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가까이 있었다. 코로나19가 가족 중에 발생하며 가족 모두가 감염이 된다. 백신을 접종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발생을 하지만 그래도 돌파 감염으로 어쩔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감염자가 15만 명이 넘어서면서 모두가 감염자이거나 아니거나 한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격리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직장 근처의 산을 찾았다.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는 계룡산이다. 무속인들이 많은 찾는 곳은 계룡시에서 출발하는 등산로 주변에 있지만 우리들이 많이 찾는 동학사 인근과 갑사 인근에 있는 등산로 주변은 거의 없다. 다만, 있다면 삼불봉 근처의 칠성바위가 있는데 요즈음은 접근이 불가능하여 무속인들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계룡산 초입에 있는 박정자 삼거리를 동학사 방향으로 진입을 하면서 동학사 주변의 오래된 벚꽃나무들이 반긴다. 박정자 삼거리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지명이 되었을까 궁금해한다. 찾아보면 이렇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는 밀양 박씨(규정공파 박현)의 후손인 박세화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학봉리 제석동 뒷산에는 밀양 박씨(규정공파) 박수문의 선대 3 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아주 유명한 풍수지리가의 박수문의 선대 3 묘의 위치를 보고 범과 용의 형체를 갖춘 명당자리이나 앞쪽(현 박정자)이 공허하고 장차 큰 자연재해(물)가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밀양 박씨 후손들이 이곳에 느티나무를 심어 허점을 보강하고 자연재해(물)를 막기 위해 심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3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거목으로 자라 이곳을 지나는 길손의 쉼터가 되어 “세상 사람들은 박 씨들이 삼거리에 정자나무를 심었다”하여 이곳 지명을 “박정자”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한다.
우리 나이에 생각나는 "갑사 가는 길"이라는 수필이 있어서 계룡산에 오면 그것을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 오늘은 동학사 주차장에서 갑사로 우선 갔다가 다시 갑사에서 동학사로 일청을 잡아 본다. 삼불봉을 올랐다가 내려와서 금잔디고개를 거쳐 갑사로 갔다가 다시 연천봉을 올랐다가 관음봉을 거쳐서 동학사로 내려가는 원점회귀다.
동학사로 들어가서 갑사로 가면 좋겠지만 입장료가 3000원이다. 동학사로 올라가기 전 남매탑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입장료가 없다. 신라시대의 이야기가 고려시대에 조성한 탑이며 이 탑에 이름을 남매탑이라고 명칭을 부여한 것은 조선이라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엄밀히 발하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성리학에 매몰되어서 남존여비가 심화되어서 우리들이 산을 오르면 형제봉이라는 명칭이 많다. 요즈음 같으면 형제봉이라고 하면 누군가가 그럴 것이다. 남매도 있고 자매도 있는 형제봉이란 것은 성차별이 될 것이다.
남매탑까지는 등산로 초입에서 3.2km다 잘 걸으면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고 넉넉하게 1시간 30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여기에서 너나나나 남매탑을 배경으로 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나는 사람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지 않고 남매탑만 담을 뿐이다. 이웃한 사찰과 올라가야 할 삼불봉이 같이 담아 본다. 이제 삼불봉 고개까지 올라간다. 삼불봉 고개까지 150m 남짓이지만 가파르게 오르니 너나나나 숨을 길게 들이키지 못하고 헐떡거릴 뿐이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지금까지 그렇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상고대를 삼불봉을 올라가는데 보여준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상고대를 만들어 둔 것이다. 계단 하나하나를 오르면서 상고대를 보고 기쁘게 사진을 찍은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차다. 삼불봉의 설경이 계룡산 8경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오늘은 상고대를 보았다. 삼불봉에 올라 멀리 보고 바람을 견딜 수 있으면 그냥 가볼 생각도 하였는데 쉽지 않다. 바람이 쌩쌩이다. 산을 내려와서 보니 전국적으로 강풍주의보가 내려적고 그 바람에 산불이 곳곳에 발생하여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나는 오늘 옷이 얇다. 집에 가지 못하고 근무지 근처에서 산을 가다 보니 옷을 겹겹이 입었으나 온도는 높으나 바람이 차다. 능선을 계속 가는 것보다 내가 생각했던 갑사로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적합한 길이 되어 버렸다. 삼불봉에서 바람도 불고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그렇게 능선을 걸어야 할 이유가 거의 없다. 주변의 경치도 볼 수 업으면서 바람을 뒤가 아니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친구 삼아 갈 필요성이 없다. 멀리 자연성릉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관음봉도 보이지 않는다. 회군을 한다.
삼불봉 고개로 하산을 하여서 금잔디고개를 거쳐서 갑사로 간다. 앞에 가는 사람에게 삼불봉을 가보셨는지 물어보니 바람을 피하여 쉬고 싶어서 금잔디고개까지 간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분의 실수였다. 금잔디 고개도 바람이 불고 있다. 갑사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게 내려간다. 오늘 스틱도 없다. 스틱이 없으면 무릎에 부담을 준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힘겹게 올라오고 있다. 나는 편안하게 내려가는데 그분들은 힘겹게 올라오고 있다. 신흥암까지는 가파르게 내려간 후 신흥암에서부터는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갑사까지 갈 수 있다.
