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뭐 다 같은 의자지.
네발 달려 절뚝이지 않고, 적당히 도톰해서 베기지만 않으면 다 같은 의자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욕심을 조금 보태서 디자인을 중시한다면, 딱! 이케아 의자가 내 눈높이였다. 몇 번 이사를 다니면서 이리 던지고 저리 굴려도, 느슨해진 나사만 조여주면 어느새 곶곶해졌다.
이번 출장으로 배에 올라 배정받은 숙소에 가보니, 침대 옆에 떡하니 무게감 있는 의자가 발받침과 함께 놓여 있었다. 어지간이 넓은 방에 침대, 책상, 티브이, 샤워실, 원형 탁상과 발받침 있는 의자라니. 11년 전 북해에 처음 나갔을 때 4명이 한 방을 쓰며 작은 인기척에도 잠을 설치던 때를 생각하니, 나도 어느 정도 출세라는 걸 했나 보다.
12시간 근무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의자에 몸을 던져보니, 와... 이건 내가 의자에 앉은 건지, 의자가 나를 안은 건지 모를 정도로 포옥함이 느껴졌다. 무게감에 따라 적당히 뒤로 젖혀지는 등받이는 중력과 마찰력을 적절한 분배 하여 마치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줬다.
이 의자 모야?
하고 옆을 보니 의자 브래드가 그 유명한 스트레스리스였다.
노르웨이를 처음 와서 아내와 함께 소파를 보러 다닐 때가 있었단. 그때 봤던 브랜드다. 가격표를 보고 한참을 그 앞에 서서 환율을 곱해가며 몇 번이고 셈을 해 봤지만, 내 계산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했던 아주 비싼 의자였다.
지금 그 의자와 내가 한 방에 있다니.
의자가 놓인 쪽 벽에는 유화 그림 액자가 하나 걸려 있고, 노란색 백열등이 달려있다. 일부러 이 백열등 불만 하나 남겨 놓고, 의자에 반쯤 누워 있으면 밖에서 들려오는 칡흑같은 어둠 속 찰지게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날까로운 바람소리마저 스트레스리스 의자의 포근함을 더해주는 것만 같았다. 의자에 누워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스르르 잠도 청하다 보면 어느새 의자와 나는 혼연일체가 되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면 이거 하나 사자! 가만. 근데, 집에서도 이렇게 의자에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이거 사다놔 봐야 우리 집 강아지만 좋은 일 시켜줄게 뻔하다.
출장 마치고 집에 가면 헐궈진 이케아 의자에 나사나 쬐여야겠다. 2024.10 북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