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은 바람이 휘몰아친다. 산 정상에 그래서 나무가 없고 초원지대가 형성 이 되기도 하고 바위만 남아 있기도 한다. 대표적인 바람산이 소백산, 태백산이다.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가 있다. 이소라 씨 노래인데 겨울이 되면 첫 소절이 그렇게 뇌리를 때린다. 겨울은 비보다 눈이지만 눈보라가 더욱더 눈물을 나게 할 것이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다"
겨울산을 찾는 이유는 찬바람을 맞기 위한 것도 있고 겨울산의 눈꽃을 보기 위한 것도 있다. 산악회에서 운영하는 버스는 대부분 겨울산 하면 눈과 상고대를 보러 가는 등산객들을 실어 나른다. 나도 이에 동참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찬바람이 유명한 곳으로 간다. 찬바람이 유명하면 바람과 눈 등으로 상고대 멋있게 된다.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등이 유명하다. 그래도 익숙한 산 소백산을 찾는다. 소백산은 머리가 흰 산이고 눈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백산의 칼바람은 유명하다. 연화봉에서 비로봉, 국방봉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아고산대 능선 지역을 지나면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을 뒤로 앞으로 맞으면서 걷는 길이 유명하다. 예전에는 이 능선 지역에 에델바이스가 피었다고 하는데 너도나도 한두 뿌리를 이를 채취하여 이제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에델바이스를 보전하기 위하여 이제는 보고 지나쳐야 할 것이다.
친구와 함께 간다. 친구는 미리 근처에 가있다. 시골에서 모친이 서울에 왔는데 이번에 모셔주고 그곳에서 버스가 도착하면 같이 가기로 하였다. 평상시에는 버스를 같이 타고 가는데 이번에 각자 움직여 등산로에서 만나 같이 걷는다. 10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 다음날 찬바람이 불 때 걸었던 소백산을 이번에는 2022년 두 번째 주에 만나서 걷는 것이다. 그때는 어의곡에서 시작해서 죽령에서 끝을 내었는데 이번에는 죽령에서 시작하여 어의곡에서 끝을 낸다. 새로운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색다른 맛을 기대하며 산으로 간다.
사당역에서 6시 30분부터 등산객을 싣고 떠나기 위하여 버스가 사당역 출구를 시작하여 양쪽으로 시내버스 정류장을 제외하고 성벽을 이루듯이 서있다. 오늘도 그중 우리가 가야 할 이정표를 붙인 버스에 오른다. 이른 아침에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고 나도 버스에 정해진 자리에 않는다. 버스가 거의 찼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기다린다. 이렇게 버스가 느릿느릿하게 출발을 10분 늦게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려주면서 시작되었다. 10분 이상 기다린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버스를 타는 그 사람들의 얼굴이 철판이다. 이렇게 느릿느릿 버스가 죽전의 버스정류장에서 제일 뒤에 서서 앞에 차가 가기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다.
소백산을 가는 버스가 천둥산 휴게소에 정차했는데 친구는 어디쯤이냐고 이야기한다. 나는 마음 급한데, 버스가 내가 할 수 없고 그냥 기다린다. 친구는 시내버스를 타고 와서 벌써 1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버스는 아직이다. 기다리다 지친 친구가 버스가 단양 ic를 나올 때쯤 등산을 시작한다고 메시지를 남기고 산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10분 늦게 출발할 것이며 친구는 느릿느릿 걸어서 갈 것이고 나는 빠르게 걸어서 만날 것이다. 친구는 1기 통 나는 2기 통이라고 한다. 친구는 폐가 어릴 때 손상이 되어 폐를 유지하기 위하여 주말마다 산으로 산으로 그런 친구를 따라 걷다가 나도 이제는 주말만 되면 산으로 산으로이다. 그래서 둘이 만나면 1기 통가 2기 통이 같이 걷고 그리고 오르막은 친구를 앞세운다. 2기 통이 앞서면 쌩 가버리는 1기 통 엔진이 최대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오르막을 따라갈 수 있다. 쉬지 않고 걷으면 30분이나 1시간쯤이면 같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그렇게 걷는다.
버스가 죽령휴게소에 서자마자 바쁜 마음으로 추운 날씨를 걱정하면서 귀마개도 하고 방한모도 쓰고 걷는다. 더워지지 않는 몸이 차가운 공기에 적응을 하면 하나씩 하니씩 벋어서 배낭에 넣어지겠지만 시작은 단단히 한다. 죽령의 고도는 696m, 연화제 2봉의 고도는 1357m 표고 차이가 거의 700m이다. 하지만, 거리가 5km 정도 되니 그렇게 가파르지도 않지만 표고 차이가 있는 만큼 오르막의 연속이다. 국립소백산 천문대까지 자동차가 운행하는 것인 만큼 포장된 길을 오른다. 내려올 때는 포장된 길이 힘들어서 포장된 길 옆에 야자수 메트를 깔아 놓았다.