신흥암에는 사리탑이 있다. 이탑에 대한 설명을 보면 "바위가 몇 개씩 포개어져 만들어진 자연 석탑이고. 갑사에서 동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용문폭포 위의 신흥암(新興庵) 뒤에 있으며, 천진보탑 머리 부분에서 빛이 발한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 아소카가 쿠시나가라(석가가 입적한 곳)에 있는 사리탑에서 석가의 진신사리 8곡(斛) 4두(斗)를 발견하고 이를 84방향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북쪽을 담당한 다문천이 신통력으로 자연 석탑에 넣었다고 한다" 자연이 빚어 놓은 신흥암의 바위 사리탑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광放光 하여 한밤중에도 계룡산을 환하게 밝힌다. 천진보탑의 놀라운 방광 장면은 6·25 전쟁 직후 당시 계룡산에 주둔하던 한 미군 병사 카메라에 잡혀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수년 전 어둠이 내리던 저녁에도 방광을 시작하여 산불이 난 줄 알고 소방차가 출동하는 소동까지 빚었다고 한다. 한 번쯤 지나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옆의 소나무가 나는 더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 있는 사찰 중에는 진신사리 등이 있을 경우 대웅전에 부처가 없다. 문이나 창문이 있으며 그것을 통해 사리가 있는 곳을 보고 예불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 신흥암을 들려서 탑을 본다. 다시 내려간다. 폭포가 있는데 폭포의 물이 얼어서 의미가 없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게 폭포수가 내려쳤을 것이다.
갑사다. 갑사의 홈페이지를 가면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다. "계룡산의 계는 금계(금닭)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뜻하고(金鷄抱卵形), 룡은 용이 하늘을 나는 형태(飛龍昇天形)라 해서 계룡산이라 불립니다.
갑사는 420년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으며(천진보탑), 백제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가 천불전과 보광명전, 대광명전을 신축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통일신라 의상대사가 중수하여 화엄십찰(화엄대학지소/국중대찰)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갑사는 1597년 정유 재산 때 모두 소실되어 효종 때 새로 지었다고 한다.
갑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연천봉으로 오른다.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이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에 갑사와 동학사를 볼 수 있는 것도 쉽지 않다. 입장료도 내지 않고 걸어서 갑사로 왔다가 다시 동학사로 가서 동학사를 구경하는 것이다. 몸이 고단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계룡산에 유명한 사찰을 두 개나 둘러본 것이다.. 갑사를 둘러보고 다시 오른다. 갑사와 동학사를 다 돌아보았는데 갑사는 대부분이 개방이 되어 있는데 동학사는 대웅전 이외에는 열려있지 않았다.
이제 연천봉을 향하 오른다. 연천봉에서 바라다보는 계룡산의 전경이 멋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갑사에서 연천봉을 직접 오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천봉으로 가기보다는 삼불봉이 있는 금잔디 고개로 방향을 잡는다. 나는 금잔디 고개에서 내려왔기에 연천봉으로 갈 뿐이다. 연천봉을 오르면서 원효대라는 이정표까지는 가파르지만 그럭저럭이다. 하지만, 원효대를 지나면서 이제는 한 발을 움직이면 그만큼 해발이 오르고 그만큼 지구의 중력을 역행하기에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부산에서 온 산객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자동차를 동학사 주차장에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갑사로 온 후 연천봉으로 방향을 잡고 오른다고 하였다. 친구들 넷이서 걷는다 하지만, 한분은 다른 분들보다 잘 걸으면서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다. 연천봉에서 계룡산 전경을 보고 싶은데 오늘은 미세먼지로 그것이 어렵다고 아쉬워한다. 연천봉 정상에는 정상석이 없고 각인 문자와 데크가 조성되어 있다. 연천대에서 바라다보는 낙조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기에 관음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서울에서 온 산객들을 만났다.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나도 서울에 갔으면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갔을 것이다. 삼불봉을 거쳐서 왔다고 한다. 능선을 거치면서 바람에 추웠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걱정이라고 한다. 이제 내려가면 1시간 남짓인데 3시간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 삼불봉을 오르기 전 남매탑에서 시간을 보내고 능선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능선에서 추워서 시간을 보내 지 못한 결과이다. 신흥암에 가서 사리탑을 보라고 이야기하고 올라가면서 폭포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폭포가 겨울이라 멋을 내지 않지만 그래도 볼거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기하게도 연천봉 바로 아래에 있는 곳에 다른 곳은 바람이 거센 날 이곳은 고요하다. 너도나도 이곳에 앉아 밥을 먹는다. 마주 보며 먹는 것이 아니라 돌아 앉아서 먹는다.
