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일 동안 충청도를 걸었고 호남지방으로 들어간다.
충청도를 가로지르니 약 150km다. 하루에 48km를 걷고 오늘 호남 경계까지 4km 남짓이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과 전북 익산시 여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 쟁목고개이다.
봉곡서원에서 쟁목고개까지 4km를 걸으면 호남지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3번째 논산역이용이다. 이제는 논산역은 아듀다. 다음은 전주역 또는 익산역이다. 한 곳에서 3번 이상은 나주역이며 논산역이 3번이고 다른 역은 무조건 2번이다.
논산역에 내려 지난번 종료란 봉곡서원앞에 도착하니 9시가 되지 않았다.
이제 여산으로 길을 잡는다. 고속도로가 인접하고 논산에서 익산으로 가는 1번 국도가 친구가 된다. 1번 국도는 우리는 다정하게 나주까지 친구 삼아 멀리 가지 않고 혹 옆에 혹 지나가는 자동차의 흐름을 보면서 걸어갈 것이다. 토끼굴을 이용하여 국도 밑으로 지나거나 육교를 이용하여 조망을 한다.
이제. 쟁목고개다. 호남지방이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하도 스산하여 다가가니 짓다가 만 아파트다 이 시골에 이렇게 아파트를 짓다니 저 아파트를 건축할 때 건축업자는 분양을 하였고 그 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계약금을 건축업자에게 제공하고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생각해 본다. 좀, 건축업자들도 양심을 가졌으면 한다.
쟁목고개. 멀리보이는 아파트는 짓다가 부도난 아파트다.여산은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휴게소를 이용한 기억이 있지만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여산은 천주교의 성지라고 한다. 여산 시내를 들어서니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고 천주교를 박해할 당시 어떻게 고문하고 그들을 죽였는지 보여준다. 그 기록이 그대로 표지석에 남겨있다. 가장 심한 것은 한지에 물을 묻혀 얼굴에 감싸고 그것이 마르면 숨을 못 시게 하여 죽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참 잔인하다,
우리에게 종교는 항상 그런것인가 보다. 불교가 들어올 때에도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다 하고 천주교 들어올 때에도 근 100년간 박해가 있었으니 우리네 땅에 외래종교가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다.
천주교 전주교구에 여산의 박해와 관련하여 기술하기를 "여산은 작은 고을이지만 왕비를 배출한 지역이어서 특별히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다.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도 이뤄졌는데, 특히 1868년에는 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이곳 순교자들은 여산, 고산, 진산, 금산 등지에서 잡혀와 다양한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배다리 근처에서는 교수형으로,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이 주로 집행되었고, 동헌 앞마당에서는 천주교신도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얼굴에 물을 뿌린 후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시켜 죽게 하는 백지 사형이 집행되었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현재 여산의 성당은 많은 천주교인들이 와서 그런지 여산 주민들에 비하여 크다고 할 수 있다.
삼남길을 걸으면서 가람선생의 생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행운이다.
가람선생은 전북 익산 여산이 고향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된 후, 함흥형무소에서 1년 가까이 복역하고 1943년 출감 후 낙향하여 농사와 고문헌 연구에 몰두했고 후에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생가에서 나와 작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람문학관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가람 이병기 선생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의 동상도 함께 볼 수 있다.
이병기선생 생가 지붕 초가를 보수하고 있어 이곳저곳을 둘러보기가 어려웠지만 아담한 생가는 우리 어렸을 때 시골집 냄새가 물씬 났다.
사실 초가집 지붕인 이엉을 4월에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가을에 추수하고 그 볏짚을 이용하여야 하는 만큼 가을 걷이가 끝난 후 초겨울쯤 한 기억이 있다. 이곳에서 이시즘에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람선생의 난초의 한 구절이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대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톱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여산을 벗어나 이제 익산으로 간다. 익산을 가면서 왕궁면을 지난다. 왕궁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고민하지만 만경강의 상류로서 돼지 축산농가가 밀집되어 있어 새만금 지역의 주요 오염원이 되기도 하였다. 삼남길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나병환자들의 집단거주지가 있었고 이들의 생계를 위하여 축산을 장려하였고 그것이 밀집되면서 문제를 유발하였던 것이다. 왕궁지역 축산농가의 축산폐수 정화를 위하여 익산시가 상당히 노력을 하였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익산은 미륵사지가 있다.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던 익산 미륵사는 무왕(武王, 600-641) 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는 전형적인 1탑1금당의 백제식 가람배치와 달리 세 개의 탑과 금당 등으로 구성된 3탑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이다. 이 미륵사지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익산에서 원수제, 왕궁저수지를 가는 하천에 있는 다리 위에 이러한 석탑을 표시하여 사진에 담아 보았다.
익산은 보석 관광지 옆이 왕궁저수지이며 익산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왕궁저수지 주변에 물에 잠긴 나무가 멋있어 보인다. 왕궁저수지는 금마면에서 동쪽으로 약 5km 들어간 곳에 있는 우북산(紆北山)과 도순산 계곡에 있는 저수지로, 몽리 면적이 넓은 큰 저수지이다. 주변의 연지(蓮池)는 중국에서 처음 가져온 백련(白蓮)을 심어 조성한 것이다.
