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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Jan 06. 2023

끼리끼리 녹아든다지만

과학기자의 에세이

우린 대개 편향적으로 모인다. 숱한 뭉쳐짐과 흩어짐을 반복하고 난 뒤 주변을 살펴보면, 마음이 기우는 소수는 보통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의 지향점이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방향성도 딱히 다르지 않다. 살아오며 자연스레 상호선택된 무리 속에서, 각자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추억을 공유하며 형성한 '우리’라는 집단은 생각이 유사한 집합이다. 그 속에선 안 맞음을 타파하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며, 어색함을 깨려고 억지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괜찮다. 


갈수록 끼리끼리의 빈도가 늘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물 위의 기름만 보아도 족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압력을 강하게 주어 누르고 뒤섞으면 얼마간 혼합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 물질의 경계가 점차 드러난다. 나중엔 아예 두 층으로 이분된다. 어울릴 수 있고 녹아들 수 있는 성질, 극성이 다른 탓이다. 지속적인 외부 힘이 섞어주지 않는다면 둘은 결국엔 갈라질 사이란 뜻이다. 극성인 물과 무극성인 기름 사이엔 물리적 힘을 아무리 가해도 원초적 간극은 극복 못한다. 흔히 잘맞는 상황을 ‘케미가 맞다’고 표하듯, 갈라짐은 화학적 통일감이 결여된 결과라 그렇다.


사람과의 결합도 다를 것 없다. 결이 맞는 사람과는 좀 더 시간을 갖게 되고, 뜻이 일치하는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내게 잘 맞고 나와 잘 통하는 사람, 같은 극성을 지닌 사람들 말이다. 다른 부류와 억지로 섞여본들 불편감만 늘어나고, 불편하단 건 애를 써야 함을 의미한다. 그건 물과 기름의 합일을 위해 끝없이 흔들어줘야 했듯, 지난한 에너지를 요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우린 반드시 모든 사람과 어울릴 것 없다는 사실을, 어울릴 필요도 없다는 진리를 알아간다. 두 층으로 나뉜 혼합물처럼, 시간이 지나면 대척점의 사람들과는 차츰 알아서 나눠졌으니 말이다.


다만, 나의 좋음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저 극성은 극성끼리, 무극성은 무극성끼리 녹아들 뿐이다. 내 곁엔 ‘내게’ 좋은 사람을 두려고 하니, 혹여나 나랑 안 맞거나 나와 다른 반대의 사람을 그르게 여길 수 있다. 집단으로서 생존해온 우리는 유전자의 유혹에 따라 내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배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격과 성향이란 건 원체 다각화가 극심한 영역이니, 각자에겐 그에 부합한 우선 사항이 있는 거다. 


섬세한 사람, 사려 깊은 사람, 공감을 잘 하는 사람, 감정 민감도가 높은 사람, 차분한 사람, 진중한 사람, 활기찬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 잡담을 좋아하는 사람, 침묵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 이성을 앞세우는 사람, 반대로 공감을 우선하는 사람. 단지 끼리끼리 어울릴 뿐이다. 그런 명제 속에서, 나의 선호가 누군가의 좋음을 판별하는 잣대로 변해선 안 되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엔 어떤 우열도 없고, 저울질도 불가하며 다름만 있을 뿐이다.


때론 전혀 다를듯한 그들과도 녹아들어 볼 일이다. 노상 섞이지 않을 듯한 부류가 섞여 시너지를 내기도 하니까.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가지 향이 혼탁해 독특한 맛을 내기도 한다. 극과 극으로 보이던 두 사람이 천상 커플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들지 않은 사람에게는 자연스런 배척감을 느끼기 쉽다. 허나, 나에게 속하지 않은 여집합이라고 해서 별로일 순 없단 사실은 기억해 내야 할 것이다. 협량한 배타심은 '남'과 섞여 발휘하게 될 우리 간의 잠재력을 미리 지우기만 할 테니 말이다.


옷을 직조할 땐 비슷한 색깔의 실로 전체를 이어가지만, 포인트를 줄 무늬와 문양은 보색으로 마무리한다. 다수의 비슷함 속에 녹아든 약간의 정반대를 통해 특별한 지점이 탄생한다. 물과 기름을 이으려면 억지로 섞어야 하듯, 다른 성질이 합치되는 데엔 그만한 노력과 고생, 수고로움이 동반된다. 그러나 수고스럽던 과정이 예상치 못했던 늘품을 가져다주기도 할 것이다. 음식을 마무리하는 소량의 향신료처럼 말이다. 끼리끼리 녹아든다지만, 분명 다름과도 섞여들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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