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산 덕유산 눈보다 사람만 가득....

by 김기만

겨울산 하면 눈이 있고 상고대가 있고 그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겨울산 대표는 덕유산은 눈과 상고대와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 겨울철 많은 사람들 찾는다. 이를 보기 위하여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까지 왕복하는 곤돌라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 겨울철 풍경이다.


지난주 목요일 전북지역의 눈이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국립공원공단에서 운영하는 동영상 정보에서도 설천봉은 눈으로 가득하였다. 이번 겨울에는 주요 산들은 눈이 없어서 눈을 찾는 산객들이 눈에 목마르고 있는 시점에 주중에 춥고 눈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 너도 나도 덕유산으로 간다. 나도 부하 뇌동하였다.


지난주 파키스탄에서 눈을 보기 위하여 고원지대의 도시에 들어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고립되어 숨졌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눈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오늘도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산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사당역은 오늘도 숨바꼭질이다. 30분 동안 산행 버스들이 도로에 산성을 쌓은 것을 못 본 체할 수 없어 이것을 최대한 빨리 해체시키고자 한다. 어차피 30분이면 모든 버스들이 떠나 버릴 것인데 5분이나 10분 일찍 떠나라고 성화다. 시내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민원이 그 이유다. 그 시내버스를 타고 와서 내리는 사람들은 산행 버스를 타기 위하여 내리는 사람들이 주이고 다른 승객은 얼마 되지 않은데 win/win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도 해본다.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편하기에 그렇게 대응하는 경찰도 이해가 간다. 30분 정도 구역을 정하여서 관광버스의 주차허용을 해주면 쉽게 해결될 것인데 하고 생각을 해본다. 점심시간에 음식점들의 영업활성화를 위하여 주차단속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버스는 양재와 죽전을 거쳐 남으로 남으로 간다. 옥산휴게소에서 가쁜 숨을 한차례 휴식하고 또 남으로 간다. 덕유산을 가는 산객들이 가득 찬 버스에서 오늘의 일정을 공유한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사람,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갔다가 종주하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거나 백련사를 거쳐서 내려올 사람들에게 안내를 한다. 내려올 때 시간을 지켜줄 것을 최대한 요청한다. 특히, 곤돌라를 타고 내려올 사람들에게 주말에는 1-2시간 대기하여야 한다고 얘기를 한다. 나는 곤돌라를 생각도 하지 않고 백련사를 거쳐서 내려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내가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덕유산 IC를 지나자마자 안성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안성면으로 버스는 지나가고 있다. 안성탐방지원센터를 겨울에 올라갈 수는 없다. 겨울에 도로가 얼고 승용차가 이 시간쯤이면 주차장을 가득 메울 것이기에 버스가 올라가는 것이 무리이다. 버스는 탐방지원센터를 올라가는 초입에 우리를 내려준다. 서둘러 간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평상시보다 1km 이상 더 걸어야 한다. 탐방지원센터를 가면서 버스가 우리를 미리 내려준 것에 감사를 하였다. 먼저 올라가 버스가 회차를 못하여 고생을 하고 있다. 우리와 같이 온 버스기사 아저씨가 여기에서 이렇게 힘들게 회차를 하면 서울을 갈 때까지 여유가 없을 것인데 여유 있게 우리를 내려주고 회차하여 무주리조트로 갈 것이다.


탐방지원센터 입구까지는 그저께 내린 눈이 인도 위에 있다. 눈이 산 위에 그득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걷는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산으로 가기 전 모두들 아이젠도 하고 스패츠도 하고 겨울용 장비를 갖춘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 산을 만끽하려고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가면서 바로 옆에 칠현의총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겨울산을 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지나간다.


칠현의총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에 위치한 이 묘소는 일제와 싸우다 숨을 거둔 의병장 신명선과 그의 부하들이 묻힌 곳이다. 1907년 일본의 강압으로 정미 7 조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군대가 해산당하게 되자 일본의 침략에 울분을 참지 못한 시위보병(侍衛步兵)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항일항쟁이 벌어졌다. 시위대 출신 장교 신명선은 전라북도 무주의 덕유산을 거점으로 15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무주·진안·장수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많은 업적을 세웠다. 1908년 4월 계속된 접전으로 피로가 겹친 의병들이 덕유산의 칠연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잠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전대원이 최후를 마치게 되었다. 부근 주민들이 의병들의 유해를 모아 묘소를 만들고 ‘칠연총(七淵塚)’이라 이름을 붙였다"라고 한다.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어도 괜찮다. 칠연폭포 갈림길까지는 3-4 사람이 같이 걸어도 문제없는 넓은 길이다. 칠연폭포를 가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시간도 남았고 겨울산에 폭포는 어느 정도 얼어서 장관을 이루는지 300m를 왕복해본다. 칠연폭포는 "일곱 개의 폭포가 일곱 개의 못을 만든 비경 덕유산의 동엽령 서쪽을 흐르는 칠연계곡에 위치한 칠연폭포는 일곱 개의 폭포와 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에 폭포와 소가 얼어 연이어 이어지는 폭포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연이어 이어진 폭포의 얼음은 볼 수 있었다.

