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퇴시즌을 맞고 있다. 아직은 은퇴는 아니지만,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근무 중에 다양한 경험을 하였고 그곳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탁상으로 한 예가 많다. 그래서 은퇴시즌에 한 번씩 그곳에 가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한 번씩 둘러본다.
창녕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부곡온천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유흥을 즐겼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곳은 우포늪이 우리들에게 더 친숙하다고 할 것이다. 낙동강에서 물이 흘러들어와 늪을 이룬 것이 우포늪이고 그곳에는 철새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 우포늪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우리나라에 있는 최대규모의 자연습지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한 곳에 있는 화왕산이 있다.
창녕군 홈페이지 소개하고 있는 부곡온천과 우포늪의 모습이다(출처 :https://www.cng.go.kr/01658/02072/03029.web) 화왕산은 창녕읍에서 바로 보이는 산이다. 그리고 산 위에 화왕산성이 있고 그 산성안쪽 구릉이 있고 전체적으로 억새가 분포되어 있다. 억새를 보러 다니는 사람 중에 황매산, 반야봉, 화왕산, 민둥산 등을 다닌다. 화왕산은 접근선이 떨어지기에 별도로 움직이는 안내산악회 버스가 아니면 대구, 부산지역을 벗어난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안내산악회에서 화왕산 일정이 있어 이를 이용하기로 하고 사당역에 도착하였다. 오늘도 여전히 많은 관광버스들이 전국의 산들을 향하여 이동하고 있다.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사당역 주변의 경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당역 화장실들은 멀리 떠나기 전 자연의 이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그리고 1번 출구로 이동하거나 10번 출구로 이동을 한다. 그리고 길게 늘어선 버스의 행선지를 보고 버스를 탑승한다.
버스는 양재, 죽전, 신갈을 지나 버스전용차로를 최대한 이용하여 남으로 남으로 이동을 한다. 관광버스 기사님들은 이 전용차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일정을 최대한 그것을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도착하는 시간이 두 배 정도 더 걸린다고 하였다. 버스는 문의청남대 휴게소에서 잠시 열기를 식히고 다시 이동한다. 새벽에 나온 등산객들은 그래도 잠들고 있다. 많은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렇게 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2-30분 후면 도착을 알리는 산행대장의 목소리가 전체를 깨운다. 잠에서 바로 깨어 산으로 가는 것보다. 이렇게 2-30분 먼저 깨어서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본다. 버스가 화왕산 옥천주차장에 들어선다.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대형버스가 이동하기에는 곡선을 잘못 설계하여 버스가 한 번씩 도로경계를 넘나들어 버스도 안 좋고 도로경계선도 안 좋다. 좀 잘 설계하였으면 한다.
옥천주차장에 도착한 후 이제 산으로 가는데 등산로는 이렇다. 관룡사, 용선대를 지나 관룡산을 오른 후 허준이라는 드라마 세트장을 지나고 화왕산성 동문으로 화왕산에 접근한 후 산성 둘레길을 걸어서 화왕산 정상을 인증하고 서문으로 방향을 잡고 배바위에 오른 후 자하곡매표소로 하산을 하는 것이다. 나는 화왕산 동문에 들어갔을 때 화왕산 억새밭을 한 번쯤 다시 볼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쳤는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는 사람이 다친 축제는 그만두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있지만, 나의 뇌리에는 남아 있다.
관룡사로 간다. 주차장에서 1.2km라고 하는데 꾸준히 오르면서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렇게 볼 것이 없다. 다만 관룡사 뒤편의 구룡산의 암릉들이 눈에 들어오고 웅장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일주문이 있는데 관룡산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곳도 화왕산이 더 중요하다고 보아서 화왕산 관룡사이다. 이곳에 많은 국가의 보물들이 자리고 잡고 있다.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국가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관룡사는 우리나라 1호의 전통사찰이라는 표시가 이채롭다. 일주문은 바라만 볼 수 있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는데 왼쪽은 자동차가 통행이 가능하고 오른쪽은 계단길이다. 그 길을 오르면 바로 석장승이 자리 잡고 있다.
