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제천의 감악산에 홀리다.

by 김기만


감악산은 전국에 3곳에 있다. 파주, 원주, 거창이다. 살면서 감악산 하면 파주의 감악산 밖에 몰랐다.


한글로는 이름이 같지만 한자 이름은 다르다. 거창과 원주의 감악산은 紺岳山, 파주의 감악산은 紺嶽山이다. 한글은 같으나 한자가 다른 경우는 다반사이다. 한국인의 역사와 함께한 한자이고 한글이다. 우리가 문자가 없어서 차용했고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다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시어 우리 문자를 사용하였고 우리 문자와 한자를 병행하여 사용한다. 우리 후대에는 한자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중국에서 간자체가 강제로 사용되면서 한자는 대만 등에서만 인식되는 현상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전국에 유명한 산인데 나는 몰랐다. 원주와 제천에 걸쳐 있는 감악산을 알게 된 것은 산행기에 댓글을 남기신 분 때문이다. 그분이 원주, 제천의 감악산을 한번 가보라고 하였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쾌감은 우리들에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본다. 학창 시절 수학 문제를 풀면서 쾌감을 느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안 풀리던 문제를 풀면 그 성취감이 있다.


감악산은 원주와 제천에 걸쳐있다. 원주의 감악산이라고 명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 등산로가 원주 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파주의 감악산과 동일하다. 파주의 감악산도 파주 연천 양주에 걸쳐 있지만 주 등산로가 파주에 있다. 그래서 파주 감악산이라고 한다.


원주에는 치악산, 소금산 출렁다리가 유명세를 타고 있어 여기까지 홍보를 할 가치가 없는지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광역지자체가 충북과 강원으로 연결되어 있어 도립공원으로 지정하기도 애맹모호한 곳이다. 차라리 이 일대를 치악산 국립공윈에 포함시키면 관리도 잘 될 것 같다. 월악산 국립공원에 금수산을 포함시켜 관리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인접 시도 간 인접 시 군간 애매모호할 때는 상위기관 또는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감악산 일대는 남진하는 고구려와 북진하는 신라가 각축전을 벌였던 지역으로 감악산이 천연 요새를 활용되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옛 성터가 남아 있는 만큼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적 격리를 위하여 3명이 동시에 같이 모이는 것보다. 1명은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하고, 1명은 철도를 이용하여 접근하며, 1명은 승용차로 이용하여 접근을 한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산행을 위하여 모여야 하기 때문에 승용차를 가진 친구가 터미널과 기차역에서 픽업하여 산행 입구로 가기로 하였다. 30분 정도만 승용차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모이는 것이다.


감악산 주차장에 들어가기 전에 바라본 감악산의 3봉은 환상적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아무도 이런 곳에 이러한 비경이 숨어 있으리라 상상을 못 했다. 치악산은 큰 산이지만 초입부터 시작하는 바위능선으로 힘들어한다. 이산은 처음 바위는 안 보이고 산이 가파르게 보일 뿐이다.

감악산은 계곡코스와 능선 코스가 있다. 거리는 계곡코스가 조금 더 길지만 전망이 없다. 우리는 능선길을 가기로 하였다. 시간도 많다. 우리에게 제한시간도 없고 약속된 대중교통도 없고 산악회 버스도 없다. 늦으면 늦는 데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능선으로 등산하면서 많은 것으로 보기로 하였다.


차를 주차시키고 조금 있다가 이곳은 개인부지라고 하면서 안내판을 확인하였고 주차요금을 3,000원 징수한다고 한다. 조금 있으니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나와서 요금을 징수한다.


등산로 입구부터 가파르다. 밧줄이 우리를 기다린다. 영하 7도라는 예보가 있어서 두꺼운 옷을 입었고 장갑도 끼었으며 머리에 방한모도 썼다. 그래도 춥다고 느낀다. 겨울 초입에 제일 춥다. 몸은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겨울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원주, 제천이 오늘 제일 춥다고 하는 일기 예보도 있었다. 아직 눈이 없었기에 오르는데 무리는 없지만 오르막이 가파르다.

