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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 Jun 13. 2023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을 때

알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

지난 번 로테이션에 대한 글을 언젠가 꺼내보곤, 여느 때처럼 한 일을 왜 그리 자세히도 써놓았을까 하고, 괜시리 무언가 급하고 무언가 중요해보이는 병원의 일들에 대한 기록이 대단한 자의식처럼 느껴져 우습기도 했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맥락의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고 있는 지금에 와서 보니 내과에서 일하던 시절 써놓은 나의 일상의 기록이, 그때의 나와 내 마음의 위치가, 퍽이나 생경하고 신기하다. 기록해두길 잘했구나 싶다.


비비와 이영지가 나온 '차쥐뿔 20화'를 보면 [이영지 YouTube 참조], 이영지가 나쁘고 재밌는 남자 vs. 착하고 재미 없는 남자라는 그 흔한, 고전적 이분법적 개념화를 무려 불닭볶음면 vs. 능이백숙으로 비유해낸다. 얼마나 빵 터졌는지. 이 위트 있는 불닭볶음면과 능이백숙의 비유는 연애를 논하는 데에만 쓰이긴 아깝다. 진로에도 가끔은 불닭볶음면 [재밌지만 꽤나 위험하고 손해도 있을 것 같은 선택지]와 능이백숙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위험부담이 적지만 재미가 덜한 선택지]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왜 불닭볶음면과 능이백숙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이 이분법적 사고에 천착하는 건 대게, 사실 불닭볶음면을 매우 먹고 싶은데 능이백숙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때다. 능이백숙이 그저 좋은 사람은 애초에 불닭볶음면을 떠올리지 않는다.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은 대게 커다란 능이백숙의 탕을 끓여놓긴 했는데, 그 국물만 한 대접 떠놓은 뒤 먹지는 않고 실상은 계속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자주 설사를 하는(?) 그런 모양이 아니었는지, 지금 이 인간이 대체 뭘 얘기하는 거야 싶겠지만 그런 얘기를 해본다.


이전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 대한 기록이,

다른 모습의 나를 생생하게 환기할때 지금의 헐떡이는 나는 새삼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 2023년 6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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