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는 감각
숙소를 호텔로 옮기고 나서야,
내 불안감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따뜻한 공간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몸도 마음도 조금은 풀어지니, 허기짐이 올라왔다.
조식 뷔페 한쪽엔
꿀이 아니라, 벌집이 통째로 놓여 있었다.
나무틀 안에 빽빽하게 채워진 꿀벌의 집.
숟가락으로 긁어내면
끈적하고 진한 꿀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터키는 꿀로 유명한 나라다.
밤꿀, 야생화꿀, 소나무꿀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 달콤함은 설탕의 단맛과는 전혀 달랐다.
자연의 농도, 그리고 조금의 씁쓸함.
그 꿀을 요구르트 위에 올려 먹으니,
단맛보다도 깊은 맛이 먼저 느껴졌다.
부드러운 빵과 커피, 올리브, 오이와 치즈의 조합은
그동안 쌓였던 허기가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이스탄불의 물가는 장소마다 체감 차이가 컸다.
시장이나 동네 식당은 비교적 저렴했지만,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특히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톱카프 궁전이 있는 술탄아흐메트광장 근처의
노점상들은 은근히 비쌌다.
별생각 없이 돈을 내고 돌아서 생각해 보면,
과일 주스 한 잔이 만 원 가까이했던 것 같다.
물론 생과일을 직접 갈아주는 주스였지만,
그래도 꽤 비쌌다.
시미트도 마찬가지였다.
시미트는 터키 사람들이 아침마다 사 먹는
참깨가 듬뿍 뿌려진 둥근 베이글 같은 빵이다.
길거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지만
술탄아흐메트 광장 노점에서는
시간이 지나 딱딱해진 시미트조차 꽤나 비싸게 팔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먹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지자
허기짐이 느껴졌다.
몇몇 방송에서 소개된 베이란 집을 찾았다.
식당은 한국 국기도 있었고 메뉴에 한국식 표기도 되어 있었다
터키식 육개장인 '베이란'은 양고기 수프인데
밥을 말아 후루룩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양고기 요리를 추가로 시킨 듯한데
요리명은 잘 기억이 안 난다
함께 나온 루콜라와 토마토 베이스 소스는 아주 맛있었다.
Hobyar, Şeyhülislam Hayri Efendi Cd. No:4, 34000 Fatih/İstanbul, 튀르키예
퀴네페 위에는 하얀 치즈가 한 덩이 올려져 있었다.
처음엔 아이스크림인가 싶었는데,
한 숟갈 떠보니 부드럽고 담백한 치즈였다.
달콤한 시럽과 바삭한 반죽, 그리고 치즈의 짭짤함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식도락 여행을 다녀왔다며,
3일 동안 18끼를 먹고, 5일 동안 25끼를 먹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맛집을 목표로 다니지 않는한 불가능한 스케줄 같았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나는 그렇게 다양한 음식을 맛보진 못했다.
맛집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없으면,
관광지를 다니면서 틈틈이 음식을 즐기기란 쉽지 않았다.
여행 초반엔 불안감과 편견 때문에 거의 먹지 못했고,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해결했다.
점심이나 저녁에야 밖에서 식사를 했는데,
중간중간 카페에서 쉬며
결국 커피와 케이크로 끼니를 대신하기도 했다.
터키에서 케밥은 ‘구운 고기’를 뜻한다.
오스만 제국 시절,
기사들이 칼에 고기를 꿰어 구워 먹던 데서
지금의 케밥 문화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도네르 케밥은
‘도네르’, 즉 ‘돈다’는 뜻처럼,
큰 고깃덩어리를 돌려가며 구운 뒤
얇게 잘라 빵에 끼워 먹는다.
이스탄불에서는 고등어 케밥도 유명하다.
‘발륵 에크멕’이라 불리는 이 음식은,
구운 고등어를 바게트 같은 에크멕 빵에 끼워
양파와 상추, 레몬즙을 곁들여 먹는다.
에크멕은 터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빵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이 빵이 너무 맛있어,
식사 때마다 에크멕만큼은 꼭 챙겨 먹었다.
흔히 갈라타 다리 위 노점에서 많이 팔지만,
내가 갔던 가게는 그곳들과는 다른,
조금 더 조용한 곳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없었다.
비린맛이 전혀 없어서,
여행 마지막 날에도 한 번 더 찾아가 먹을 정도였다.
Kemankeş Karamustafa Paşa, Ağaç Tulumba Sk. No:4/D Z. kat, 34425 Beyoğlu/İstanbul, 튀르키예
처음엔 낯설고 겁났던 이스탄불의 음식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조금씩 내 안의 두려움이 풀어지고,
입에도, 마음에도 이 도시의 맛이 스며들었다.
다양한 음식들은 먹어보진 못했지만,
그 며칠 동안 내가 삼킨 맛과 향, 공기와 온도는
아직도 입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문득문득 에크멕의 고소함과
따뜻한 베이란의 매콤함이 생각난다.
아마도,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엔 조금 더 과감하게,
이 도시의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