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선운산 둘레길을 예전부터 가보자고 했는데 너무 멀어 주저했는데 서울 근교 산행은 어딘지 요즈음은 그렇고 하여 전북의 고창으로 향했다.
충청에서 1박 하고 아침에 출발하니 9시다. 서천을 지나 금강을 넘으면서 풍경은 완전히 바뀐다. 산이 주위에 있었으나 산은 보이지 않고 드넓은 들만 보일 뿐이다. 조그마한 야산과 야산 주변은 촌락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김제를 지나면 김제평야의 지평선을 보일뿐이다. 전북을 종단하여 끝에 가야 고창이고 고창의 선운산을가는 것이다. 산골짜기에 살았던 나는 넓은 들만 보면 벅차 오른다. 우리 아버지는 좁은 그 농토에서 논두렁을 수리하고 또 만들고 했는데 저런 곳에서는 논두렁이 그렇게 품이 들지 않는데 내가 태어난 고장은 논두렁이 거대하여 힘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멀리 산이 보인다. 산이라 해야 최대가 350m 정도니 강원도 등의 산에 비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해안가의 산은 높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고창의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선운산을 넘으면 바로 서해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나와 선운산 선운사 방향을 잡고 이동을 하는데 장어 간판이 많다.
나나 아내는 장어를 잘 먹지 않지만 이곳이 풍천장어의 본 고장이라고 한다. 일찍부터 작설차(雀舌茶)·복분자술(覆盆子酒)과 함께 장어가 선운산의 3대 특산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장어는 강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곳에서 잡히며, 산란기가 되면 서해바다를 거쳐 강의 깊숙한 곳에까지 가서 새끼를 낳는데, 이 새끼 장어들은 회귀성이 있어서 이곳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장어를 안주 삼아 복분자술을 먹어볼 것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멀다. 알코올은 나에게 독약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혹 선운사를 가시는 분들은 1 박 하면서 이 고장의 풍천장어에 복분자술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선운사를 알고 선운산을 걸어야 한다. 선운사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산만 보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찾은 선운산 도립공원 주차장은 무료로 개방되고 있어 주차를 시킨다. 이른 시간이라 자동차가 드물다. 산을 가야 하는데 어디도 안내가 없다. 주차장에 이를 표시하여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차장 건너편에 조형물이 다양하고 아름다움이 있어 담아 본다.
이제 선운산을 돌아 선운사로 내려오는 방향으로 산행길을 잡아 본다. 나는 누군가가 선운산을 먼저 걸은 트랙을 이용하여 산행길을 잡고 길을 잡는다. 어떤 분이 나에게 묻는다. 나도 처음이라고 하니 신뢰를 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도 길은 모르지만 전자지도를 이용하여 길을 잃지는 않는데 말이다.
호텔을 왼쪽에 두고 걷다 보니 첫 이정표가 보인다. 친구들이랑 함께였다면 경수봉으로 가겠지만 마이재 방향으로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마이재 방향으로 길을 들어서고 평탄하다. 하지만 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구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준비운동 구간이 끝나는 지점쯤에서 능선까지 즐기차게 지그재그 오르막길이다. 해발 150m 지점에서 300m까지 쉼 없이 오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수봉이 제일 높지만 오늘은 회피다. 옆에서 이를 담아 본다.
