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니 보인다

발끝에 닿은 바다

by 브라보연진아

두통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경험했다.
핸드폰이 먹통이었다.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됐다.
작년 가을, 핸드폰을 바꿀 때 통신사 직원이
‘해외에서도 무료 데이터 가능’이라 말했기에 아무 준비 없이 왔는데,
막상 타지에서 인터넷이 안 된다는 건 공포 그 자체였다.

다행히도 여행 메이트가 있었다.
친구의 핸드폰으로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무료 데이터’가 안 되는 도시도 있고, 카톡으로 문자 전송 정도만 가능하다고,
우회적으로 발뺌을 했다.

결국 다음 날이 되어서야 eSIM을 구매했고,

그렇게 이스탄불 여행이 시작됐다.



갈라타포트

첫날, 비가 왔다.

언덕길 어딘가에서 마음에 쏙 드는 우비를 하나 샀다.
갈라타 포트에서 갈매기, 커피와 함께 사진 찍기 놀이를 하며
끝이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 도시의 바다는 조금 이상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아니라,
바다 건너에 또 다른 도시가 보였다.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바다라는 투명한 유리 너머로,
또 다른 세상이 반짝이고 있었다.


갈라타 포트 앞바다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시작점 같은 곳이었다.

골든혼, 마르마라 해, 보스포루스 해협이 만나는 자리.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바다는 예전부터 ‘소의 길’이라 불렸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오가 헤라의 눈을 피해 소로 변해,
저 바다를 건너 도망갔다고 했다.

사람도, 신도, 소도 건너간 길.
물 위로 바람이 불어오자,
지금도 누군가 저 너머로 달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스티클랄 거리

갈라타 포트에서 언덕을 올라
이스티클랄 거리로 넘어왔다.

이곳은 이스탄불의 심장 같은 거리였다.
돌길 위를 달리는 빨간 트램,
그 옆으로는 사람들의 물결이 흘렀다.

이스탄불의 거리를 걷다 보면,
오후쯤 혹은 이른 저녁이면
어김없이 아잔 소리가 들려왔다.

아잔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같은 것이다.
처음엔 그 구슬픈 소리가 좋았다.
어딘가 우리의 한(恨) 같은 것도 느껴졌고,
낯섦에서 오는 호감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 내내 듣자니 조금 힘들었다.
구슬픈 가락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청승맞게 느껴졌다.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있어도,
이 소리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이스티클랄 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돌길 위를 달리는 빨간 트램,
그 옆으로는 사람들의 물결이 흘렀다.

오래된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예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살던 거리라고 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인들이 모여 살며
대사관과 학교, 교회가 세워졌고,
그때부터 유럽풍의 문화와 건물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이스탄불 한가운데인데도
잠깐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날에도 나는 이 거리를 다시 찾았다.
첫날과 마지막을 함께한 거리.

아직도 이 거리가 눈앞에 선명하다.

돌길 위를 달리던 빨간 트램,
그 옆으로 흐르던 사람들의 물결,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구슬픈 아잔 소리까지.

모든 풍경이 그대로 내 안에 남아 있다.


테오도시오스 성벽

은근 기대하고 갔다.
천 년의 시간을 견뎌낸 돌,
제국을 지켜낸 마지막 방패를 보고 싶었다.

5세기 초, 황제 테오도시오스 2세가 수도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벽.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침략을 막아낸 요새.
그 위를 걸으면,
과거의 군인들과 같은 길을 걷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성벽은,
위엄보다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오스만 제국의 문화유산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금은 방치되어 있다고 했다.

역사의 방패는 지금,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게 조금, 마음이 아팠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다.
지명도, 길도, 언어도, 사람들의 표정도.

하지만 돌아올 때쯤 되니,
길이 보이고, 방향이 익숙해졌다.
처음엔 지도를 켜도 알 수 없던 길들이
어느새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낯설고 어지럽던 곳도,
떠나올 때쯤이면 조금은 내 것이 된다.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
돌아올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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