저수지 수문 옆에 높이 50m 정도의 바위가 있어 함벽정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또, 함벽정 주변의 바위 위에 흙을 쌓고 그 주위를 돌로 둘러싼 다음 여기에 벚꽃나무를 심어 놓음으로써
봄이 되면 저수지의 물 위로 만발한 벚꽃 그림자가 드리워져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왕궁저수지 옆에 보석박물관이 있다. 보석박물관에 대하여 익산시는 "예로부터 익산은 보석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러한 익산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 설립된 것이 바로 보석박물관이다. 익산 보석박물관은 백제 문화유적과 보석의 아름다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14만 1,990㎡ 규모의 왕궁보석 테마관광지내에 건립되었으며, 진귀한 보석 원석 등을 11만여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이다. 또한 지질시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화석전시관에는 시대별 각종 화석과 익룡, 수장룡, 실물크기의 골격공룡 등을 전시하여 청소년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보석은 익산시에 있어서 중요한 산업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산업단지에서 보석가공을 하였다. 수출 자유지역이 마산과 익산에 있었으며 익산은 보석가공을 위한 수출 자유지역이었다. 익산 보석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400 여전에도 익산에서 보석을 가공하였으며 귀금속 가공에 쓰인 도가니(왕궁터)와 백제 사리장엄(미륵사지석탑) 등이 잇달아 발굴되었다고 한다.
익산을 거쳐 이제는 삼례로 간다. 전주에 들어가기 전 가장 근 도시가 삼례이다. 삼례에서 어떻게 전주로 넘어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삼례읍을 거쳐서 전주로 들어간다. 삼례를 지나면서 높은 건물이 보인다. 우석대학이다. 전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삼례에 위치하고 있다.
삼례에 도착하기 직전 우리는 이제 더위에 살짝 지쳐가고 있었다. 친구는 투덜거린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나도 사실 이제 힘들다 그늘이 있는 산을 등반할 때에도 5월이 가장 더웠는데 평지를 걷다 보니 더위가 우리에게 엄습하는 것이기도 하고 6주 연속 주말마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이제는 고비를 맞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친구를 다독이기 위하여 막걸리 1병을 사주기로 하고 나도 음료수를 한병 사기 위하여 마트를 찾았으나 없다. 삼례의 구시가지의 옛길에는 마트가 없다. 삼례역으로 가기 전 드디어 삼례시장에서 마트를 찾았다. 어렵게 찾은 마트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사고 삼례역으로 향한다.
삼례역에서 비비정으로 이동하면서 만경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한다.
완주군 비봉면 봉실산(鳳實山)[374m]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낮은 구릉을 이루다가 만경강과 만나 멈춘 곳이 비비정이 세워진 언덕이 있다. 비비정 언덕 일대에는 백제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삼례토성이 존재했다고 한다.
비비정 정상에서 만경강이 보이며 멀리 전주도 관망할 수 있었다.
삼례에 위치한 비비정은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바로 옆에 새로 조성된 ‘상생도시숲’은 공원녹지 성격의 도시숲으로 오감체험숲과 놀이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완산 8경 중의 하나인 비비낙안(飛飛落雁)은 비비정에서 만경강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떼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덧 낙조의 아름다움까지 밀려드는 것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만경강 철교를 이용하여 전라선 기차가 삼례역을 거쳐서 전주역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만경강을 옆으로 끼고 삼례교를 건너 전주시로 들어간다. 삼남길은 전주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지금은 완주 혁신도시인 이서면 쪽으로 방향을 튼다.
만경강은 처음 접하였다. 도대체 동진강 만경강 이렇게 학교 다닐대 배웠는데 드디어 만경강을 보았다.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안성천을 지날때 보았든 그 정도 넓이인데 강이다. 그래서 만경강에 대하여 소개하는 글을 찾아보니 만경강은 만경강은 길이 74㎞, 유역 면적 1,571㎢로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운장산(雲長山, 1,126m)에서 발원하는 고산천(高山川)과 만덕산(萬德山, 763m)에서 발원하는 소양천(所陽川)이 완주군 삼례읍 동쪽에서 합류하고 전주 시가를 관류하는 전주천과 전주시 서부의 삼천(三川)이 삼례읍 동남쪽에서 이에 합류하여 만경강의 본류가 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삼례에서 서쪽으로 흘러 익산시 남쪽을 통과한 뒤, 군산시 대야면에서 탑천(塔川)과 합류하고, 군산시와 김제시 사이의 넓은 간석지의 하구로 흘러들어 새만금의 젓줄이라고 한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 입구에서 우리는 멈추기로 하였다. 여기에서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복귀할 수도 없고 다음에 여기에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전주 IC에서 나오자마자 전주 월드컵 경기장이고 이곳에 명물이 있었다. 도로공사에서 설치하고 운영하는 전주수목원이다. 입장료도 없고 관리도 잘되어 있었다.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훼손된 자연환경 복구를 위해 수목을 생산, 공급하고 다양한 식물종을 모아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식물의 보존, 증식, 보급, 자생식물의 개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고속도로 이용 고객과 지역주민들에게 수목원 문화 체험의 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용시간은 하절기는 09시에서부터 19시까지이며 동절기는 18시까지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남은 이용시간을 이용하여 수목원을 관람하였다.
전주역으로 이동한다. 여기에서 전주역으로 이동하여 KTX를 타고 서울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