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겨지는 중앙선을 타고 추억에 잠기다.

by 김기만

중앙선은 서울 청량리역∼경주시 경주역을 잇는 철도선(386.6km)이다.
1939년 4월 청량리∼양평 구간이 개통되었고 1940년에는 양평∼원주 구간이 1942년 4월 1일 전구간이 개통되었으며 양평·원주·제천·영주·안동을 지나 영천에서 대구선과 접속하며 경주까지 이르는 간선철도로, 제천에서 충북선과 태백선이 교차하고, 영주에서 경북선과 영동선이 교차한다

현재 중앙선은 노후화된 선로를 시속 250km 속도의 고속전철이 운행할 수 있도록 고속화하고 복선전철을 건설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선형개량도 하고 있다. 청량리에서 만종까지 복선화 되어 있고 현재 원주 제천 단양 구간과 단양 영주 안동까지 복선화 의성 영천구간은 선형개량사업으로 나누어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2년 청량리 동화 구간은 개통되었으며, 2020년 12월 서원주 제천구간이 공사가 완료되어 시운전 중이며 동화에서 봉양 제천구간은 선형이 개량되어 동화, 원주에서 신림까지 이어지는 치악산 구간은 이제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되며 중앙선의 역사는 역사로 남게 되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예전 치악산을 넘으면서 힘겹게 오르든 증기기관차,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는 역사의 기억에 남고 이제 빈철로만 남게 될 것이다.


오늘은 원주에서 제천구간이 역사에 남는 것처럼 내 기억에 남는 추억 기차여행이다. 원주 제천구간에 치악산이 있어 철교와 터널이 장대하다.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달리는 기차가 그 멋을 내었는데 아쉽다. 원주시청에서 레일바이크를 만들어 추억을 소환한다고 하니 그 추억에 동참해야겠다. 나는 이 중앙선 근처에서 태어나 자랐고 폐선이 되는 이 구간의 중앙선을 타고 서울로 학교를 갔고, 군대도 갔었다. 낮보다 밤에 많이 다녔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단선철도는 그 속도가 복선철도에 비할바가 아니다. 갑자기 100km 이상을 가다가 60km로 이동을 해보면 그 속도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여행의 추억은 이 단선 철도에 있는데, 이제는 태백선과 영동선만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철도공사(korail)에서 운영하는 기차여행 o-train과 v-train을 타보는 것이 이러한 낭만을 즐기기 위한 것일 것이다. 청량리에서 원주까지 단선일 때 2시간 정도 소요되었는데 복선으로 변경된 후 1시간 내외로 소요된다.


양수리를 지나면서 한강을 담아본다. 아침 안개와 아파트 호수와 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철교는 예전에는 기차가 다녔었는데 이제는 사람과 자전거가 어울린다. 걸어서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걷는 사람 북한강을 눈에 넣는 사람 마음에 넣는 사람 다양하다. 처음에 자전거로 어떻게 넘어갈까 고민하다가 폐철도 부지를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이런 부분에 적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길이 되었다. 폐선이 되었지만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

동화역 등을 정차하는 기차는 같은 무궁화이지만 완행 같은 무궁화가 아침에 동해까지 간다. 아침 7시 5분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용문을 지나면서 모든 역을 섰다 갔다 반복이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짜증이 나겠지만 이 기차를 타시는 어르신들은 많다. 오늘도 시골 어르신들이 탑승하고 가신다. 태백선을 굽이굽이 가야 하기 때문에 느리더라도 문제가 없다.


동화역이다. 동화 속에 들어와야 하는데 아쉽다. 80년 세월이 이제는 역사에 남겨둔다. 개통은 1940년이며 이때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고 감탄했을 정도 일명 '노무현 소나무'라고 불린다. 동화역 왼쪽의 나무다.

동화역을 지나자 이제 폐철도가 될 중앙선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강릉으로 가는 경강선이 분기가 된다. 이제 추억으로 간다. 만종을 지날 때 경강선을 가로질러간다. 이제 이철 도가 폐선이 되면 경강선은 더 빠르게 다닐 수 있을 것이며 이곳을 지키던 안전요원도 안심을 할 것이다.


원주역에 도착하자마자 1분의 시간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추억에 담는다. 원주역은 학창 시절 이곳을 지날 때 그렇게 큰 역이었는데 이제는 명칭은 그대로 있지만 남원주역에 자리를 넘겨주고 퇴장한다고 한다. 원주역의 급수탑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원주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으나 이제 남원주역에 상권이 형성될 것이다.

