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대청을 거쳐 봉정암 오세암을 지나다 설악 6편

by 김기만

설악을 가면서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 공룡능선을 타면서 아래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용아장성 아래에 길이 있는데 이 길이 궁금하였다. 기본적으로 봉정암에서 오세암까지 이어진 길이다. 공룡능선을 종주하고 오세암에 도착하였을 때 이정표에 봉정암이라는 이정표도 보았고 소청에서 봉정암으로 내려온 후 오세암으로 가는 길을 보았다. 이번에 친구 셋이서 이 길을 가보기로 하였다.

우선은 오색에서 대청을 올라간 후 봉정암으로 내려간 후 봉정암에서 이것저것 여유롭게 보고 오세암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너도나도 우의와 우산을 준비하였는데 친구 1명은 구매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나 없다. 일기예보가 오보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산악회 버스를 타고 오색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대청을 여유를 갖고 올라갈 수 있다. 남들은 공룡능선을 종주할 것이며, 소공원에서 우리보다 30분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탑승하여야 하므로 우리는 여유를 갖고 대청을 오른다. 날씨는 좋다. 설악을 오면서 날씨가 이렇게 좋은 것은 처음이다. 오후에 소낙비가 새벽부터 징조를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청에 올라 중청을 보니 너무나 깨끗하다.

여유를 갖고 산행을 하면서 대청봉 남쪽도 본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대청을 올라 즐기기보다는 이를 스치고 다음을 향해 바쁘게 갔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대청봉 아래 저 구름 너머에 동해가 있는 것이다. 대청에서 동해가 보이는데 지금까지 구름 속에 대청을 올라오고 아침 안개로 인하여 동해를 보지 못하였다. 오늘은 멀리 동해가 보인다.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은 볼 수 없지만 동해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격을 한다.

공룡능선을 본다. 구름 속에 있는 저 암릉은 언제 보아도 호기롭다. 소청에서는 용아장성을 내려본다. 하지만, 인증샷을 남기다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이 돌에 떨어져 액정이 박살이 났다. 이제 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한계가 왔다. 친구가 찍은 사진으로 오늘 산행기를 남겨야 한다. 휴대폰 액정이 떨어지더라도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흙에 떨어져야 한다. 돌에 떨어지면 어쩔 수가 없다.

용아장성이 우리들 눈앞에 있고 멀리 공룡능선이 성벽을 이루고 있다. 소나기구름은 아직 없다. 단지 높은 구름이 산에 걸려 있을 뿐이다.

소청에서 대청을 바라보니 그 모습도 더욱 아름답다.

봉정암을 내려오면서 봉정암을 담으니 저 암릉 아래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는 봉정암이 신비롭다.

이제 봉정암에 도착하였다. 봉정암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친구들은 봉정암의 대웅전도 갔다 오면서 삼층석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봉정암은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는 사찰이다.

① 영축산 통도사, ②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③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④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⑤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寺)가 있다.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시대에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것이며, 정암사의 보궁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나도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 정암사만 제외하고 다 가 보았다.

탑에 대한 설명을 보면 석가 사리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석가모니 사리를 모셔와 이곳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지고 통일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를 비롯한 승려들이 암자를 새로이 보수한 후 이탑을 보존하였다고 하나 현재 이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고 설명되어 있다. 아울러,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일반적인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탑을 받치고 있는 바위 윗면에는 연꽃을 새겨 놓았다.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어 고려석탑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제 오세암으로 간다.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내려간다. 가파르게 내려가는데 불자들이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오고 있다. 여인네들은 잘 올라오는데 아저씨가 제일 늦다.

"우리가 아저씨 꼴찌예요"하니 아저씨 왈 "자네들이 내 나이 가 되면 힘들어" 하신다.

여성들의 불심이 더 높은 것인지 봉정암을 올라가는 여인네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용아장성이 우리 옆으로 같이 간다.

가야동계곡까지 내려갔다가 나한봉 5부 능선까지 올라가야 한다. 가야동계곡까지 1시간 오세암까지 1시간이다. 능선을 지나면서 아름드리나무도 보고 가파른 언덕도 올라간다.


이제 오세암에 도착하였다. 오세암에서 백담사까지 가면 된다. 구름은 짙어지고 있는데 비는 아직 오직 않는다. 비가 오지 않으니 느긋하다. 나는 항상 서두르고 친구 중 1명은 느긋하다. 결과는 백담사 근처에서 소낙비를 맞았다.

오세암은 만화영화에도 나오고 전설도 있다.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 편)에 따르면 "한 중이 부모 잃은 어린 조카를 암자로 데려와 키운다.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중이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아이만 암자에 남겨둔 채 마을로 내려간다. 중이 양식을 구해 암자로 가려고 했으나 폭설 때문에 갈 수가 없어서 눈이 녹기만을 기다렸다. 이른 봄, 눈이 녹기 시작하자 중은 서둘러 암자로 올라갔다.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중이 아이에게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묻자 어머니(관음보살)가 매일 양식을 주었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바람소리와 함께 나타난 백의 선녀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경전을 주고 청조(靑鳥)가 되어 날아갔다. 아이가 오 세에 득도하였다고 하여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세암을 떠나 이제는 백담사로 가야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백담사도 둘러보고 용대리로 나갈 것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는 영시암을 지나서 백담계곡에 들어가서 씻고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갑자기 어두워진다. 이제 빨리 가야 한다. 하지만, 백담사를 2km 정도 남기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폭우가 된다. 나는 우의를 입고 친구 1명은 우산을 쓴다. 1명은 아무것도 없이 방수가 되는 자켓을 입고 걷는다. 하지만, 폭우에 우의를 입은 나와 방수자켓은 입은 친구는 상의는 견딜 수 있는데 하의와 신발은 방어가 되지 않는다. 신발 속이 이제는 논에 들어간 것처럼 물이 그득하다. 친구는 방수자켓 입은 친구를 나 두고 여승이 우산을 쓰지 않고 가니 여승에게 신사도 정신을 발휘한다. 우리는 원망을 한다.


이제 백담사 구경은 저 멀리 가 버렸다. 백담사를 구경하는 것보다 비를 맞은 우리는 비 맞은 생쥐가 되었으니 이를 해소하는 것이 더욱 급하게 되었다. 용대리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용대리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다. 신발은 다 젖었고 양말도 젖었다. 시간도 남았다. 가게 앞 평상에서 우리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말리고 있는데 우리를 달갑지 않게 본다. 우리가 그 가게에서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박하다.


편의점에서 양말을 사고 신문을 얻어 젖은 신발의 물을 흡수해본다. 결론적으로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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