석장승은 민속신앙인데 절 앞에 세워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귀신이 장승의 모습을 보고 피하였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석장승의 모습에 대한 안내는 경상도의 장승이지만, 전라도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소개되어 있다. 석장승을 지나서 10분 이상 더 올라서면 관룡사가 있다. 관룡사의 누각이 있고 그 누각 옆에 암문이 있다. 산성 등에 적이 모르게 다니는 암문과 같은 문이 누각옆에 있다. 암문을 지나면 멋있는 대나무 가로수 길이 있다. 관룡사는 왼쪽 구룡산은 오른쪽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름날 그렇게 무리하면서까지 구룡산을 가지 않고 관룡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용선대로 간다. 용선대 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을 놓치지 말라고 산행대장이 이야기하였기에 그렇게 오른 것이다.
석조여래좌상까지 오른 시간이 1시간이다. 이제 한 번쯤 휴식을 취하면서 석조여래좌상도 보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올라야 하는 길을 생각해 본다. 이곳까지는 일반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석조여래 좌상으로 유명한 용선대는 천년을 이어 온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보물 295호로 지정돼 있으며 아래에서 보면 까마득한 벼랑길이다. 바로 능선에 붙어서 관룡산으로 오르는 것이다. 오르면서 구룡산의 암릉지대를 쳐다본다. 왕복 1시간이라고 하였는데 하면서 아쉽게 생각하지만, 여름날 욕심은 금물이다. 이제 관룡산 정상을 향해 가는 바짝 오르는 가파름의 시작이다. 여름날 더위속에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산을 오른다. 폭염 속에 오를 때는 더운 바람이 뒤에서 불어오고 땀이 흥건하였으나 오늘은 그늘 속에는 시원한 바람이다.
관룡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보이는 것은 없다. 이제부터는 편안한 등산길이라는 안내산악회 대장의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화왕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구룡산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지만 스치고 지나간다. 산을 내려간다. 그리고 안부에 도착하니 이제는 임도이다. 그 임도를 따라 화왕산으로 걷는 것이다. 진달래군락지가 있고 바로 이웃한 곳에 허준드라마 세트장이 있다. 허준드라마 세트장을 참 다양하게 사용한 흔적이 있다. 이곳에서 대장금, 상도, 왕초, 왕이로소이다 등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 장면을 담아서 전시해 놓았다. 잘 활용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곳에 진달래군락지가 있고 하여서 진달래 축제 등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기에 화장실이 완비되어 있다.
이제는 바로 앞에 화왕산성이 보인다. 산성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산성의 동문을 들어서면 딱 뜨인 억새밭이 눈앞에 들어온다. 초원의 억새를 보러 온 것이다. 가을이면 억새꽃이 피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창녕군에서는 억새군락지를 복원하고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를 하고 있다. 이제는 산성 둘레길이다. 약간 오르면 둘레길 정상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억새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억새밭 중앙 구릉에 연못이 있고 산 위에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이 산성이 된 이유를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화왕산 정상은 구릉지대이고 억새밭이 있지만, 화왕산성내부를 제외하고는 암릉지대다. 그 산성의 성안의 곳곳에서는 조선·고려의 자기편들과 신라·가야의 토기편들이 출토되고 있어,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장기간에 걸쳐 화왕산성이 군사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고 한다. 산성 중앙의 연못 주위에는 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다.
