생겼으니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됐다.

병원에선 언제나 뒤에서 1,2등이라고 살 좀 찌워야 한다고 의사가 권고했었다. 식탐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먹여서 살을 찌우냐며 아내와 나는 근심에 쌓일 수밖에 없었다. 가끔 기분이 수틀리면 밥도 안 먹고 굶게 되면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포크질, 숟가락 질은 꿈도 못 꿨고 집어 먹는 간단한 것조차 스스로 한다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먹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제발 식탐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게 없는 첫째님의 상황이 야속하기만 했었다.

헌데 그 바람을 어느 순간 첫째님이 갖게 됐고 집어 먹게 된 지 반년도 넘었는데 나에게 그런 바람이 있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그걸 알게 되면서 첫째님이 성장이란 걸 하고 있다는 것 또한 다시 알게 됐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첫째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틀렸던 것이다. 첫째님은 아주 천천히 느리지만 본인만의 성장 시간과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반년 전부터 혼자 먹을 수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면서도 평소 습관처럼 다 해주는 내 모습은 어쩌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첫째님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가 내 의식과 무의식에 있어서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도와주고 참견해야 했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어쩌면 내가 많이 뺏지 않았을까, 그러니 첫째님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잘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지금 내 이런 행동이 아이에게 정당한가를 생각해야 했다.

남들에겐 장애에 대한 편견은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내 마음속 에선 내 아이라 그런지 그 편견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원래부터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으니 도와줘야 한다라고 되뇌었던 것이다.

손톱만 한 성장, 그건 나에게 있어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에서였고 아이의 성장 속도로 비춰보면 손톱이 아닌 일취월장할 만한 성장이었다.

내가, 우리 부부가 그렇게 바랬던 여러 가지 중 한 가지를 첫째님이 해냈는데 난 겨우 그걸 손톱만 한 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둘째 놈에게 언니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언니의 시계는 천천히 가고 있어서 모든 것이 뒤처져있다고 했다. 둘째 놈도 다른 친구들이 "너네 언니 아직 말 못 해?"라고 물어볼 때마다 언니의 시계는 천천히 간다고 설명해줬다.

천천히 가고 있다. 하지만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녔다. 첫째님의 속도는 천천히 가지만 정상적으로 가고 있다. 좀 더 지연돼도, 좀 더 느리게 가도 괜찮다. 그저 어제보다 0.001%의 성장만 있어도 된다. 다만 그걸 알아채고 성장이라고 믿는 내 마음이, 내가 부모로서 성장해야 하는 마음이 더 필요하다.


5년 전 첫째님의 동영상을 봤다. 자폐 이전의 다운증후군 일 땐 말도 하려고 했고 율동도, 지시 수행도 참 잘했다. 자폐 판정 이후론 그런 모습이 가뭄에 콩 나듯 나온다. 현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다시 자폐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자폐 판정을 받은 3년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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