이 산은 치악산과 이웃하고 있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나, 정상에는 능선 코스를 따라 감악 1봉, 2봉, 3봉, 월출봉이 이어지며 절경을 이룬다는 등산로 안내도를 머리에 새기면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서 멀리 봉우리가 보이는 것을 보면서 사진에 담으려고 하나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면서 지자체가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상을 조망할 수 있도록 무엇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한 번, 두 번 밧줄을 의지하면서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제 1봉(탑바위 봉)이 보인다. 멀리서 보니 뾰족하다. 소나무 숲이 멋있다.

이것을 오르면서 힘들겠지 하면서 오르면서 1봉(탑바위봉)을 오르기 전 우측의 봉에 도착하여 조망터에 조망을 하면서 바위봉을 조망하면서 쳐다본다. 건너편 능선이 멋있다. 1봉(탑바위봉)을 오르기 위하여는 밧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가파르다. 친구가 밧줄을 잡고 오르는 뒷모습을 담아본다. 스트레칭을 완벽하게 한다.


스틱을 가져왔지만 배낭 속에 들어간 지 한참 되었다. 장갑을 끼고 밧줄을 잡고 올라간다. 1봉(탑바위 봉)이 정상이 아님에도 정상에 다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 등산로를 오를 때에는 1명씩 올라야 한다. 줄이 아무리 튼튼하다고 하여도 한계가 있고 나무에 줄을 묶어 놓아 나무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에서. 정상석만 세울 것이 아니라 이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봉(탑바위봉)을 올라서 멀리 조망을 하면서 낭떠러지를 보고 저능선을 보려고 왔는가 하는 쾌감을 가진다. 정상을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대편을 보는 것이 더 상쾌한 기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지도를 보면서 이봉이 1봉인 탑바위 봉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현 위치를 확인하고 탑바위를 찾는다. 자연석이 탑을 이루고 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1봉, 2봉, 3봉이라는 표지는 없다.


멀리 안흥이 보이고 용두산이 보인다고 한다. 친구가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 우리는 수긍을 한다. 제천의 진산 용두산이 우뚝 솟아 있다고 한다. 저 멀리 있는 저 봉은 무엇이고 저 봉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한다. 1봉(탑바위봉)에 올라 멀리 보면서 치악산 능선을 보면서 이것저것 확인한다

암릉이 있고 이를 스치면서 지나간다. 이제 감악산 정상이 보이는 2봉에 도착한다. 앞에 간 산객들의 소리가 들린다. 바로 앞에 절벽과 유사한 능선에 산객들이 올라가면서 한 명 한 명 주의를 주면서 올라가고 있다. 조용한 산속이 사람들 소리로 요란한다. 저렇게 떠들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좀 산속에 왔고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만큼 조용하게 산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힘든 산행에서 힘든 만큼 힘을 보충해야 한다. 예너지를 보충하면서 이제 감악산 주능선을 바라본다 가장 오른쪽이 3봉이라고 한다.

3봉을 오르면 월출봉과 정상으로 쉽게 갈 수 있는 능선길이다. 3봉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다. 조금 전 능선길을 오르면서 용기를 북돋우던 소리가 여기에서 난 것이다. 절벽이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것이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위험할 수밖에 없어 이 등산로는 폐쇄될 것 같다. 오르고 내리면서 서로의 힘든 모습을 카메라 담는다. 줄이 1년이나 2년에 한 번씩은 교체되어야 할 것 같은데 세월의 무게가 있는 부분도 있다. 봉우리를 올라서서 보니 이곳이 정상이 아니고 살짝 몇 발짝을 내려서 우회하여 올라야 봉정상이다.

봉을 오르는 길에 밧줄을 잡고 오르는데 얼굴 바위가 있어서 멈추고 담아본다. 탑바위에 올라서 내려오면서 보니 바위가 장승 형태를 띠고 있어서 이것도 담았다.

이제 3봉 정상이다. 멀리 봉정상이 보임에도 이곳에 정상석을 설치한 것은 원주시다. 원주시 입장에서 보면 이곳이 정상인 것이다. 감악산 정상은 945m이지만 930m에 정상석을 세워두었다.

