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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테 Aug 07. 2024

문장 수집하기 #1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p.35 시계가 없어도 무음 속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발소리를 죽이고 담장 위를 걸어가는 야윈 고양이처럼.


p.53 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를 버릴 때 처음으로 그것에 뚜렷한 무게가 있었음을 실감한다. 평소 생활에서 지구의 중력을 느낄 때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p.56 나는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두 감정의 골짜기를 빠져나와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 도시에서 나는 더이상 외톨이가 아니라는 생각과, 그럼에도 철저히 외톨이라는 생각 사이를. 내 마음은 그렇게 정확히 둘로 쪼개져 있다. 냇버들 가지가 비밀스러운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p.59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저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너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그만한 확신이 없다. 과연 시간을-이 도시가 시간이라고 명명한 것을-그렇게까지 신뢰해도 괜찮을까? 그리고 이 끝나지 않을 듯 긴 가을 뒤에는 대체 무엇이 찾아올까?


p.72 "암, 망령이고 말고. 새벽 한시쯤 문득 잠이 깼는데 베란다 의자에 웬 여자가 앉아 있는 거야. 허연 달빛을 받으면서. 한눈에 망령인 줄 알아봤네. 그런 미인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 세상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걸세. 그 모습에 나는 그저 말문이 막히고 몸이 얼어붙었어.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 이 여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을 잃어도 상관없다고. 한쪽 팔, 한쪽 다리, 심지어 목숨까지 내줄 수 있다고. 그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어. 내 인생에서 품어온 모든 꿈을, 좇아온 모든 아름다움을 그 여자가 체현하고 있었네."


p.78 희미하게 눈물 냄새가 난다. 눈물에도 엄연히 냄새가 있구나, 나는 생각한다. 마음을 파고드는 냄새였다. 상냥하고 매혹적이고, 그리고 물론 어렴풋이 슬프다.


p.117 나는 거의 하루걸러 한 번 꼴로 네가 사는 동네에 가서, 자주 만났던 공원 벤치에 앉아 등나무 시렁 밑에서 하염없이 너를 생각한다. 둘이서 보낸 시간의 기억을 더듬는다. 네가 여기에 훌쩍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p.117 나는 어두운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쯤이면 지구의 중심에 닿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내려간다. 주위 공기의 밀도와 중력이 점점 바뀌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고작해야 공기 아닌가. 고작해야 중력 아닌가.

그렇게 나는 더욱 고독해진다.


p.122 어느 세계에 속해야 할까? 나는 아직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p.124 나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어째서 이곳에 있고,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어째서 이곳에는 늘 이렇게 세찬 바람이 불까?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물론 대답은 없다.


p.125 우리의 마음이란 이토록 불명료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것인가? 혹은 오래된 꿈이 이처럼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메시지밖에 내보낼 수 없는 건, 그것이 결속된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남은 부스러기'를 모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까?


p.191 때가 되면 동이 트고, 이윽고 햇살이 창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p.230 고야스 씨는 그 대목에서 말을 끊고는 손잡이를 당겨 난로 문을 열고 부젓가락으로 장작 모양을 다듬었다. 그러고는 같은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 스스로에게 되뇌는 것처럼.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네,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네, 저는 옛날부터 이 말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만, 그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한 건 죽어서 이런 몸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그래요, 우리 인간은 그저 숨결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어버린 제게는 이미 그림자조차 달려 있지 않습니다."


p.284 "본체와 그림자란 원래 표리일체입니다." 고야스 씨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p.304 그러나 매일 정해진 행동 패턴을 하나하나 정확히 짚어가며 답습하는 건 그에게 분명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행위의 본질이나 방향성보다 반복 자체가 목적인지도 모른다.


p.306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살아 있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와 조금 다른, 형이상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묘하게 고요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그 슬픔에는 아픔이 없다. 그저 순수하게 슬플 뿐이다. 그의 한 단계 더 나아간 죽음을 가정함으로써, 무가 확실히 존재함을 전에 없이 가깝게 실감할 수 있었다. 손을 뻗으면 정말로 만져질 것처럼.


p.319 나는 그의 독특한 퍼스낼리티에 호의를 가졌고, 일관된 삶의 가치관에 공감했다. 고야스 씨에게 운명은 결코 친절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그 인생을-자신에게나 주위 사람에게나-유익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있는 힘껏 노력했다.


p.347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라디오를 틀자 FM 방송에서 이무지치 합주단이 연주하는 비발디의 <비올라 다모레를 위한 협주곡>이 나오길래 멍하니 들었다.

라디오 해설자가 곡 사이에 말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생전에 육백 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작곡가로도 인기를 누렸고 명바이올리니스트로 화려하게 활약했지만, 그 후 오랜 세월 전혀 회고되지 않아 잊힌 과거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에 재평가의 기회가 왔고, 특히 협주곡집 <사계>의 악보가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면서, 사후 이백 년이 넘어서야 단번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이백 년 넘게 잊힌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이백 년은 긴 세월이다. '전혀 회고되지 않고 잊힌' 이백 년. 이백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물론 아무도 모른다. 아니, 이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p.422 애당초 나는 지금껏 대체 무엇을 기다려왔다는 건가?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정확히 알고나 있었을까?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명확해지기를 그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게 전부인 건 아닐까? 나무상자 하나에 들어간 더 작은 나무상자, 그 나무상자에 들어간 더 작은 상자. 끝없이 정묘하게 이어지는 세공품. 상자는 점점 작아진다 - 그리고 또한 그 안에 담겨 있을 것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껏 사십몇 년을 살아온 인생의 실상이 아닐까?


p.423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p.430 그런 시간에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름이 없다. 열일곱 살과 열여섯 살의 여름 해질녘, 강가 풀밭 위의 선명한 기억 - 오직 그것이 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 하나둘 별이 반짝일 테지만, 별에도 이름은 없다.

너는 똑바로 내 얼굴을 바라본다. 지극히 진지한 눈빛으로, 깊고 맑은 샘물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리고 고백하듯이 속삭인다. 손을 맞잡은 채.

"이제 알겠어?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지난 겨울 읽었던 책의 문장을 무더위가 찾아오고 난 뒤에야 겨우 옮겨 적으며, 책에서 언급되었던 폴 데즈먼드의 음악을 듣는다.


 혹자는 하루키 찬양자들을 속이 텅 빈 채 허세만 가득한 부류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하루키의 책을 읽는다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혹은 늘 그 자리에 있었으나 정의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나는 공허함을 남기는 책이 좋다. 어떻게 살던지 어떻게 마무리되던지 아무렴 어떻냐는 식의 태도가 내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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