연화제 2봉 대피소가 보이는 지점에서 친구를 만났다. 무려 2km를 쉼 없이 바쁜 걸음을 걸어서 따라잡았다. 내가 빨리 걸은 것이 아니고 친구가 천천히 걸어서 만난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연화제 2봉의 대피소를 담고 걷는다. 오늘은 저 대피소를 거치지 않을 것이다. 저번에는 시간도 남고 하여 올라가 보았지만, 오늘은 지난다. 뒤를 돌아보니 도솔봉이 우리를 부른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2월쯤 그리로 한번 가보리라.
너도나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걷고 있다. 눈은 보이지 않고 얼음이 살짝 얼어 있는 도로를 지나고 오르막을 오르면서 가파른 숨을 들이켤 뿐이다. 눈을 보려고 왔는데 1200m를 넘어도 안 보이고 1300m를 넘어도 보이지 않는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고 양지바른 만큼 눈이 작년에 내린 눈이 남아 있지 않다. 연화제 2봉에 도착하여 대피소를 가보고픈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저기에 올라가면 멀리 경치를 볼 수 있어 좋다고 하지만, 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연화제 2봉 대피소는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다만, 취사장이 개방되어 있어서 오고 가는 등산객들이 겨울의 추위를 피하여 식사를 할 수 있다.
연화제 2봉 정상을 회피하고 연화봉으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백두대간 이정표를 뒤로 하고 전망대에서 멀리 월악산도 보고 금수산도 바라보면서 친구는 고향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이곳에서 월악산을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저곳이 우리 고향이라고 하니 서울에서 내려온 등산객으로 착각을 하고 아! 그렇네요 한다. 우리가 우리 고향을 한 명은 집에서 왔는데 하면서 쓴 웃을 짓고는 연화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연화제 2봉 뒤로 돌아서니 눈 세상이다. 양지와 음지의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다. 누군가가 이곳에 눈썰매를 탄 것 같다. 눈썰매 타기에는 적격이다. 돌도 없고 시멘트 포장길을 표고 차이 100m를 이용하여 내려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미끄럽지만 자기는 재미있게 눈썰매를 탄 것이다. 눈길과 제2연화봉 대피소와 우량 관측소를 담아본다.
연화봉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요란하게 지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잠시 인증숏을 남기고 사라진다. 바람과 추위가 사람들의 인내를 테스트하고 있다. 멀리 비로봉이 눈앞에 있다. 이곳에서 5km 남았다. 장대한 능선이 보이고 눈은 보이지 않고 양지바른 곳에서 초원만 보일 뿐이다. 비로봉 정상에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저곳에 바람은 더욱 심할 것 같은데 연화봉의 인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서 스치고 지나가지만 비로봉의 정상 인증숏은 스치고 지나갈 수 없어 모두가 바람과 추위에 인내하고 있는 것 같다.
겨울산은 음지로 가면 눈이 있다. 그리고 완전한 음지가 아니지만 양지바른 곳이 아니라면 눈이 있다. 그래서 남사면이 아닌 북사면은 거의 눈이 자리 잡고 있다. 연화봉에서 연화제 1봉을 가는 길은 표고를 100m 정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그 100m 내려가는 길에 눈이 그득하다. 연화봉에서 너나나나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우리는 고향산이고 거리가 100m 정도이며 이곳을 지나면 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만용을 부려본다. 연화봉을 내려가면서 안전을 위하여 설치해놓은 줄을 잡고 내려간다. 그럭저럭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만용이다. 겨울산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아이젠을 착용하였다가 벗었다가 하는 귀차니즘이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젠을 착용하여야 한다.
연화제 1봉을 오르는 데크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고도를 100m 정도 올리니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이러지는 장대한 능선길에 가장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다. 중간쯤 전망대가 있어서 뒤를 돌아보고 연화봉의 천문대와 연화제 2봉의 대피소를 담아본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비로봉도 한순간에 담는다.
죽령에서 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을 가는 길에 그렇게 많이 다녔으면서도 보지 못하였던 바위를 보았다. 우리는 마구 할멈 바위라고 명명하였다. 이것이 어릴 적 읽었던 서양 동화의 영향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화제 1봉에 오르면 이제는 능선의 연속이고 한 발을 내리막에 한 발을 오르막에 담아볼 뿐이다. 아직까지 소백산의 칼바람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느끼기 시작한다. 왼쪽에 능선이나 나무가 없는 지역에 도착하면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막아선다. 머리에는 방한모에 등산복에 달린 모자까지 덮어쓰고 바람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을 최소환으로 하면서 걷는다. 그리고 능선을 걸으면서 최대한 오른쪽으로 걷는다. 바람이 산을 타고 올라와서 산을 타고 올라온 그대로 몸에 때리면 더욱 차다. 그래도 살짝 산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비켜나는 오른쪽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능선이 양옆으로 가파르지 않으면 이것도 소용이 없다. 그냥 바람이 차다.
