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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10. 2023

나도 어느새 부모가 됐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지 않았겠지!

아내가 취업하여 맞벌이로 아이 두 명을 키우게 된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아이들에게 바뀐 건 엄마가 조금 더 늦게 데리러 온다, 아침에 엄마가 없다 정도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 다니던 학원을 매일 다니지만 재밌는 수영과 미술이 추가된 정도였다.

아내의 취업을 축하해 주며 우리 집 가게 사정이 좀 나아지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 능력자 아내가 경단녀로 지내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버젓이 괜찮은 회사에서 좋은 연봉을 받는 게 매우 좋아서 응원을 해줬건만 막상 아내가 출근하기 전날 내가 더 긴장 됐다.

아내 걱정보다 아이들 걱정에서였다. 변한 건 크게 없지만 괜스레 걱정이 많았다.

아내의 출근 첫날, 첫째님을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 둘째 놈을 8시에 후문 앞에 내려다 주며 잘 갔다 오라고 말했지만 자기 반이 아닌 도서관에 모여서 책을 읽다 본인 반으로 가는 걸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출근 내내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았다. 둘째 놈도 똑같이 걱정이 됐는지 차 안에서 나한테 계속 물어봤다.

"아빠! 도서관 문 닫으면 어떡해?"

"그럼 너네 반으로 가봐"

"우리 반도 문 닫으면 어떻게 해?"

"그럼 교무실로 가봐"

"교무실도 문 닫으면?"

"교무실이 문을 안 연다는 건 학교가 쉰다는 거야. 교무실도 닫히면 교통지도 선생님에게 휴대폰 빌려달라고 해서 아빠한테 전화해"


다행히 전화는 안 왔고 퇴근하고 와보니 아내는 첫 출근으로 인해 약간 들떠있고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평일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적고 아내 역시도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으니 주말엔 정말 재미난 곳으로 같이 놀러 가려고 둘째 놈에게 아침 먹으면서 말했다. 평소에도 키즈카페 가자는 녀석의 말에 외벌이 일 땐 생활비가 부족해 못 갔지만 이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가서 원 없이 놀 수 있게 되어 주말에 키즈카페 가자는 약속을 했다.

주말 저녁에는 모임이 있어 그전까지 그래도 아이들과 좀 놀아줘야 평일에 못 놀아준 미안한 마음을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오픈런을 했고 아내한테는 아침이라도 좀 쉬라고 하고 애 둘 데리고 키즈카페로 달려갔다.

오픈런이 좋긴 하다. 아무도 없으니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양보도 필요 없고 눈치 볼 이유도 없었다. 한참을 신나게 놀다 보니 슬슬 아이들도 많아지고 배가 고파질 때가 됐다. 먹고 싶은 메뉴를 물어보면 언제나 말하는 감자튀김 노래를 불렀으니 둘째 놈에겐 감자튀김을, 첫째님에겐 함박스테이크를 사줬다.

함박스테이크를 잘라 첫째님 입에 넣어주니 기가 막히게 잘 먹었다. 잘 먹어줘서 고맙고 기특하기도 했는데 같이 나온 반찬에 메쉬 포테이토와 샐러드가 있었다.

첫째님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메뉴이고 남기기엔 아까웠다. 그리고 내가 먹을 메뉴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둘째 놈은 분명 감자튀김을 남길 것이고 첫째님은 잘 안 먹을 것 같아서였는데 첫째님이 함박스테이크 두 개를 다 해치워 버려서 내가 먹을 것은 감자튀김과 메쉬포테이토, 샐러드였다.

둘째 놈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튀어나가 놀았고, 첫째님이 싫어하는 메쉬포테이토와 샐러드를 먹으면서 둘째 놈이 남긴 감자튀김을 먹다가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났다.



아버지의 형제는 사과농사를 하셨고 우리 집은 1년에 2~3달을 제외하곤 매일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사과를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아침에 사과를 깎아주면 누나와 난 신나게 사과를 먹었고 어머니는 사과의 끝 귀퉁이를 세모로 칼집을 내어 입에 배 어물어 드셨다.

그게 맛있어 보여서 어머니한테 달라고 하면 넌 더 큰 거나 먹으라며 접시에 예쁘게 담긴 사과를 가리켰다.

왠지 그 끝부분이 궁금해서 사과 한 개를 깎아 먹다 끝 부분을 입으로 배 어물어봤는데 세상 이렇게 맛없는 부분을 왜 어머니는 맛있게 먹는 건지 하며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새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사과를 깎아주다 보니 나도 그냥 자연스럽게 가운데 부분을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끝 부분을 어머니처럼 잘라먹었다. 결혼 전엔 그 맛없던 부분이 이상하게 맛있어졌고 그 부분만 먹어도 미쳐 먹지 못한 사과가 크게 아쉬움이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웃기게도 키즈카페에서 애들 먹다 남긴 걸 먹다 어머니가 생각나게 됐다.

맛없는 부분은 본인이 먹을지언정 자녀에게는 좋은 걸 주고 싶은 모습을 보며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고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사과 끝을 먹을 땐 이렇게 까지 생각나지 않았는데 애들 남긴 반찬 먹다 보니 끝부분만 먹어도 배부른 어머니 모습을 보며 그 당시에 쌀쌀맞게 말하던,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던 어머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게 됐다.

내 자녀들 역시 말썽도 피우고 말도 안 듣고 사고도 치고 자기들 하고 싶은데로 할 땐 그렇게 꼴 보기 싫었지만 깊게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긴 이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먹고 싶어 하는, 좋은 부분을 먼저 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받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했으니 고마워할 이유 따윈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랑을 크게 깨닫지 못했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모습 속에서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게 됐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바빴는지, 아니면 이제 좀 여유를 찾아서 인 건지 조금씩 부모님의 사랑을 인지할 수 있었다.


전화 한 통 안 드려서 매번 아내한테 혼나고 결국 안부 전화는 아내가 다 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부모님의 사랑이 잘 자리 잡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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