동엽령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그저께 내린 눈도 이제 양지바른 곳은 없다. 양지바른 등산로에는 아이젠이 무의미하다. 어떤 사람은 아이젠을 벗어 배낭에 걸고 걷고 있다. 나는 혼자다. 내가 다치면 주변 사람들이 잠시 돌보아 주겠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없기에 아이젠을 열심히 싣고 걷는다. 서로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아이젠을 벗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아쉽다. 그래도 아이젠을 싣고 걸으니 살짝 얼은 도로가 두렵지 않다. 양지는 눈이 없고 음지는 눈이 있다. 해발고도를 높이면서 눈이 등산로 주변을 메우고 얼음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한다. 이제 해발이 1000m를 넘어서니 아이젠이 이제 필수다. 동엽령을 올라서지만 눈은 보이지 않고 등산로 주변에 바람에 의하여 쓸려온 눈이 등산로를 가득 메워 그래도 겨울산을 만끽하게 한다. 겨울산은 눈이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덕유산은 더욱 그렇다.

3년 전 이곳을 찾은 기억이 있다. 그때에도 눈이 내리지 않아 아이젠을 산 지인이 사용해볼 기회가 없어 이곳을 찾아서 처음으로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데 금번 겨울은 덕유산 조차 눈이 보이지 않는다. 동엽령에서 보면 온 산에 눈이 보여야 하나 그렇지 않다. 이제 중봉을 거쳐 향적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남쪽으로 가면 남덕유산인데 이곳에서 11km, 향적봉은 4.3km다. 햇빛을 받은 양지바른 곳을 제외하고 해발고도 1,200m가 넘는 이곳은 그래도 눈이 계속 있다. 다만, 상고대는 없다.

배가 고픈 사람들이 바람을 피해 이곳저곳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앉을 곳도 많지 않다. 동엽령에서 그렇고 향적봉을 가면서 바람이 없는 곳은 사람들이 앉아서 배고픔을 달래고 있다. 1200m에서 1300m로 1500m로 오른다. 가파르게 오르기도 하고 살짝 내려가기도 하면서 오르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풍경이 이채롭다. 눈은 없고 사람만 가득하다.


중봉을 올라가고 있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앞서가는 여자분께서 짜증을 내고 있다. 앞에 가는 그 여자분의 짜증 이유를 물으니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려서 걸을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만큼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하지만, 소백산 칼바람보다 못하다. 중봉을 올라서니 바람이 거세다. 멀리 향적봉이 보인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멀리서 보니 저렇게 사람들이 정상 인증샷을 남기기 위하여 줄을 서 있으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덕유평전이다. 덕유평전에는 항상 상고대가 있었는데 없다. 주목에 상고대가 꽃을 피웠는데 상고대는 없고 주목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고 고사목에 눈이 붙어서 나는 죽었어도 살아있는 것이야 했는데 그냥 앙상한 고사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한탄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바람도 불고, 눈도 오고 하지만, 기온이 너무 빨리 올라가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점점 겨울산의 상고대를 볼 수 없는 것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이제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을 가야만 상고대를 볼 수 있는 시기가 올 것 같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을 거쳐 향적봉을 올라온 사람들도 있고 백련사에서 중봉을 거쳐 올라온 사람도 있고 백련사에서 향적봉을 직접 올라온 사람도 있다. 향적봉을 바로 아래위 위치한 대피소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대피소 안의 취사장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사람도 있고 이웃한 곳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도 있도 향적봉을 오르는 계단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오르고 내리고 한다. 대피소 인근의 주목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인증샷을 남긴다. 고산지대의 주목은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도 그 눈길을 사로잡는 주목을 담아 본다.

향적봉에 오르니 인증샷을 남기려고 너도 나도 줄을 서 있다. 나도 처음에 줄을 서보지만 30분 이상 이곳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이웃한 지역에서 정상석을 뒤로하고 셀프샷으로 인증샷을 대신한다. 셀프샷을 잘 못 찍어서 그런지 인증샷을 남길 때에는 잘 찍었는데 다시 보니 뒤집혀 있다.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1600m에서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른다. 저것을 타고 내리면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내려갈 것이다.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따고 내려가도 금방 내려갈 것이며, 설천봉까지 이어지 스키장 슬로프를 타고 내려가면 더욱 빨리 내려갈 것이다. 이곳까지 올라올 때 스키장비를 가지고 올라와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것처럼 스릴 넘치는 재미도 없을 것이다.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기다리는 줄이 길다. 저 줄끝에 서는 것보다 튼튼한 다리를 믿고 하산을 한다.