이제 천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천둥에서 올라오면서 바람도 없이 올라왔는데 그리고 주목에 달린 눈을 보면서 눈요기를 하였을 것인데 이제는 바람을 친구 삼아야 한다. 뒤를 돌아보면 아득이 연화봉이 보이고 비로봉은 가깝다. 초원 사이에 데크가 사람들을 바쁘게 걷는다. 비로봉 정상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추위를 이기면서 정상 인증샷을 남기려고 너도나도 줄을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비로봉 정상까지 데크로 된 길을 걷는다. 예전 중고등학교 다닐 때 올라왔을 때에는 초원이었고 겨울에는 눈길을 걷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모습은 없다. 그 결과 초원이 복원이 되었다. 비로봉 주변의 모든 풀발이 사라지고 흙바람이 불던 곳이 이제는 바람에 겨울을 맞아 그 잔해를 흩날리고 있다.
비로봉 정상은 바람이 가득하다. 바람이 가득한 장소에서 바람을 등지고 서있을 뿐이다. 그래도 풍기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추위에 떨지 않아서 그런지 추위를 보고 더 이상 오르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이정표나 비로봉 위에 있는 돌탑은 그냥 모든 사람들에게 남겨두지만 소외되어 있다. 따뜻한 날에는 이 돌탑과 이정표도 다른 사람에게 인기가 있지만 오늘은 정상석만 인기가 있다.
어의곡으로 가기 위하여는 갈림기로 가야 한다. 어의곡과 국망봉으로 가는 데크는 바람으로 가득하다. 누구도 서있지 않고 머리에 방한모를 쓰고 자켓의 모자도 쓰고 옷깃을 여미고 지나갈 뿐이다. 갈림길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어의곡으로 간다. 이곳의 바람은 산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다.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분다. 하루 종일 바람을 맞으면서 가장 센 곳을 지나온 것이다. 사실 천둥 갈림길에서 비로봉까지도 바람이 세었으나 천둥에서 비로봉까지 오를 때는 바람을 등지고 올라와서 바람이 나를 밀었지만 비로봉에서 어의곡 갈림길까지는 바람이 앞에서 나를 막아서 더욱더 세찬 것이었다.
어의곡 내려가가는 길은 눈길이다. 하루 종일 눈을 보러 온 사람들이 눈을 보지 못하였는데 이곳에서부터 눈을 본격적으로 보면서 하산을 하는 것이다. 2시간 정도 걸으면 어의곡으로 내려간다. 새벽에 이 길을 거스럴 올라와서 일출을 본다고 친구가 이야기한다. 다른 산은 입구 통제가 가능하나 이산은 입구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금년도 1월 1일에도 산에서 일출을 본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이곳에 겨울날 눈이 온 다음날 올라와서 눈 구경을 한다고 한다. 친구는 어의곡 바로 옆 동네에서 살고 있어 친구는 내려가면 집으로 간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 쉼터까지 가파르게 내려가고 내려간다. 쉼터를 가면서 소나무 숲 지대를 지나고 눈길을 지나고 다양하게 겨울을 만끽한다. 아이젠을 신고 내려가지만 아이젠은 다져지지 않은 퍼석눈에 미끄럽다. 그래도 얼어 있는 길을 지날 때에는 그 효과를 발휘한다.
이곳에 3-40년 전에 벌채를 하였고 그 벌채를 하기 위하여 자동차가 다닌 흔적을 만나도 3km 정도 더 내려가야 한다. 벌채를 할 때 오르고 내렸던 그 화물차량이 GMC 트럭인데 그것을 우리는 제무시라고 읽었다. 우리가 그렇게 읽은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그렇게 읽은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읽었다. 그 트럭이 우리의 추억이 되어 있다. 올라올 때에는 빈 트럭이어서 싶게 올라왔겠지만 그래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왔을 것이다. 내려갈 때는 벌채한 그 나무들을 가득 싣고 내려가면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선배들은 이 길을 다녔을 것이다.
그 길이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내려가는 길은 내려가는 길이며 겨울길은 겨울길이다. 어의곡 주차장에 버스들이 가득하다. 이곳에 음식점은 제한적이다. 혹, 이곳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음식점을 찾아 이곳저곳을 찾아야 한다.
서울로 간다. 친구는 집으로 간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