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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에서 인생의 맛을 엿보았다.

by 김기만

오서산에 갔다.

나는 오서산에 가면 이상하게 징크스가 있었다. 서해를 바라다볼 수 있는 산이지만 서해를 본 기억이 거의 없고 오서산 전체를 본 기억이 없다. 오서산을 가면 신령스럽게 정상은 항상 구름이 가득하였다. 그것이 봄과 여름에 자주 다닌 기억이 있는 산이 오서산이라고 할 것이다. 2022년부터 매년 오서산을 갔지만 오서산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 늦가을 오서산을 갔다.


오서산은 가을에 유명한 것이 억새다. 그 억새가 이제는 초겨울에 접어들면 억새가 사그라들었지만 억새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에 같이 한 사람들이 지난여름 같이 한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나하고 같이 하면 서해를 못 본다는 징크스를 깨기 위하여 동참을 하였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진이 좋다. 멀리 오서산이 그대로 보인다. 하지만, 억새시즌이 지나갔지만 그것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버스 3대가 우리가 도착하는 순간에 도착하고 있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사이 관광버스에 내린 산악회 회원들도 하차를 하고 등산 준비를 한다. 일반적인 안내산악회가 아닌 지역 및 지인들이 모인 산악회다. 절대로 앞에 세우면 우리는 앞에 나갈 수 없고, 바로 뒤에 오면 우리는 그 수다를 다 들어야 한다. 100m 이상 앞서야 한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의 수다를 다 들으면서 산행을 하지는 않는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남의 가정사를 다 들을 때라고 할 것이다.

오서산을 오르면서 가장 힘든 구간이 시루봉을 오르는 구간이다. 임도를 지나 바로 오르기 시작하면서 1km 정도를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아도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고 앞을 보아도 오르는 길 밖에 없다. 어쩌면 진퇴양난의 길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면 끝이고 그다음은 탄탄대로인데 그것을 모르면 언제쯤 끝날 것인지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시루봉을 오르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돌탑이 있고 이정표가 있을 뿐이다.


힘들게 오른 만큼 편안한 시간이 바로 앞에 있다. 힘든 여정을 끝내고 이제 정상을 바로 앞에 둔 50대의 모습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 50대의 모습에서 나를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앞이 보이지 않거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바로 앞에 새로운 역경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오서산은 힘들게 올라오니 이제는 그렇게 높지 않은 곳에 정상이 있다. 50대에 정상을 바로 앞에 둔 인생과 같은 산이라고 할 것이다. 오서산 정상에서 하산하기까지에도 한동안 즐길 수 있다. 50대에 느긋하게 은퇴하기 전까지 인생을 바라다보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산이라고 할 것이다.

지난여름에 패랭이 꽃이 그렇게 만발하였지만 오늘은 억새만 있다. 그리고 그 억새사이에 서해안의 갯벌들이 보인다. 정상 주변에 단체산 행객들이 자기들 세상인양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 서둘러 이곳을 회피한다. 그리고 예전에 오소정이 있던 곳으로 이동을 한다. 중간중간에 보령시에서 만들어 놓은 포토존을 이용하여 산행의 기록을 남긴다. 산행은 기록을 남기면서 그것을 추억한다.

오소정이 있던 위치에 도착하였다. 예정에 정자가 있었지만 가을 태풍에 의하여 그 자취가 사라지고 이제는 데크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두었다. 이곳에도 정상석이 있다. 정상에 있는 정상석보다 이곳에 있는 정상석이 우리에게는 더 흥미롭다. 서해의 낙조를 보면서 억새와 함께하는 하루가 될 것이다.

은퇴를 하면서 천천히 내려가기도 하지만 급하게 내려가기도 한다. 은퇴를 하면서 뒤를 돌아보면 아름답다. 이곳이 은퇴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아니면 아쉽다. 그것이 오서산이다. 은퇴자가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고 하산을 한다.

내려가면서 길을 잘못 들어 알바를 하였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돌아왔지만, 낙엽이 지는 등산로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조언자들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도를 만나 주차장으로 돌아와 자동차를 회수하고 복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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