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빨래걸이만 되지 말자!
1년 정도 피트니스를 다녔다. 배 나온 40대의 아저씨 몸매도 싫었고 애들 재우고 휴대폰 붙잡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는지 아내도 권유해서 22년 9월 추석 지나고 3개월권을 결제하고 다녔는데 웬걸, 생각보다 힘들지만 운동할 때만큼은 뭔가 아무 생각 없이, 끝내고 난 후 성취감에 사로잡혀 연장 연장 하면서 1년을 다녔다.
하지만 둘째 놈이 당당한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주변에서 귀신얘기를 듣고 오면 그날 저녁 밤에 잘 때 무섭다며 옆에 있어달라고 했다.
아니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무서운 건데 왜 자꾸 학교 가서 들으려 하고 책도 귀신책을 빌려오고 본인도 귀신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긴, 무섭다고 하지만 공포영화는 매년 여름이 되면 극장가에 어김없이 나오니 그 무슨 이상한 심리학에서 들은 것 같은... 무서우니까 더 보려고 한다나!
그리고 30년 전에 나도 무서워했던 빨간 마스크니, 홍콩 할머니귀신이 아직도 학교에 존재한다는 게 더 어이없었다. 자기 친구들이 홍콩 할머니귀신을 봤다며 우리 집엔 없냐고 울상이 돼버렸다.
그 MBTI로 보면 난 완벽한 F 성향인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말하는 저 물음에 대한 대답은 완벽한, 대문자 T로 대답해 버린다.
"그 친구와 아빠 중 누가 더 오래 인생을 살았니! 아빠 때도 그런 이야기 있지만 아빤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러니까 홍콩 할머니 귀신은 없단다!"
라고 설득을 해도 먹힐 리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초등학생 때 학교 옥상에 돌아가는 풍향계에 검정 비닐봉지가 붙어 도는 걸 보며 '홍콩 할머니귀신이다'라고 소리쳤고 그때 친구들 모두 경악하며 운동장으로 뛰쳐나왔다. 급기야 순식간에 학교에 퍼져 결국 교장선생님이 방송으로 검정 봉투라고 해명하며 홍콩 할머니귀신 없다고 할 정도였다.
아무리 설득시켜도 무서운 건 해결할 수 없었고 애들 재우고 피트니스를 가야 하는데 자꾸 둘째 놈이 울면서 잠을 못 자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 아내는 그냥 재우라고 하지만 내가 아이들한테 가장 신경 쓰이는 몇몇 가지 중에 '매운 음식은 굳이 먹을 필요 없다'와 '무서운 건 극복할 수 없으니 누군가 옆에 있어줘야 한다'였다.
그래서 둘째 놈 방 안에 휴대폰 들고 킬링타임을 보내고 있으면 둘째 놈이 자라는 잠은 안 자고 계속 질문을 해댔다. 건성으로 대답하다 결국 폭발하여 '빨리 자' 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도 둘째 놈은 아빠가 옆에 있어 안 무서운지 10시가 넘어 잠을 잤고 그때가 되면 피트니스 가야 하는 의지가 한없이 꺾이면서 내일로, 모레로, 그러다 일주일을 못 가는 경우도 생겼다.
운동이 중요한가 아니면 둘째 놈의 저 무서움을 좀 달래주는 게 중요한가 를 심히 고민하게 됐고 하루는 둘째 놈의 말을 무시하고 운동하러 갔다 오니 안방에서 아내 옆에 땀을 흘리며 자는 둘째 놈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피트니스에선 아주 좋은 조건으로 연장하라는 문자가 왔다. 혹 할만했고 이 가격으로 1년 더 다닌다면 너무 좋지만 둘째 놈 때문에 연장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집에서 하는, 홈트의 세계로 진입할 준비를 하게 됐다. 마루에서 하면 적어도 둘째 놈이 많이 무서워하지도 않고 9시 반 전부터 시작할 수 있어서 좋고,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적 반응할 수 있어서 좋으니 마음도 한결 편했다. 무엇보다 비용 세이브는 너무 큰 메리트였다.
신상품을 산다면 가격이 엄청나지만 우리의 당근마켓을 이용하다 보니 가격은 거의 10분의 1, 2 수준으로 떨어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홈트를 위해 돈을 썼는지 잘 알게 됐다.
실내 자전거를 검색해 보니 2,3만 원에 쉽게 구입할 수 있었는데 10개 중 8개는 숀리의 자전거였고, 숀리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다시금 느끼게 됐다. 근데 새 상품이 꽤 비싼데 2,3개월 뒤면 다들 빨래 걸이로 사용한다는 후기가 엄청 나왔다. 아이가 커서 못한다, 다리를 다쳤다, 피트니스 회원권을 결제했다, 이사를 가게 됐다 등등으로 판매를 하게 됐는데... 어디까지 사실일까 의심도 되긴 했지만 저렴한 가격에 좋은 걸로 잘 골랐으니 좋긴 하더라!
한 가지 더 구매할 건 철봉세트였다. 아이들 방에 그네를 위해 철봉을 달아줬는데 너무 신나게 타서 그런지 문 기둥이 그만 휘어버렸다. 혹시 내가 매달리다 떨어지진 않을까 해서 철봉세트를 찾아보니 치닝디핑기구가 아주 대문짝 만하게 광고를 했고 역시나 중고마켓에선 위와 같은 사유로 판매를 했다.
득템을 하게 됐고 쉬는 날 집에서 열심히 조립하여 사용해 봤는데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면서 난 홈트의 세계로, 아이들은 무서움 없이 꿈나라의 세계로, 아내는 사이버 러버의 세계로 각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빨래걸이로 용도 변경된다는 3개월이 지나도 다행히 잘 사용하고 있다. 아쉬운 건 피트니스에선 중량 치는 맛, 벌크업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홈트로는 아쉽게도 중량 치는 맛을 느끼진 못했다. 내 몸무게가 최대치였고 근육의 사이즈를 키우려면 더 무거운 걸로 해야 하지만 그만큼 할 수 없었다.
다만 좋은 점이 훨씬 많았고 코어근육을 키우고 몸의 균형을 맞추는,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쓸만한 근육을 만드는 건 어쩌면 더 좋은 것 같더라.
피트니스는 연말 빼고는 사람들이 항상 붐볐다. 연말엔 회식도, 송년회도 해야 하니 운동보단 즐기는 사람이 많다면 연초엔 세상을 씹어먹을 자신감과 목표를 갖고 오는 사람들로 붐비게 됐다. 2~3개월 뒤면 그 숫자는 좀 줄지만 하고 싶은 운동기구를 하려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홈트엔 실내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하고 치닝, 디핑, 팔 굽혀 펴기 등등 다양한 자세를 할 수 있으니 기다릴 필요도 없고 하고 싶은 부위를 마음껏 조질(?) 수 있다.
부디 내년 24년에도 빨래걸이 말고 나만의 홈트로 잘 이용했으면 하는 작은 목표를 세우고 좀 더 건강한 40대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