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귀때기청봉 가다 - 설악 4편

귀때기청봉

by 김기만

시외버스를 타고 한계령에 내린다.

이른 시간에 설악이 우리를 부른다고 하여야 할까? 산불감시기간이 끝나고 입산통제가 끝나는 시점에 우리는 한계령을 찾았다. 5월에 산은 제일 덥다. 녹음이 산을 가리지 않고 있어 산 전체가 햇빛을 그대로 받는다. 등산을 할 때도 똑같다. 산객들도 산에서 그늘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햇빛을 만날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제일 뒤에 선다. 우리의 의식이 필요하다. 셋이서 함께 들머리에 서서 인증샷을 남긴다. 이것이 시작이다. 종료지점에 똑같다. 셋이서 힘들게 산행을 마쳤다는 것을 표시한다. 중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건 관계없다. 여기서 끝을 내면 산행 중 어려움도 산행 중 말다툼도 정리가 된다. 이제 시작이다. 저만치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산객들이 앞질러간다.


한계령 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수직계단도 올라가야 되고 돌계단도 올라가야 한다.


설악의 이곳저곳을 다 가보고 이제는 소청, 중청, 대청이 아닌 귀때기청이다. 한계령 삼거리까지 올라가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오였다. 5월의 산을 간과한 대가는 힘들고 목이 말랐다고 할 수 있다. 물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친구도 오늘은 많이 가져오지 않았다.


너덜 바위지대를 지나면서 더위에 지쳤을 수도 있다. 우리는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대승령을 거쳐 십이선녀탕을 지나 남교리까지 간다. 하지만, 결론은 대승령에서 장수대 쪽으로 하산하였다.

한계령에 시작한 녹음은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다음부터는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귀때기청봉이 보이는 지점까지 올라오니 힘이 든다. 하지만, 삼거리까지는 멀었다. 삼거리에 도착하니 작년에 보았던 개가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은 대청으로 가고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귀때기청으로 간다.

능선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1km 정도라고 하니 모두들 금방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보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힘이 든다고 하는 너덜바위지대에 들어서니 한여름은 이곳을 절대 오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늘도 하나 없고 바위도 듬섬듬섬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오르막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지만 그래도 너덜바위지대는 한 없이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고사목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암릉을 배경으로 사진도 담아 본다. 귀때기청봉에 도착하니 1시간이나 지났다. 우리가 공룡능선을 넘을 때 한 봉을 지날 때마다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경험했는데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다.

너덜 바위지대를 지나 능선에 접어들어 멀리 대청을 쳐다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끝청, 중청, 대청이 보인다. 귀때기청이 된 이유를 들어보면 재미있다. 귀때기청봉이 제잘 낫 맛에 산다고 할 수 있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서북능선에 보면 지가 제일 높다. 그런데, 지가 잘났다고 떠들다가 소청, 중청, 대청에 귀때기를 맞아서 귀때기청봉이라고 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높이는 해발 1,578m이다. 새로운 이야기는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분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1,578m 봉우리에 바람이 불면 진짜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울 것이다.

서북능선을 걸으면서 맹수의 송곳니처럼 불뚝불뚝 솟은 암릉을 보면서 멋있다고 한다. 그런데 저런 곳을 둥지를 틀고 있는 새들은 맹금류가 대부분이며 지상의 포식자로부터는 해방이 될 것이다.

귀때기청봉은 중청봉이나 소청봉과 동일하게 정상석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단지 요렇게 이정표에 누군가 이곳이 귀때기청이라고 붙여 놓았다.


이상국은 이렇게 귀때기청봉에 대하여 묘사하였다.


나의 설악 상상봉에 가보지 못했네

이 山 밑에 나서 마흔을 넘기고도

한 해에 수천 명이 올라가는 그곳을

나는 여태 가보지 못했네

그곳에서 세상이 훨씬 잘 보인 다지만

一生을 걸어도 오르지 못할 山 하나는 있었야겠기에

마음속 깊은 곳 대청봉 묻어 놓고

나는 날마다 귀때기청봉쯤만 바라보네

멀리 안산이 보인다. 저 능선을 지나가면 십이선녀탕이 나오고 남교리가 나온다. 우리는 저곳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더위가 엄습해 오고 있다.

털 진달래가 만개하고 있다. 이곳이 털진달래 자생지이다. 털진달래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정상 부근에 분포하며 꽃이 피는 시기는 5-6월이다. 귀때기청봉 오른쪽 햇빛이 많은 남사면에 작은 나무들이 바람을 이기면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제 대승령까지 봉우리를 넘고 다시 넘고 해서 도착하면 된다. 하지만, 더위에 지치고 귀때기청봉에 도착하면서 너덜 바위지대를 지나면서 지친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허기진 배를 채워도 그뿐이다. 식수는 바닥이 나고 언제 대승령까지 도착하는지만 궁금할 뿐이다. 대승령에 도착하면 남교리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장수대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자고 하면서 걷는다. 대승령이 이정표가 있는 언덕을 오르면서 거의 기진맥진이다.

대승령은 백담사(百潭寺) 절과 영시암(永矢庵) 터가 있는 수렴동(水簾洞)으로 가는 고개이다. 지금은 보호구역으로 정리되어 있어 내려갈 수는 없다.


식수는 부족한데 누군가가 생수를 들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물이 근처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려가도 물이 없다. 계속 내려간다. 폭포로 들어가는 개울에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발을 담그고 있는 곳에서 개울물을 먹을 수도 없다. 대승폭포를 그냥 쳐다보고 내려간다.


뒤에 따라오는 산객들도 마찬가지인 것은 산을 내려와서 알았다. 오늘 산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위가 힘들게 한 것 같다. 대승령에서 물이 있는 대승폭포로 방향을 잡고 내려간다. 예전에 십이선녀탕을 가기 위하여 장수대에서 대승령을 오를 때 약수터가 있었던 기억이 있어 가보았지만 가뭄에 물이 거의 없다. 대승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옛적에 대승(大乘)이라는 총각이 동아줄에 의지하여 폭포 아래에서 석용을 따고 있었다. 그런데 '대승아, 대승아'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위로 올라가 보니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지네가 동아줄을 쓸어 곧 끊어지게 됨을 발견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이제 내려간다. 대승폭포에도 물이 없어 폭포가 아니다. 폭포 모양만 할 고 있을 뿐이다.

대승폭포를 내려오는데 물을 주는 사람이 있다. 우리를 착각한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감사하게 받아먹었다. 식수가 모자라 이제는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는데 식수를 주니 감사할 뿐이다. 그분들이 들고 있는 생수는 잠시 후에 내려올 그분들의 동료들을 위한 물이었지만 우리들이 갈증이 심한 것을 보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수대를 지나면서 폭포에서 계곡물이 있어 친구가 그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물이 시원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