관음봉으로 가면서 관음봉에서 오는 사람들과 겹치고 그들에게 인사를 한다. 파랗게 질린 얼굴들이 관음봉에서 추위를 상상해본다. 관음봉 바로 아래 고개에 예전에 없던 시설이 조그맣게 자리를 잡고 있다. 재난안전쉼터라고 되어 있다. 일종의 대피소인데 코로나 19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괜찮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같이 온 일행들이니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들 모두가 치료받으면 되니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연천봉까지 올라오면서 사람들을 드문드문 만났을 때에는 마스크가 잠시 주머니에 들어있다가 나오고 하였는데 이곳에서는 마스크가 몸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관음봉은 계룡산의 주봉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천황봉이 주봉이다. 그래도 주봉의 역할을 하고 있는 관음봉에 올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너도나도 인증샷을 남긴다. 관음봉의 구름이 계룡 팔경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오늘은 구름은 없고 미세먼지와 바람만이 가득하다. 관음봉 정상에서 겨울이라 동학사가 바로 보인다. 그리고 삼불봉에서 관음봉 사이에 이러지는 암릉들이 아침보다는 제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사면을 담아본다.
이제는 동학사로 내려간다. 내가 생각하는 동학사로 내려가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며 관음봉에서 은성폭포까지 가면 다 내려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관음봉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데크를 이용하여 내려가고 돌계단을 한 발 한 발 내려가면서 무게중심을 최대한 낮추어본다. 앞에 가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스틱을 잡는 방법에 이야기를 한다. 등산스틱을 오래 사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스틱을 사용하면 내려가면서 무릎에 주는 하중을 스틱이 분산을 하는데 어떻게 하던 그것을 잘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잘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운동에 있어서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스틱 사용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등산을 할 때 등산스틱이 중요한 이유는 다리에만 전해지는 무게중심의 30%를 분산하여 무릎에 전해지는 충격의 30%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무릎 연골의 퇴화를 늦추기 위해 꼭 사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좀 더 짧게,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좀 더 길게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스틱은 손잡이를 날달걀 쥐듯 가볍게 감싸면서 밴드를 손목에 넣어서 잡아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내리막의 가파름이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은성폭포에 도착했다. 이제 은성폭포를 보고 내려가면 이제는 끝이다 생각했는데 이곳에 2021년에 문제가 발생하여 등산로가 폐쇄된 이후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거리가 어느 정도 늘어났는데 이 구간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동학사에서 은성폭포까지 오는 길이 마의 구간이 되어 버렸다. 데크를 올라오는 길이 만만치 않게 되어 있다. 해발 100m 이상을 데크를 이용하여 올라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계단을 통해 20층 이상의 빌딩을 올라가는 것이 싶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올라오면서 쉬는 사람들을 수시로 만난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봉우리들이 이제는 보인다. 새로운 볼거리가 생겨서 좋은 것인데 힘든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까마득하게 놓여 있는 데크계단을 오르는 가족들이 이제 100m 남았다면 좋아하고 있다.
동학사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보고 싶지만 주변을 돌아볼 수는 거의 없다. 대웅전이 있는 곳만 열려 있고 대부분 스님들의 정진을 위한다고 닫혀있다. 그리고 입장료는 받고 있다.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 궁금하다. 이곳은 국내 최초 비구니 숭가대학이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변의 경치를 보는 입장료가 3000원이다. 동학사는 영조 4년에 모두 소실되었다가 1914년 월인선사가 중수하였다가 6.25 한국전쟁 다시 소실되었다가 최근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숙모전이 있다. 동학사는 백제시대 이래 충청지방의 큰 도시인 공주의 깊은 산속에 세워진 것으로 사찰의 의미보다 임금과 충신을 충신을 모시는 사당의 역할이 강하였다고 한다. 동학사 바로 이웃에 숙모전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할 때 원통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이곳에 들른 세조가 김시습이 단종과 사육신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단을 쌓아 초혼재를 지냈다는 말을 듣고 단종, 정순왕후, 안평대군, 금성대군, 김종서, 황보인, 등과 사육신, 그리고 자신의 왕위찬탈로 인해 원통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서 초혼재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을 지어 승려와 유생이 함께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고 한다. 초혼각은 1904년 숙모전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숙모전에 기려진 충의 인물은 모두 280여 분이나 되며, 음력 3월 15일에 지내는 춘향은 김시습이 단종의 원혼을 불러 최초로 제사한 날이고, 음력 10월 24일에 지내는 동향은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서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한 날이다.
김시습은 1455년 세조가 마침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머리를 깎고 동학사에 와서 곡을 했다. 이듬해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주모자들이 참수를 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돌아와 삼은각 옆에 단을 쌓고 초혼제를 지냈다. 모든 이들이 두려워 감히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이가 매월당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닫혀 있다. 그래도 볼 수 있게 무엇인가 열어 놓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가 같이 왔으면 한참 투덜거렸을 것이다. 동학사를 여러 번 왔으면서 동학사만 보고 가지 이러한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사당은 생각하지 못했다.
동학사 입구 쪽에 있는 음식점들 앞에 이상하게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제는 철거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음식점들이 좀 더 아래로 내려갔으면 한다.
오늘은 동학사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남매탑을 거쳐 삼불봉까지 갔다가 갑사로 내려갔다가 연천봉을 올랐다가 관음봉을 거쳐서 동학사로 내려왔다. 다만,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눈으로 즐겼을 뿐이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