조선 전기에 폐성되었다 하나, 임진왜란 때인 1595년에 그 중용성이 있어 다시 쌓았고,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이 성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왜군입장에서 보면 높은 곳에서 암릉 위에서 동문을 제외하고는 공격할 틈이 없는 완벽한 산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왕산 정상 근처에는 다양한 바위가 많다. 창녕군에서는 그 바위에 대하여 다양한 이름을 붙여놓았다. 거북이 바위, 미소바위 등이 있다. 정상에서 인증을 하고 서문방향으로 이동한 후 배바위를 올랐다가 하산을 할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오자마자 미소바위가 있고 서문이 있다. 그리고 배바위로 올라간다. 배바위로 올라가면서 햇빛이 강하게 때리는 억새밭 사리를 걸어서 올라가면서 지리산의 연하선경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배바위를 상상하면서 올라갔는데 배모양의 바위는 없다. 다만,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옛날 홍수가 나서 정상 근처까지 물이 이곳까지 가득하였는데 배를 배바위에 묶어두어서 배바위라고 한다고 하였다. 부두에 배를 밧줄로 묶어두기 위해 설치한 말뚝 대신으로 바위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고창선운산의 배맨바위와 같은 의미라고 할 것이다. 배바위라고 하여서 배모양일 것이라고 상상한 우리를 무색하게 하고 그 위에 파인 곳이 있는데 그곳을 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의 세숫대야라고 하였다.
이곳을 다시 생각해 본다. 2009년 이곳에서 삼 년마다 개최되는 화왕산억새 태우기 행사가 생각이 난다. 배바위 근처에서 사람들이 구경을 하다가 바람이 통상적으로 서에서 동으로 불고 화왕산 정상 쪽으로 불이 번지고 10-20분 사이에 억새가 타고나면 꺼지는 것이 기본인데 이날은 당초 예상한 것과 다르게 바람이 갑자기 일면서 꺼져가던 불이 배바위 근처의 억새를 휘몰아쳐 저 어둠이고 불이 다가오니 몰려있던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7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사람들이 피신할 곳을 만들고 안전지대를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들지 못한 창녕군에서 보상도 하고 하였지만, 아쉬운 사고였고 지금은 그 억새 태우기 행사를 하지 않는다. 사실 산정상에서 달빛 태우기를 하는 것이 내가 어릴 적에 수시로 하던 정월대보름 행사였는데 군청차원에서 여섯 번째 행사를 하다가 사고가 났던 것이다. 안전이 최고이다.
2009년 당시 화왕삭 억새태우기 행사의 모습(출처 : 오마이뉴스, 연한뉴스) 배바위를 지나고 곰바위가 있다. 곰바위라고 하는데 두더지 바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하산이다. 하산을 하기 바로 전에 시간이 있어 여유를 갖고 산을 둘러보는 장소에서 돌아본다. 바로 앞에 암릉이 보이고 그리고 창녕읍의 전경이 보인다. 하산은 쉼터에서 내려서자마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도성암으로 가는 길이다. 도성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내리막이다. 중간중간에 화왕산 암릉 전체를 조망을 한다. 그렇게 내려가면서 화왕산을 조망하는 것이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암릉사이에 난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스틱이 필요 없고 두 손으로 안전지주와 안전줄을 잘 잡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것이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는데 거리는 짧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고 본다. 차라리 옥천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것이 편한 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려가는 길이 2km인데 그 길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려오면서 두부바위도 있다. 다양한 바위에 대하여 설명을 해 놓은 것이 재미있다. 도성암은 들르지 않고 걷는다. 걷다가 보니 예쁜 카페도 있고 하여서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가야의 고분을 본다. 창녕을 방문하였을 때 가야의 고분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 최근에 가야의 고분군들이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7개 고분군은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이다(2023.9.17) 시간이 많고 뜨거운 열기가 아니라면 그 고분군을 돌아보겠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상태에서 그늘이 없는 고분군을 탐방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룬다. 하지만, 등산로를 내려오면서 가까이 있는 고분군을 담아보았다. 창녕은 비화가야의 도읍지로 알려지고 있다. 가야의 역사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신라에 의해 멸망된 후 사라진 역사라고 한다.
자하곡 주차장에 도착하여 이동을 위한 준비를 한다. 계곡은 없으니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땀으로 적셔진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냉방이 되는 시원한 관광버스에 탑승을 하고 이동을 한다. 버스는 고요 속에 바퀴소리만 들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