능선에 도착하고 고갯마루인가 하였는데 하지만 고갯마루도 아니고 양쪽 봉우리의 중간지점이다. 봉우리를 넘어서는데 길이 너무 좋다. 이 길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정표가 보인다. 마이재가 500m 남았다고 한다. 우리가 올라온 길은 마이재를 직접 올라온 것이 아닌 경수봉과 마이재의 중간지점이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구간이 있어서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마이재에서 수리봉까지 700m 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에 등산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이산의 봉 이름도 재미있고 바위 이름도 재미있다. 수리봉을 지나서 첫 번째 만남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보니 견치산과 수리봉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견치산이 지도 등에 보면 견치산하고 개이빨산이다
개이빨산 순우리말로 산 이름이 되어 있다. 산세가 멀리서 보니 그런데 정상 부근에 이빨과 같은 바위가 유혹한다. 가고 싶은데 거리가 2km다.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무리한 산행은 절제되어야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개이빨산은 바위의 모양이 개 이빨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지는 이름이라고 한다. 고창코리아에 게재된 기사 중 "수리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라볼 때 산의 우측으로 뻗은 능선의 바위들의 옆모습이 개가 이빨을 벌리고 있을 때 옆모습 형국을 하고 있다. 국사봉은 나라의 스승, 만물의 스승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하늘에 귀하고 천한 것을 몰어보는 기도처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일보에 보면 "고창 개이빨산(345.1m)은 한자로 하면 가평 견치봉犬齒峰과 이름이 같지만 한글 그대로 ‘개이빨산’이라고 더 자주 부른다. 실제로 국토지리정보원이나 인터넷 포털 지도 등에서도 가평의 견치봉은 ‘견치봉’으로, 고창은 ‘개이빨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 언급되어 있다.
카메라의 한계로 이것을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담아 본다.
포갠바위를 거쳐 참당암이 있는 안부로 내려갔다가 소리재로 올라가서 낙조대로 가야 한다.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곳곳을 볼 수 있지만 선운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산 위에서 조망할 때 보면 선운사는 선운산 밑에 자리를 잘 잡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 포토존에서는 조심하여야 한다. 포토존에서 사진 찍으려다 실족사 한 예가 있다고 한다.
포갠바위를 거쳐서 참당암으로 가야 하는데 창담암으로 가기 직전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맞은편 산세를 보니 어떻게 저곳을 오를까 그래도 저 능선을 돌아 선운사로 갈 것이다. 참당암은 내려가는 길은 편안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참당암에서 사람들이 개이빨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소리재를 거쳐 낙조대를 가야 한다. 아쉽지만 방향을 잡고 소라재를 가는 길이 너무 좋다. 산세가 그렇게 높지 않으니 고개도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올라간다. 소리재를 지나서 용문굴로 가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이곳은 이제 서해랑길이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동해안을 따라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0구간 50개 코스로 구성되어있는 770km의 장거리 트래킹 코스다. 이와 유사하게 서해의 해안을 끼고 걷는 길을 만들고 있다. 이 길은 옛 소금길이라고 한다.
용문굴 인근에서 보여주는 저 바위가 무엇일까 그것이 용문굴일까 해서 찾아보니 용문굴은 아니고 도솔암에 내원궁의 뒤쪽이었다.
용문굴은 능선 등산로에서 도솔암 쪽으로 100m 정도 내려가야 한다. 용문굴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검단선사가 절을 세우려 선운산을 찾았는데 절터로 점찍은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살았다. 검단선사가 그 용을 쫓아내자 용이 급히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혀 굴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무기가 주민들을 괴롭혀 마애불 옆에 12 나한전을 설치하니 이무기가 바위를 뚫고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것이다. 용문굴은 응회암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굴이다. 응회암내 조밀하게 생성된 절리를 따라 진행된 침식으로 만들어진 굴인데, 이곳에 가면 대장금 촬영지라는 안내가 있다. 장금 어머니가 최후에 숨을 거두었고 장금이가 돌무덤을 만든 곳의 촬영지라고 한다.
낙조대에 도착하여 이제 더 갈 것인지 하산할 것인지를 고민하다. 친구 같으면 간다. 하지만 아내다 더 이상 가는 것이 무리일 수 있고 2시간 이상을 더 걸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베멘바위도 보고 싶고 사자바위와 쥐바위도 보고 싶지만 다음을 위하여 남겨둔다.
이곳 낙조대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면 장관이라고 한다. 오늘은 그럴 수가 없다. 저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서해안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낙조대를 지나서 능선길을 가면 대둔산에나 볼 수 있는 가파란 사다리를 타야 할 것 같다. 선운산에는 이러한 봉이 곳곳에 있다. 천마봉도 그렇고, 소리재를 우회하면서 본 봉도 저렇고 천마봉에서 바라다본 능선도 저렁다. 산이 칼로 자른 듯이 가파르게 잘려져 있다. 아내는 처음 본 천마봉을 보고서 산이 네모났다고 한다. 네모난 봉이다.