이는 지자체별 영역싸움이고 상생은 멀리 가버린 것이다. 정상적인 정상석을 지자체가 협의하여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바로 앞에 높은 봉을 두고 3봉에 정상석을 설치하였으니 말이 안 된다.


이곳에서 감악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인증샷을 남기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정상석은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면 정상석과 사람만 나오지만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면 정상과 함께 나온다. 이것이 친구의 지론이다. 모두가 이것에 동참한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뫼 산자도 만들어 본다.

이제 삼거리를 지나서 정상으로 가면 된다. 이 삼거리는 계곡길로 가는 길과 능선길이 만난다. 계곡길로 올라온 산객이 우리에게 온다. 정상이 여기야 고 친구가 이분에게 잔 설명을 한다. 이분이 우리가 정상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의 인증샷을 남겨주었다.

정상 직전에 월출봉이 있다.

정상 바로 직전에 있는 하늘문 통천문이 있다. 너도나도 하늘문을 지나 본다. 서로 모델이 되고 서로 카메라 감독이 된다. 나는 카메라 감독으로서 실격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사용하여야 한다.

정상에 도착하니 또 바위를 올라야 한다. 밧줄을 잡고 오른다. 바로 옆의 고사목 옆의 봉이 유혹하지만 살짝 내려가는 틈이 무서워 도전을 포기한다.

이곳에 제천시에 설치한 정상석이 있다.

이제 하산이다. 삼거리로 가지 않고 백련사를 거쳐 계곡 등산로로 이동하기로 한다. 하산을 시작하는데 부부 산객이 올라온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아저씨가 포터가 되어있다.

아내가 생각이 난다. 능선 쪽 등산로는 힘들지만 계곡 등산로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련사가 1.4km라는 이정표가 있어 멀다고 느꼈는데 아니다. 400m에 불과하다. 누가 이정표를 잘못 세워 놓았다. 백련사는 신라시대에 이 자리에 세워졌으나 사찰이 계속 불타고 재건 과정을 거쳐 현재는 1957년 중창하였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장소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절 앞에서 뒤를 보면 감악산이 안고 있다. 산 위의 일출봉과 월출봉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이곳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고 한다. 이불상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제천의 백련사에서 봉안하고 있는 불상이다. 조선 영조 2년(1736)에 조성된 불상으로써 단양군 조계사의 삼존불 중 주불이었으나 지금의 백련사로 오게 되었다. 불상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75㎝이다. 복장유물 중 목판본의 "대불수능엄신주(大佛首楞嚴神呪)" 다라니경이 나왔다. 목판 제작 상태와 간기로 보아 불상이 조성된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조각 수업과 표현이 17세기 후반~18세기 초기의 전형적인 불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어떻게 있는지 궁금하여서 친구들은 법당에 들어가 본다. 하지만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찾아보니 지금은 금으로 덮여 있다고 한다. 그러니 목조불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극락전 앞에서 층층이 볼 수 있는 산세를 보았다. 부석사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친구는 이야기한다

이제 계곡을 따라 하산하기만 하면 된다. 하산을 시작하는데 길이 너무 좋다. 이렇게 하산길이 좋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 더 가니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임도 아닌 하산길이 나타났다. 우리 어릴 적 산판 도로가 생각이 난다. 산촌에 살면서 벌목을 한 목재를 가득 싣고 내려오는 그 자동차가 생각이 난다. 어른들은 그 차를 제무시라고 하였다. 자동차 앞에 붙어 있는 gmc마크를 그렇게 해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산촌에서 자란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넓은 들에서 자란 친구는 이해를 하지 못하지만 설명을 한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현재 문경에서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 사용되던 군용 트럭이 민간으로 넘어와 그 당시 광산괴 산판 벌목장에서 광업소까지 수송차량으로 사용되었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폐차되지 않은 체 산업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산길을 내려오니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 사람들은 백련사로 이 계곡을 따라 올라갔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원주 제천의 감악산 4시간 남짓 산행에 파주의 감악산 산행에 버금가는 감동을 받았다. 산불감시기간이 종료된 후 또 다른 등산로를 이용해 올라보고픈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