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 날 피서는 절정에 이르고 그냥 설악산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산악회 버스를 예약하였다. 산악회 총무가 연락하기를 이번 주는 피서가 절정인 만큼 동해안 쪽으로 가는 버스는 30분 이상 일찍 출발하여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버스가 평상시보다 30분일 일찍 출발하는 시간에 양재역으로 오라고 한다.
평상시는 7시에 양재역에 출발하는데 오늘은 6시 30분에 양재역을 출발한다. 산악회 운영 관광버스는 산객을 가득 태우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수지타산이 맞을 정도로 승차시키고 출발을 한다. 출발하는 순간은 문제가 없었는데 춘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정체다 언제쯤 풀릴 것인지 모르겠다.
애라 모르겠다. 어차피 더위를 피해 산으로 가는데 관광버스의 시원한 냉방을 피서로 삼아 버스가 우리를 데려다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평상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5시간쯤 걸려서 장수대에 내려준다. 산행을 책임지고 있는 산행대장은 어치피 늦은 것 그 시간에 맞추어서 산을 타고 오리고 안내를 한다. 장수대에서 내린 사람은 장수대에서 출발하여 대승령을 거쳐 십이선녀탕을 지나 남교리까지 가면 된다.
장수대란 명칭은 "내설악 지구의 한계리에서 옥녀탕과 하늘벽을 지나 대승령(大勝嶺) 등산로의 기점 부근에 있다. 장수대라는 명칭은 1959년 인제군에 주둔한 국군 제3군단 군단장이 6·25 전쟁 중 설악산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이 산장을 세운 뒤 명명한 것"이라고 두산백과사전에 언급되어 있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금강산에 구룡폭포가 있고, 개성에 박연폭포가 있다면, 설악산에는 대승폭포가 있습니다. 한국의 3대 폭포로 손꼽히는 대승폭포와 함께하는 이야기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코스이다. 구불구불 한계령 자락에 위치한 장수대에서 편도로 약 40분 올라가면 높이 80m를 자랑하는 대승폭포 경관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자연의 위엄과 더불어 어머니의 부름으로 화를 면하게 된 대승이라는 총각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는 코스이다"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하지만, 대승폭포는 여름이 아니고는 거의 물을 볼 수 없다. 사실 여름에 갔는데도 물은 쫄쫄이 었다.
장수대에 도착하여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대승폭포까지 가파른 데크로 된 계단의 연속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 한국의 마터호른이라고 하는 가리능선(가리봉, 주걱봉, 삼형제봉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폭포가 있는 지역을 지날 때마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가파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형적인 특성이 있는 만큼 이곳에 데크를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데크가 없으면 우회를 하여 위험을 회피한다. 폭포를 근접해서 보고 싶은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천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유명한 폭포인 빅토리아 , 나이아가라, 이구아수 폭포 등에도 전망대가 있듯이 대승령 폭포에도 전망대가 있다.
대승령 폭포는 특성상 갈수기가 대부분일 것 같다. 시원한 폭포를 보려면 큰비가 온 후가 아니면 힘들 것 같다.
대승폭포를 지나 대승령까지 올라가는 고갯길이다. 예전에 이길로 백담사 방향으로 갔다고 하나 산림 휴식년제로 이곳은 우리가 접근하기에는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가능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대승폭포를 지나서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평탄한 구간이 지속되고 오르막 구간은 1km 정도 된다. 이 구간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다. 대승령에 올라 가쁜 숨을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앞으로 갈길을 보니 이제는 올라가는 길은 없고 하산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안산도 자연휴식년제가 적용이 되어 안산을 살짝 오르다가 십이선녀탕이 있는 십이선녀계곡으로 내려간다.
십이선녀탕 계곡은 대승령(1260m)과 안산(1430m)에서 발원하여 인제군 북면 남교리까지 이어진 약 8km 길이의 수려한 계곡이다. "지리곡 (支離谷)", "탕수골" 또는 "탕수동계곡(湯水洞溪谷)"으로 불렸다. 그러던 것이 50년대 말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옛 말에 12탕 12폭이 있다 하여 또는 밤에 12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탕이 실제 12개가 아니라 8개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탕을 헤아리는 것은 의미가 없고, 지금은 7번째 탕이라는 복숭아탕과 안산에서 처음 만나는 두문폭포가 손에 꼽힙니다. 7번째 탕이라는 말도 현재는 토사가 흘러내려 여러 탕들을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 역시 헤아림의 의미가 없다고 한다.
한여름 시원한 계곡을 옆에 끼고 더우면 물을 담글 수 있을 것 같지만 계곡으로 들어갈 수 없이 보기만 하는 십이선녀계곡을 이용하여 남교리까지 내려간다. 처음에는 그렇게 많지 않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었는데, 반대편에 이렇게 많은 물이 있었으면 대승폭포에 많은 사람이 몰려왔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곳에는 물이 많다. 처음 접한 계곡에 발도 담그지 못하고 쳐다만 볼 뿐이다. 깊은 계곡 속에 흐르는 물을 가서 만져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만난 곳이 두문폭포이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보면 밤이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는 십이선녀탕은 설악의 계곡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곳으로 꼽히며, 12개의 탕을 이루고 있다 하여 십이선녀탕으로 불리지만 8개의 폭포만이 뚜렷하고 나머지는 모습을 찾기 어렵고 폭포와 탕이 연속으로 이어진 이 십이선녀탕 중 백미는 단연코 있는 복숭아탕이라고 한다. 봉숭아탕에 들어가는 곳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가 아닌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고 본다. 저렇게 흘러내리는 폭포 속에 탕이 있다 보니 누구도 근접하기 어렵다고 본다.
계곡이 좁고 깊어 계곡 옆을 가파르게 오르내리기도 하고, 철구조물을 잡고 오르내리기도 하는 구간이 많아 등산로는 다소 험한 편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간도 있어 비가 많이 온 후나 장마철에는 산행이 어렵기도 하다.
12 선녀 계곡을 지나오면서 나 홀로 산행을 하였고 산행 중에 선녀도 없었다. 누군가는 선녀를 만났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선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이부분에 대하여 이은상은 설악행각에서 이렇게 묘사를 하였다. "여기서부터 들어가는 산골을 ‘지리실’이라 부르는데, 한문글자로는 ‘지리곡(支離谷)’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지리실(支離室)’이라고까지 쓴 데도 있습니다. 차츰 멋진 산수미를 더 하면서 오관과 육정의 맹활동을 요구하는 믈소리와 산색은 너나없이 모든 이의 얼굴위에 즐거운 웃음을 재촉합니다.
앞서 가는 심메마니가 한곳을 가리키며, ‘저것은 첫 구융소, 그 다음 것은 둘째 구융소’라 하는 말에 바라보니, 말구유((馬槽) 같이 바위 흠이 패인 것이 둘이 연(連)하여 이층의 작은 폭포를 지었습니다.
넷째 구융소를 지나서, 산주소(散珠沼)라는 한 누운 폭포를 만나니, 이야말로 위험 속에서 맛보는 달콤한 위안이 나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여기 와서는 비교적 넓고 편평한 바위가 순하게 엎드려서, 기대고 눕기를 기다리는 듯함이 위험을 지난 우리에게는 더한층 느껍습니다.
「설악행각」은 노산 이은상선생께서 1933년 9월 30일에 15명의 일행을 동반하고 서울을 출발하여 10여 일간 설악산 일대를 탐방한 기행문으로 국한문혼용 출판본과 한글전용 출판본 2가지가 있다고하며, 동아일보에 1933.10.15부터 12.20까지 37회에 걸쳐 연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