천마봉(天馬峰)은 말이 하늘로 뛰어오르는 듯 한 모습을 한 웅장한 바위다. 수십 미터의 수직 절벽이 보기만 해도 아찔해 보인다. 그래 그런지 장군봉이라고도 부른다. 바위도 멋지지만 주변 풍광도 빼어나다.
이러한 풍광을 만들어 내는 것은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화산암체의 일부가 차별침식을 받아 가파른 수직 암석 절벽을 형성하여서 그렇다고 국가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곳은 주로 유문암으로 구성되어 용암이 흐르면서 고결된 유상구조이어서 그러며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낙조대, 천마봉 등은 화산암체의 일부인 유문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의 화산력 응회암보다 단단하고 치밀하여 풍화에 강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큰 절리를 이루어 가파른 수직 암석 절벽의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제 하산을 위하여 천마봉으로 움직이다 왼쪽으로 본다. 이곳이 만월대라고 한다. 그곳에 있는 암자에서 오늘 저승에 가신분을 위하여 제를 지내고 있다. 산에 있는 저 암자가 선경 속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 그림을 담는다. 저곳이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이라고 한다. 도솔암 마애석불 옆으로 143개 계단을 올라가면 내원궁(內院宮)이 있다. 미륵이 산다는 내원궁은 천인암과 깊은 계곡 사이에 조용히 숨어있다. 내원궁에 대한 설명을 보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 지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원궁은 조선 중 중 때 다시 짓고 순조까지 수차례 고친 건물이라고 한다. 거대한 바위 위 위험한 곳에 세웠으며, 기단이 없이 둥근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을 두었으며, 암자의 이름이 도솔이 도솔천(미륵이 산다는 이상 세계)을 의미하여 미륵보살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 내원궁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꼭 하나는 들어준다고 하여 대한민국에서 기도의 효험이 가장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천마봉을 내려가기 위하여 테크 계단도 있고 만월대도 있는 마지막 뷰에서 이를 보고 나면 철계단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를 내려가면 도솔암이다. 나는 사찰의 암자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식하고 확인할 뿐이다.
도솔천 도솔암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설명에 따르면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기에 대하여 다양하게 나온다고 한다. 선운사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검단선사가 이를 조정하였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높이가 15.7m 무릎너비는 약 8.5m이며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니다. 마애불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있는데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 있는 것도 있다. 이것을 보고 마애불의 장엄함을 위해 설치한 닫집이 있었던 흔적이라고 한다. 유적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데 그 나무들의 탄소연대를 측정하면 쉽게 조정시기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가슴 아래 새겨진 복장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도선비기와 같은 서책이 있다는 이야기다. 1894년 고창군 농민들이 동학 무장 접주 손화중을 따라 마애불 배꼽 속에 든 비결을 꺼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요즈음 같으면 저 바위에 저렇게 불상을 새기면 환경단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이곳에서 천도재를 지낸 것인지 아니면 절에서 나누어주는 절 음식인 떡을 맛있게 먹는다. 나는 절 음식, 교회 음식 대부분 잘 먹지 않는다. 종교적인 색채가 띠면 그것이 나에게 그것이 부담감으로 작동하는 것 같고 특히 산을 타면서 먹는 고구마 등은 쥐약이다. 그것을 먹고 나면 하루 종일 체해서 고생만 한다. 그래서 산을 탈 때에는 떡도 쪼금 먹는다. 많이 먹지는 않는다. 인절미 정도 먹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등산을 할 때 고구마보다 김밥, 인절미 정도 그리고 컵라면, 누룽지 정도다. 맛있는 떡을 먹으면서 나에게 권하지만 나는 먹지 못한다.
