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뒤척이며 자는 둥 마는 둥 아침 교대에 나갔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파도와 바람을 못 이겨 작업을 못하고 있었다. 웨더스탠바이에 걸렸다. 노르웨이 해상 날씨가 좋지 않다.
노르웨이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걸쳐 현재 해상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크고 작은 배들 10여 척이 아침 8시에 모두 온라인에서 만나 지난 24시간 안전상황과 작업상황을 보고한다. 많은 배들이 날씨로 손과 발이 묶였다. 그중 한배는 출발 전 7일 동안 항구에서 출발도 못 하다가, 이제 겨우 항구를 빠져나왔는데 현장에서 웨더스탠바이다.
놀이공원에서 줄을 서며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면 기가 빠진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도 진이 빠지는데, 심하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2주간을 뒹군다는 것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심히 지치게 만든다. 그 배에 전화를 걸었다.
하이! you are not alone. 너만 그런 거 아니고 나도 웨더스탠바이야. 뭐 어쩌겠어, 날씨가 이런데.
2주간 수염이 덥수룩이 자라 얼굴 전체를 덮어버린 스페인 동료가 마치 캄캄한 무인도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한 얼굴로 반가이 전화를 받는다. 지금 아무 생각이 없이 배에서 내려 시원하게 한 병 들이킬 맥주 생각뿐이란다.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어쩌겠는가.
내가 받아 태어난 몸과 내가 태어나 만난 사람들과 공간들. 가진 것을 망각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추앙하며, 할 수 없는 일과 맞서 싸워 돌아오는 상처는 훈장이 될 수 없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할 뿐이다. 그러기에도 세상이 녹녹지 않다.
웨더스탠바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냥 버티는 거야. 버티면 되는 거다.
버티다 보면,
시원한 맥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킬 날이 오는 거다. /2024.10 북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