-1940. 04 원주역 영업개시
- 1942. 04 중앙선 개통(청량리~경주)
- 1956. 12 역사신축
- 1973. 06 중앙선 전철 개통(청량리~제천)
- 1980. 05 역사신축(지하1, 지상2)

- 2020.12. 이전

반곡역이다. 혁신도시가 건설되기 전에는 한동안 역사 속으로 남겨졌으나 원주 혁신도시가 이곳에 건설되고 사람들이 애용하는 역인데 이제는 퇴장한다. 반곡역 플랫품은 간이역의 플랫품과 동일하게 지나가는 철도에 콘크리트로 만들기보다는 흙과 잔디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는 이것도 추억이 되는 것이다. 원주시에서는 혁신도시 주민들을 위한 교통편을 고민할 시기가 온 것이다. 혁신도시 주민들은 서울을 오갈 때 이웃한 서울을 오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신설되는 원주역까지 이동하여야 한다. 원주시내 교통은 이들이 이동함에 따라 월요일 아침, 금요일 오후에는 체증을 유발할 것이다.


역사(驛舍)는 근대문화유산(165호)으로 지정될 만큼 옛 이미지를 담고 있고 대합실을 철도역사(歷史 )를 담은 미술 갤러리로 탈바꿈하여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특히 주변 경관 및 소공원이 아름답고, 벚꽃 피는 봄이나 가을 단풍이 무척 아름다운 역이다.

반곡역을 지난 철도는 치악산 자락을 지난다 이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볼 수 있는 방법은 고속버스 밖에 없어서 차장을 통해 이곳저곳을 담아 본다. 기차는 이제 신설되는 선은 원주역에서 봉양역까지 긴 터널을 지나서 가기 때문에 외부 전경을 볼 수 없다.


반곡역에서 신림역으로 이동 중에 단선 기차의 추억을 보았다. 상행선의 기차가 교차지점에 도착하지 못하여 하행선은 교차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교차지점은 중간중간 역이다. 그래서 단선에는 간이역이 많다. 간이역은 교차지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한번 정지하여 상행선 또는 하행선의 기차를 통과시키면 정지해 있는 기차는 지연 즉, 연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선구간은 복선구간에 비하여 연착 비율이 높고 연착 시간도 길다고 할 수 있다. 복선구간에서는 상위등급 차량이 지나갈 경우 기다려주어야 하는 것이 연착을 유발한다. 즉 상위등급 차량이 1분 정도 지연되면 하위등급 차량의 경우 2-3분이 추가 지연되는 것이다.

치악산 루프식 터널을 지나면서 아래에 보이는 치악산 철교를 담는다. 사실 저 철교와 터널을 지나서 고도를 높여 왔는데 탐승한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난다. 스위치백은 전진과 후진으로 고도차를 극복하지만 루프식 터널은 크게 원을 그리면서 고도차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원주시에서 이곳에 레일바이크를 만들면 이것을 경험해보려 한 번 올 것이다. 루프식 터널을 내려오면 힘들이지 않고 페달을 밟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도차에 의한 속도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고 본다.

루프식 터널 원리는 산악지대를 지나는 철도 또는 도로의 구배를 극복하도록 만들어진 형태의 선로 또는 도로를 말한다. 철도에 적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루프식 터널(일명 똬리 굴)이 있는데 영동선에 스위치백을 제거하면서 루프식 터널을 건설하였지만 중앙선에는 대강터널을 제외하고 이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표고차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러한 터널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추억이다. 루프식 터널을 지날 때 부친이 나에게 저 밑으로 간다고 했을 때 참 신기하다고 한 기억이 있다.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에 있는 브루시오 교.

이제, 간이역이 아닌 여객이 탑승하고 하자하는 역으로 사라지는 신림역이다. 인터넷에 찾으면 이역보다 서울의 신림역이 먼저 나타나지만 1941년 7월 1일 보통 역으로 영업 개시한 오래된 역이다. 이역의 명칭은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 성황림을 신적인 수림이라 생각해서 신림이라 하였고 이것이 확대되어 마을 이름, 면 이름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역명도 지명에서 유래되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예전에 신림은 무척이나 큰 역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내려보니 신림은 조그마한 시골역이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신림역 주변은 아무것도 없다 신림역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신림은 원주시에 속해 있지만 치악산이 가로막혀 있어서 도로로 접근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 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고속도로가 이러한 역할을 이전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라지는 저 기차처럼 이역은 역사의 뒤안길로 갈 것이다. 기차는 시간이 되어서 멀리 사라지지만 역사도 동일하게 사라지면서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혹, 다시 기회가 있다면 금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폐선이 되기 전에 완행 같은 무궁화열차를 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