도솔암을 내려오면 거대한 소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천연기념물 354호로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이라고 한다.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에서 유래하여 붙은 이름이다. 옛날 신라 진흥황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진흥굴 앞에 있다 하여 진흥송이라고도 불린다. 장사송의 나이는 약 600살, 높이는 약 23m이며 둘에 3m에 동서 남북 17m로 가지가 퍼져 있으며 지상 40cm쯤에서 가지가 난 흔적이 있어 반송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장사송의 옆에는 장사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비석이 있다. 장사녀는 고려사 등에 전해지는 백제가요 선운 산곡에 나오는 인물이며 선운 산곡에 장사녀는 선운산에 올라 부역에 참가한 남편을 기다리며 부른 노래라고 한다.
진흥굴에서 밖을 본모습이다.
진흥굴은 신라 진흥왕이 왕을 물러나고 수도를 하였다는 동굴이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전설이니 어쩔 수 없다. 삼국시대에 신라의 왕이 백제로 와서 수도를 하였다니 그것도 삼국의 대결이 절정시기에 말이다. 진흥왕 때 백제는 부여로 옮겼고 진흥왕은 영토확장을 하여 순수비가 곳곳에 있는데 백제로 와서 수도를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적대국의 대통령이 대통령을 그만두고 수도를 하려 적국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하천을 따라 선운사로 내려가면 된다. 선운사로 가는 길은 너무나 좋다. 선운사에서 하천을 따라 도솔암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오고 차를 따고 온다. 그래서 길을 분리하여 놓았다. 보행로와 차로 될 수 있는 한 보행로를 이용하라고 안내를 한다. 보행로 자체는 산책길이며 누구나 좋아할 길이다. 선운사를 내려가면서 도솔천을 바라보니 검다. 왜 그런지 궁금하였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해 놓았다. "도솔천 하상을 흐르는 물과 주변의 바닥, 자갈 등이 검게 보이는 것은 자생하고 잇는 도토리와 상수리 등 참나무류와 떡갈나무 등의 열매와 낙엽류 등에 포함되어 있는 타닌 성분이 바닥에 침착되어 미관상 수질이 오염된 것으로 보이는 것뿐, 도솔계곡을 흐르는 물은 절대로 오염된 것이 아닙니다"
도솔천이 검게 보인다.
선운사 주변에는 동백숲이 있다. 절을 감싸고 있다. 이 동백숲은 천연기념물이다. 남도의 사찰을 가면 동백숲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그 이유는 남도는 중부지역보다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절 등을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운사도 선운산 밑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백꽃은 봄에 핀다. 혹! 동백꽃을 보려면 봄에 선운산을 가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
이제 선운사다 선운산에서 선운사를 빼놓으면 어딘가 어색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선운사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선운사에 대하여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 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각 설에 대하여 다양한 의미가 있으나 나는 두 번째 설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당시는 삼국시대고 신라의 왕이 이곳까지 왔을까 의문이다
선운사의 가람배치는 특이하다. 보통 가람배치를 보면 산세를 따라 층층이지만 이곳은 설악에 있는 백담사와 유사하게 평지에 배치되어 있고 하여 넓게 배치되어 있다. 일본의 사찰을 가 보았을 때 이러한 배치를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일본은 백제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력 아래 사찰이 건립되어졌다. 선운사도 평지에 사찰이 건립되어졌으며 백제시대의 가람의 배치 형태를 같고 있어 백제 위덕왕 때 건설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송착식의 다음의 선운사를 들어보면 선운사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운사 _ 송창식 노래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당신은 그만...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당신은 그만...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선운사 입구를 나오는 입구에서 사찰관람료를 받고 있다. 우리는 산을 돌아 나와서 관람료를 내지 않은 것이다. 둘이니 6,000원을 내지 않았다. 이 돈은 특산물을 사기로 하였다. 선운산의 특산물인 복근자를 샀다. 선운산 도립공원입구에 선운산 생태숲이 정리되어 있다. 생태숲 입구에 선운산곡비가 있다.
작자·연대 미상. 장사(長沙)에 사는 한 여인이 남편이 싸움터에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선운산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올 방향을 바라보면서 못내 그리운 심정을 읊은 것이라 한다. 가사는 전하지 않고 제목과 유래만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등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