향적봉에서 중봉을 거쳐 백련사를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바로 내려가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있고 일몰시간을 감안하여 중봉을 거쳐서 내려가는 등산로는 다음으로 미루고 바로 내려간다. 향적봉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끊임이 없다. 늦은 시간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곤돌라를 이용하여 내려가지 않으면 내려올 수 없을 것 같은데 걱정이 앞선다.


산을 내려가면서 어떤 분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산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이렇게 가파른 산을 어떻게 올라왔을까 궁금하다고 한다. 단지, 주변을 보지도 않고 땅만 보면서 올라와서 가능했다고 한다. 나는 땅만 보지 않고 주변을 보면서 올라왔다고 이야기한다. 백련사를 바로 앞 에두도 이제는 안도의 시간이다. 백련산 계단이란 것이 있어서 담아본다. 계단이라고 하면 한 발 한 발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계단인데, 이 계단은 그것이 아니고 덕유산 내의 백련사 뒤쪽에 마련되어 있는 계단으로, 불교의 계(戒: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 의식을 행하는 곳이라고 한다. 화강암질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단은 절 뒤쪽의 등성이에 바닥을 널찍하게 마련하여 고르게 만든 후 자연석을 깔고 그 중앙에 종 모양의 탑을 세워두었다. 낮은 바닥돌 위에 올려진 탑은 꼭대기에 구슬무늬를 둔 두툼한 받침을 조각한 후, 그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올려놓았다. 탑의 서쪽으로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장식한 듯한 3각점의 홈이 파여 있고, 그 안에 동그란 무늬를 새긴 받침대가 놓여 있다.

백련사에 도착해서 너도나도 겨울산을 다닌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아이젠을 벗고 스패츠를 벗고 그렇게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이곳의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에게 인사를 한다. 그렇게 백련사에서 휴식을 하고 구천동의 주차장까지 걸어서 내려간다. 걸어서 내려가는 길이 거의 7km다. 시멘트로 된 포장도로가 있어 아무 문제없이 걸을 수 있지만, 음지이고 그곳에 숨어 있는 얼음이 있을 수 있어 누구나 긴장하는 길이다. 그런데 최근에 공단에서 '어사길'이라는 도보 전용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어사길'은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길이라고 한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을 일부러 걷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구천동에 와서 어사길을 한번 걸어보라고 권고하고 싶다. 여름날 향적봉, 중봉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맑은 물을 그대로 보면서 여름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해발이 100-200m 정도를 7km 가까이 걸어서 오르고 내리는 만큼 좋은 길이다.


덕유산을 걷고 난 다음 백련사에서 구천동 주차장까지 걸어서 내려가는 길이 못내 아쉬웠는데 공단에서 어사길을 만들어 두었다. 한 번쯤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어쩌면 겨울산 덕유산에 대한 아쉬움을 어사실에서 만회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구천동 어사길은 "구천동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구천동 33경 중 제6경 인월담에서 제25경 안심대의 비경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소설 "박문수전"에서 어사 박문수가 무주 구천동을 찾아 어려운 민심을 헤아렸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계곡 물길을 따라 걸으면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치유의 길"로 구천동 비경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 관광지이다"라는 소개의 길이 그대로 전해진다고 할 수 있다.


어사길은 "최초 어사길 복원사업은 지역주민 최태호 씨의 제안과 당시 덕유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홍대의 소장에 의해 역사적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역사적 가치를 확인한 무주군과 국립공원공단의 지원으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어사길 초입에는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자연습지 교육장이 있으며 이곳에는 깨끗한 습지에서 자라는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16경 인월담을 시작으로 사자담, 청류동, 비파담, 다연대, 구월담, 금포탄, 호탄암, 청류계를 지나 현재는 25경 안심대까지 나무길과 계단으로 정비된 자연 숲길로 어사길이 복원되어 있다"라고 소개된 글도 있다.


나는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다른 사람들은 백련사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오지만 나는 어사길을 따라 내려온다. 개울의 겨울의 비경을 그대로 보았다. 비파담의 그 모습에 반하여 노부부가 내려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구천동 계곡의 깊은 속살을 볼 수 있고 이곳저곳에 명소에 대한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다.


먼저 왼쪽은 이무기 소나무다. 소나무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 소나무를 안내판에서 이무기소나무라고 표기해 놓았다. 오른쪽 사진은 이곳 태생의 김남관대령이 조성하고 있던 불사이다. 지금은 23개의 부처가 있다. 구천개의 불상을 조성하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천동을 널리 알려 지금의 구천동이 되었으며 그를 기리기 위한 공적비가 구천상수도 정수장 부근에 있다고 한다.

이제 구천동의 마지막 주차장이다. 주차장에는 많은 버스들이 오늘 산을 갔다 온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많은 버스로 온 사람들이 덕유산 이곳저곳을 누비고 저녁 늦게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남으로 북으로 흩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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